쾌유를 바랬던 가족들과 동지들의 애타는 마음을 뒤로 하고 하중근 동지는 결국 운명했다. 포항 건설플랜트 이지경 위원장을 비롯한 58명의 구속자들이 감옥에서 단식에 돌입하며 가장 먼저 떠올렸을 사람, 하중근 동지는 우리의 곁을 떠났다. 노모께서 ‘우리 아들 살려 달라’고 애타는 심정으로 동지들에게 호소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어쩌라고 동지여 그렇게 가십니까!
목숨을 걸어야 하는 투쟁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 말살 악랄한 정책에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은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 이제 이틀 후면 급여를 받는 날이다. 약 6개월 이상 급여를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에 나에게 돌아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 아닌가?” (배달호 열사 유서 중에서)
헌법에는 노동3권으로 파업이 보장되어 있다. 이는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과 업무방해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법으로 보장하는가? 왜 노동자들은 투쟁하다가 죽고, 파업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노조를 살려내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던져야 하는가! 자본의 이윤이 사람의 목숨보다 우선 하는 세상,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피를 더 원하는가!
포스코는 포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이 벌어지자, 자신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점거농성을 당했다며 경찰에 폭력 진압을 요청했다. 이번엔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포항 기관장들과 모여서 건설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탄압에 혈안이었다. 국회의원을 통해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승리의 축배’를 들며 2000억원 손해배상 청구를 말할 때, 하중근 조합원은 죽음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결국 죽음으로 자본의 악랄한 탄압을 폭로했다. 노동자 투쟁 중 가장 많은 구속자 58명이 발생한 상황, 모든 언론에서 “원청인 포스코에서 본때를 잘 보였다. 이참에 노동자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법과원칙을 지키자”며 노동자를 몰아붙일 때 하중근 열사는 그렇게 죽어갔다.
‘차라리 다 죽여라!’
‘차라리 다 죽여라!’라는 구호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저임금과 생활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쳐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아니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상황, 자본가들은 떵떵거리며 사는 이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다.
최근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격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자신의 삶의 수단인 차량으로 공장을 봉쇄하고, 제조업 생산라인에서 용역깡패와 관리자들의 폭력에 맞서 난투극을 벌이며 투쟁했다. 그렇게도 안 되면 발 딛고 서있기도 힘든 고공농성에 돌입해 노동자들의 투쟁을 촉구하고 싸웠다. 포항 건설플랜트, 대구경북 건설노조, GM대우 하청, 하이스코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그랬다. 더 이상 비정규직으로 살수 없다고, 더 이상 가장 노릇, 아비 노릇도 못하면서 살 수 없다며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저들이 우리들의 삶을 어찌 알랴. 그런데 이 나라가 파업 공화국이고, 노조공화국이라며 연일 떠들어 댄다.
지긋지긋하다!
파업에 대한 비난은 격렬한 투쟁을 전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퍼부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비난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주 평화롭게 집회를 하고 퇴근하는 현대자동차 파업에 대한 비난 역시 마녀사냥식인 건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힘이 부족해 격렬한 투쟁을 하면 그래서 문제고, 대공장 정규직 파업은 대공장 정규직이라서 온갖 욕을 먹어야 한다. 포스코 점거농성이 마무리되자 언론은 일제히 현대자동차 파업을 비난했다. 생산 차질액 1조 2천억원, 파업으로 인한 수출 중단과 수출 딜러망 붕괴 가능성을 떠들며 파업을 종료하라고 압박했다. 언론은 일제히 ‘무노동 무임금’ 엄격 적용을 주장하고, 협상 마무리 시 손배 고소고발 등을 취하하는 ‘관행’이 노조 파업을 매년 반복케 한다고 엄정한 법 집행을 요구했다. 한국경제신문의 윤기설이라는 작자는 “집단이기주의에 빠져서 지능적인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조에 무노동 무임금을 철저히 적용해 조합원이 파업을 하면 경제적인 손실을 입는다는 점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어디서도 파업의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자본가 언론들은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법석을 떨지만 매년 파업을 경험한 현대자동차가 매년 순이익 규모를 늘리고 있다는 점은 알려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자동차 정규직이 고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스코 농성이 마무리될 즈음인 7월 2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고용전망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가장 장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다. 작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351시간으로 OECD 평균 1670시간보다 길며, 한국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긴 폴란드 1970시간보다도 무려 380시간이나 길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주 40시간제)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일자리를 늘리기 보다는 초과근무수당을 주기 때문에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보수 언론인 세계일보가 보도할 정도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잔업과 특근으로 삶을 이어간다. 제조업은 8시간 노동제가 아니라 10시간 노동이 기본으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렇게 일해서 자식들과 겨우 밥 먹고 사는데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집단이기주의라니 분노가 치밀 뿐이다.
야만적인 탄압과 반격
노동자 투쟁에 대한 맹비난과 노동자가 무참히 경찰 폭력에 살육당하고 있는 현실이 한국의 노동현실이다. 올해 들어서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대구 경북 건설노동자들이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했었다. 포항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과 파업 파괴에 맞서 결사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투쟁이 승리하고, 노동자들이 투쟁의 자신감을 회복해 투쟁이 확대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본으로서는 모든 것을 동원에 투쟁 확대를 막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은 지도부에 의한 폭력으로 몰아가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이기주의로 몰아 고립시켜 탄압한다. 노동자들의 삶,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를 짓밟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노동자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쌓여가고 있고, 조만간 터져 나올 것이다.
자본가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을 위한 조처를 바랄 수 있는가? 자본에게 같은 일을 하고 50% 밖에 안 되는 임금, 멸시와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값싼 노예로 계속 부리고 싶은 자본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가차 없는 폭력을 들이미는 것으로 비정규직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리고 정규직 노조는 고립시키면서 천천히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이 줄어들고 노동자들이 굴종 속에서 사는 자본의 왕국으로 만들려는 모든 방안이 진행 중에 있다. 비정규 개악안, 노사관계 로드맵, 노사정 대표자회의, 공권력 탄압,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뭘 주저하는가! 정권과 자본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을 탄압한다. 포스코는 건설노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서 모든 기관장을 모으고, 언론, 관제데모,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해 싸우지 못했다.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죽고, 58명이 구속되었어도 연대를 펼치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대표자회의 협상과정을 보고, 설명하겠다며, 전국을 순회하는 동안 열사는 외롭게 병상에서 피맺힌 한을 품고 산화했다.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를 지키기 위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 현자 울산, 전주에서, 기아 화성에서, 서울에서, 구미에서 힘겹지만 당차게 싸우고 있는 동지들에게 이제 희망을 말해야 한다.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한가하게 노사정 대표자회의나 하고 있을 때인가? 살인자들인 노무현 정권, 경총 자본가 놈들과 마주 앉아있을 때인가! 이제 싸워야 한다.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노동탄압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을 선포하고 현장을 조직하라!
박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