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지난 11월 10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연대’를 발표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423만 명과 농어민,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221만 명 등 총 644만 명에게 5년간 절반의 연금 보험료를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노동계를 설득 중에 있다고 밝혔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8조 5천억 원 중 3조원을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미래 급여 인하를 통해 마련하자고 했다. 이는 민주노동당 부설 연구소인 진보정치연구소가 추진하는 <소득-임금 측면에서 노동계급 연대전략 보고서>의 첫 사업이라고 밝혔다.
이미 <현장노동자>는 지난 총파업 특별호를 통해서 진보정치연구소의 주장은 허무맹랑하고 계급운동의 후퇴를 조장하는 처사임을 밝히며 반대 입장을 제출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사회연대전략’이라 칭하며, 광역시당별로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고,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주요 인사들을 접촉하며, 설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진>은 ‘사회연대전략’에 찬성하며 추진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나눔’이라는 도덕적인 용어를 동원해가며,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밝히는 것인 양 거짓선전을 일삼고 있으며, 대공장노동자 책임론까지 들먹이고 있다.
연대인가, 나눔인가?
언제부턴가 나눔의 미덕이 노동운동에서 칭송되고 있다. <전진> 뿐만 아니라 <새흐름>도, 전국노동자회도 나눔을 말하고 있다. <전진> 한석호 집행위원장은 “근본적으로 평등과 연대는 그 속에 나눔과 양보를 내포한다. 다만 그 양보와 나눔이 누구를 향한 것인가,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며 “노동계급 내에서도 혜택을 누리는 노동자가 그렇지 못한 노동자와 민중을 향해 나누고 양보하는 것이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향해 양보하고 나누는 것, 이것이 평등과 연대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한석호 동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계급 내에서 혜택을 누리는 자란 누구며, 무슨 혜택을 누리고 있는가? 대기업의 정규직노동자들을 칭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행복한가?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은 임금과 복지가 그렇게 “혜택을 누리는” 것인가? 그리고 누가 혜택을 주었다는 것인가?
바로 여기에 모든 문제가 있다.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밥을 같이 먹고 정규직 노동자가 돈을 좀 더 버니 밥값을 내겠다고 말하면 이건 ‘나눔’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소득, 즉 임금 문제는 정규직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간의 문제, 노동자들 간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의 착취라는 중요한 문제를 보지 않기 때문에 나눔의 개똥철학이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심지어는 노동자 투쟁의 정신까지 왜곡하고 있다.
<전진>의 한석호 집행위원장은 “남한 노동운동에는 오래된 집단적 인식의 오류가 있다. 그것은 임금인상은 계급적이고, 임금인하는 비계급적이라는 시각이다”라며, “임금인상과 민주노조 사수 자체가 자본의 탄압으로 인해 계급성을 띠었던 87년 체제가 낳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맙소사! 87년에는 대기업 노동자들이 착취를 받았고, 지금은 착취를 받지 않는단 말인가? 한석호 동지는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주의 체제는 그 필요에 따라 임금을 인하할 수도, 임금을 자제할 수도 있다”고 비약하며 말한다. 사회주의에서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자신의 임금과 모든 것을 집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의 문제와 자본주의에서의 투쟁과 같은 문제인가? 자본주의에서 임금인상은 정당하며, 이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단결과 계급의식을 배운다. 아주 기본적인 진리, 계급투쟁의 기본에서 비껴가니 아주 이상한 논리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눔이 아니라 연대여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연대는 자본가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공동의 힘을 말한다. 연대는 나눔과 다르게 자본주의 계급대립을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나눔의 개똥철학을 당장 집어치워라!
계급의식
진보정치연구소나 <전진>은 아주 거창하게 노동자계급 주체형성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서는 더 이상 계급적 연대나 단결을 실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 내부의 분화가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모아내는 데 유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나보다 못 버는 사람에게 찔러준다고 해서 계급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역사는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어느 나라에도 투쟁을 통하지 않고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임무를 인식한 경우는 없다.
현실을 보라! 도시철도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불허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KTX 승무지부의 투쟁을 뒤로 한 채 파업을 중단했다. 이번 임투에서는 비정규직 임금인상 요구안을 걸고 실무교섭을 진행하다가 본 교섭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선 아무 결론도 없이 합의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전진>의 한석호 동지가 말하듯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다. 이를 뚫고 나가지 않는 노조 지도부에 대한 아무런 항의나 비판을 수행하지 않고 이제는 슬그머니 돈 좀 내게 해서 지도부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가? 산별노조의 임금교섭정책은 유연안정성이니 뭐니 하면서 비정규직을 인정하자는 강신준 교수의 주장이나 이제 세금 더 내고, 나눔을 실현하자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으로 노동자들을 단결시킬 수 없다. 아니, 분열의 골을 더 벌려놓을 뿐이다. 정규직노동자들은 그냥 세금 더 내면 되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정부의 복지를 받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여기엔 자본주의 착취를 끝장 낼 노동자계급은 없다.
우리는 ‘사회연대전략’의 기본 정신을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민노당 진보정치연구소의 보고서는 복지국가, 즉 자본주의 하에서의 ‘복지’를 말하고 있다. 착취를 당하되 좀 덜 당하자거나 착취를 당하지만 그래도 살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인정하자는 소리다. 그러니 노동자계급이 투쟁으로 조직되는 것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다. 국민연금 지원사업 뿐만 아니라 사회연대전략은 노동자들에게 보다 많은 세금, 사회복지기여금을 내놓자고 한다. 이를 통해서 자본가들에게 좀 더 많은 세금을 물리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좋다! 설사 자본가들이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부유세와 같은 것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여전히 자본주의다.
투쟁 파괴
만약 노동자들이 부유세를 내겠다고 사회적 합의를 할 경우, 노동자들은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노사(정) 합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경우에는 노동자들은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해서 지도부들로부터 투쟁 자제를 강요당한다. 스웨덴,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수많은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회연대전략이 그렇게 칭송하는 스웨덴의 살츠바덴 협약이 체결된 후 스웨덴은 어떠했는가?
1938년 12월에 체결된 노사타협(살츠바덴 협약) 이전인 1937년과 1938년 파업과 직장폐쇄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각 886,604일, 1,068,054일이었다. 그러나 1938년 노사타협이후 1939년 123,936일, 1940년 65,610일로 줄었다. 1941년 스웨덴 노총(LO)은 소속 연맹이 조합원 3% 이상 파업할 경우, 서기국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만들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연대임금정책은 임금격차 해소에 기여하기는 했지만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산업구조조정과 연관된 정책으로 자본의 집중을 낳았다. 그 결과 거대 자본의 전횡을 막기 어려운 상태다.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고, 청년실업은 유럽 국가 중 가장 높다. 제발 현실을 봐라!
자본에 대한 공격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의원이 국민연금지원을 말한 그 정기국회에서 비정규 악법이 통과되었다. 이제는 투쟁의 중심인 노동조합을 말살시키려는 노사관계 로드맵이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99섬을 가진 자는 1섬을 더 채워서 100섬을 채우려 한다는 말이 있다. 자본주의에 정말 딱 들어맞는 소리다. 노동자들을 더 착취하겠다는 법을 만들고 있는 국회에서 노동자들이 돈을 내서 더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말하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국회의원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더 높은 임금인상
올해 임금인상률은 5.4%다. 이는 02년 7.6%에서 5년 내리 줄어들었다. 그러나 반격의 기미는 보인다. 주요 대기업의 임금인상률이 하락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성률은 높아졌었다. 그러나 올해 가결은 되었지만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성률은 줄어들었다. 대공장 이기주의 공세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로 봐야 한다. 반면 내년에 근로소득세도 1인당 20만원씩 더 내야 한다. 공공요금 인상까지 하면 경제성장률과 물가인상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인상이다.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저축률은 IMF 시기인 1998년 23.2%에서 2005년 3.9%로 하락했다. 출산율의 급감도 아이를 키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먹고 살 수 있는 임금, 생활임금을 보장하라고 해야 한다.
안정된 일자리
국민연금과 관련된 고령화 사회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년연장이다. 작년 금호타이어 노조는 정년연장을 단협으로 요구했고, 1년 연장했다. 기아자동차노조 선거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후보가 정년을 60세 정도로 연장하는 요구안을 제출하고 있다. 58세에 정년퇴직하여 할 수 있는 일이란 비정규직노동자가 되는 길뿐이다. 도무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없다. 아니 정년을 채우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판이니, 일할 때 벌어야 한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앞뒤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것이다. 정리해고제 폐지를 요구하고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사회복지 요구
최근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었다. 국민연금 급여수준은 60%에서 50%로 줄어들었으며, 보험료율은 9%에서 12.9%로 올랐다. 급여수준은 애초에 70%였다. 건강보험연구원 이용갑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기간은 20년밖에 안 된다. 결론적으로 소득대체율(급여수준)은 30%밖에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기초연금 도입도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었다. 선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지만 민주노총의 ‘무상의료, 무상교육’ 요구는 정당하다. 뿐만 아니라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아파트, 주택 문제는 시장 논리야말로 문제의 주범임을 폭로하고 있다. 안정적인 주거를 요구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12월 14일 발표한 상장 기업매출액 증가율은 7.8%(06년 3/4분기)다. 경상이익률도 7.6%이며, 제조업도 7.0%를 기록했다. 반면 고용의 증가는 거의 없다. 물론 기업의 이윤에 양극화 현상은 벌어지고 있다. 이윤율의 양극화 책임은 자본에게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도, 앞만 보고 무쇠처럼 일만 해야 하는 정규직노동자의 고통도 자본에게 책임이 있다. 열심히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잘못은 없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나눔’, 즉 희생을 통해서 자본을 압박하겠다는 발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자본이나 국가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사회불안을 해소하고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범위 안에서다.
자본의 이윤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현대자동차 상집과 교육위원을 모아놓고 사회연대전략을 설명한 자리에서 한 교육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용자나 정부의 부담을 더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
박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