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금속 산별 완성대의원대회가 열렸다. 대의원 93%가 참석했고, 민주노조운동진영이 많은 관심을 두고 지켜본 대의원대회였다.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유는 금속 산별 완성대대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에서 제출한 규약개정(안)이 현장투쟁을 통제하려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쟁 중단을 명한다니!
준비위가 제출한 규약개정(안)중에서 압권은 63조(쟁의행위 결의) 4항이었다. 준비위는 “현장단위 쟁의가 조합의 통일된 투쟁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위원장은 즉각 중단을 명할 수 있다. 단 위원장은 중단 명령 직후 중앙집행위원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자고 개정(안)을 제출했다. 규약개정(안)을 접하고 기아자동차 화성비정규직지회 신성원 동지(대표발의자)를 비롯한 11명의 동지들은 63조 4항 신설에 반대하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했다. 준비위 개정안을 설명한 동지는 “자본이 금속노조의 전체 투쟁이 준비되는 과정에서 투쟁을 교란하기 위해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 이에 맞서는 투쟁은 통일된 투쟁에 해가 될 수도 있으니 위원장이 중단을 명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측이 도발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서 현장에서 투쟁을 전개하는 데 산별노조가 이를 지원하기는커녕 중단시킨다면 투쟁하는 조합원들은 아마도 노조에 등을 돌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투쟁이 중단되면 현장은 초토화될 것이다. 그 후에 그 사업장이, 그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전체투쟁에 참여할 것인가? 참여하고 싶어도 현장이 박살나서 투쟁에 결합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을 경험했던 동지들이 이 상식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산별노조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상식에도 맞지 않는 규약개정안은 올린 배경이라고 판단된다.
현장투쟁을 보호하기 위한 신분보장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신성원 동지를 대표로 하여 11명의 대의원들은 신분보장과 관련해서도 ‘조합의 결정’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노조규약에 따라서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신분보장을 적용하도록 개정안을 제출했고, 이를 통과시켰다. 김창한 금속노조 위원장은 조합의 의결기구의 결정이 없었더라도 금속노조는 신분보장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투쟁을 전개하다가 구속되었던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김우용 대의원은 노조의 결정이 없었다는 이유로 자신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서 감옥에 있는 동안 맘고생을 많이 했다며, 불필요한 ‘조합의 결정’이라는 문구의 삭제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사내하청이나 중소 영세 부품사의 경우,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을 계약해지 되는 경우가 있다. 현재 금속노조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하이닉스-매그나칩 동지들이나 기륭전자 동지들이 모두 그렇다.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동지들은 노조활동에 대한 보복성 계약해지를 가장 악랄한 노조 탄압으로 규정하고 이런 동지들에 대해서 신분보장을 할 것을 요구하였고 관철시켰다.
관료적 중앙집에 맞선 현장 동지들의 투쟁
이번 금속노조 완성 대의원대회는 중앙 집중-관료화에 맞선 현장 동지들의 투쟁이었다. 63조(쟁의행위 결의) 4항인 위원장 투쟁중단명령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기아차 비정규직 대의원 동지가 말했듯이, 보건의료노조와 서울대병원지부와의 갈등 역시 이 문제였다. 단사의 노동조건의 후퇴를 결정한 보건의료노조의 단협 10장 2조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당시 보건의료노조 윤영규 위원장은 8년만의 산별 교섭에 대해서 초를 치지 말라고 억지를 부렸다.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의 처지와 조건을 맞추어 가는데 큰 사업장이 역행한다며 오히려 서울대병원지부를 비난했다.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금속노동자들이 산별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산별시대가 될 것이다. 이미 한국노동연구원이나 재벌 산하 연구소들은 산별을 대비하고 있다. 정부나 자본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중교섭과 이중쟁의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보건의료노조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전개하자 보수언론은 불법파업이라고 비난했었다. 정권과 자본은 이중교섭과 이중쟁의를 없애면 교섭비용이 줄고, 파업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산별교섭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오히려 산별노조를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 본다. 서울대병원지부가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현장투쟁
이제 본격적으로 민주노동당-산별시대가 열린다. 최근 민주노동당은 대공장 노동자들을 비롯한 조직된 노동자들이 희생하여 노동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노조를 만들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해 임금을 올린 것이 마치 이제는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보수언론이나 자본의 주장과 뭐가 다른 지 이해할 수 없다. 사회적 교섭에 모든 것을 걸었던 국민파나 대공장 노동자들이 희생하자고 선동하기 시작한 <전진>이 민주노조운동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노동당의 행보는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노동당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희생하자’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설득하는 책임 있는 정당이 되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라고 판단한다. 사회적 합의주의, 타협이 민주노조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금속산별 완성대대에서 위원장이 투쟁 중단을 명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규약개정안이 제출된 것이다. 우리는 11월 23일 대의원대회에서 이 경향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고, 일정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관료화-현장공동화에 맞선 투쟁은 규약개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의원대회가 끝나고 현장투쟁을 열심히 조직했었던 동지들은 “현장단위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대해서 보장받았고, 현장투쟁에 대한 신분보장을 통과시켰으니 이제 현장에서 열심히 현장투쟁을 조직해야겠다”고 했다. 그렇다. 현장투쟁으로 아래로부터 활력을 가지지 못하면 규약은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승부는 항상 자본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에서 난다. 현장투쟁을 활성화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실천할 중요과제다.
박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