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하나
11월 30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로 비정규직 개악안이 통과된 순간, 국회 밖에선 민주노총 긴급집회가 진행되었고, 바로 다음날인 12월 1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서 조준호 위원장은 패배했다고 말했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정규직 개악안 국회통과가 곧바로 패배인가? 96~7년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가 통과됐을 때 우리는 패배했다고 했던가. 절대로 아니다. 즉각적인 공세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입으로 뛴 게 아니라 발로 총파업을 만들어냈다.
민주노총의 패배 인정은 또 다른 효과를 낳았다. 투쟁의 중심이 환경노동위 로드맵 처리 저지로 집중되었다. 96~7년 노동법 개악저지 투쟁 이후 노동악법 철폐투쟁은 사라졌다. 노동법이 개악되면 노동악법 철폐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배계급이 노리는 건 이 점이다. 더 이상 노동악법 철폐투쟁이 없으리라는 점 말이다. 통과되면 적용된다. 개악된 악법에 끌려가는 민주노총, 산별노조, 단위노조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이다.
청천벽력 둘
12월 8일 총파업투쟁의 핵심변수인 로드맵이 환노위를 통과했다. 비정규직 개악안이 환노위에서 통과될 때, 거세게 저항했던 단병호 의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로드맵은 정규직노조마저 ‘식물노조’로 만들 수 있는 최악의 법안이기에 민주노총은 사활을 건 투쟁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활을 건 투쟁 대신 열린우리당이 던진 타협안에 연연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지도부에 수용 여부를 물었다.
12월 7일 밤과 8일 오후까지 수용안의 수용 여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었다. 일부 필수공익사업장 대표들은 수정안에 대해서 찬성의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민주노총 투본대표자회의에서 수정안 수용 불가를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수정안 수용 여부 재논의까지 붙였다. 투쟁을 조직해야 할 시기에 민주노총 지도부는 열린우리당이 제시한 수정안(로드맵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약간의 양보가 있는 안이다)에 대한 수용 여부를 토론하는 것을 통해 총파업투쟁에 혼선을 초래했다. 일부 필수공익사업장 대표들이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은 투쟁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필수공익사업장 확대, 대체근로 인정, 정리해고 완화, 부당해고 금전적 보상은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할 메가톤급 악법이다. 비록 민주노총이 수정안을 거부했지만 민주노총은 타격을 입었다. 조합원들의 신뢰는 곤두박질쳤고 투쟁의 자신감, 지도부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투쟁의 문제점
현실은 냉정하다. 총파업이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 조직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지배계급은 총파업을 할 수 없어 국회 앞 집회와 농성에 집중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국회 앞에 농성대오의 대부분은 총파업 조직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단위들이다. 지배계급은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민주노총의 약점을 알고 있는 만큼 협박과 타협을 강요하는 전술을 쓴다. 이를 통해 약한 민주노총 총파업 대오를 뒤흔들고 깨는 것이다.
이번 투쟁전술의 문제는 총파업보다 민중총궐기에 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나타났다. 민중총궐기가 민주노총의 위력적인 총파업투쟁에 의해 격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역으로 사고했던 것이다. 비정규 개악안이나 로드맵, 한미FTA, 산재법 개악이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총파업을 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총자본과 정권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는 강력하게 투쟁을 선도하는 구심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 구심에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서 있어야 하며, 주요 대공장 노조들이 버티고 있어야 한다. 바로 생산현장을 틀어쥐고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단위가 투쟁의 핵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파산한 배처럼 표류하고 있다.
파상적인 적들의 공격
12월 18일, 9.11 노사정 야합에 적극 동참한 한국노총을 점거한 8명의 전해투 동지들 전원에게 실형이 떨어졌다. 불구속으로 재판받던 4명의 동지들마저 법정구속 됐다. 이는 파상적인 공세의 작은 상징일 뿐이다. 지배계급의 파상적인 공세는 구속, 수배, 해고에 한정하지 않는다. 한 술 더 떠 행정자치부는 11월 24일 불법․폭력시위에 대해 민․형사상 필요한 모든 조치를 반드시 취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외비’ 공문을 전국 246개 기초자치단체에 보냈다. 이는 손해배상을 적극 활용하라는 주문이다. 법무부도 시위현장 부근의 자영업자나 노점상 등이 손해를 볼 경우 법률구조공단 등을 통해 손해배상을 위한 법률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이는 매년 경총이 단위기업에 내리는 공문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경총은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 손배, 가압류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해 왔다.
배달호 열사 이후 잠시 주춤했던 손배, 가압류가 확산되고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수십억 원대의 배상청구 소송이 “손해 발생을 단정 짓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되었으나 11월 전농에게 차량 파손에 대해 850만원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이제 기업, 정권, 지자체 할 것 없이 손해배상 청구로 모든 파업과 시위를 잠재우려고 한다. 돈으로 파업과 시위를 탄압하는 것이다. “돈 없는 자 투쟁도 하지 말라”는 자본주의의 철의 방패가 생기는 것이다. 만약 총파업투쟁이 패배한다면 이전에 누렸던 모든 권리와 관행이 자본과 정권이 원하는 식으로 재편됨을 뜻한다.
사활을 건 투쟁
지배계급도 대다수 대중들이 현재의 삶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안다. 설사 대선을 위한 꼼수라고 하더라도 아파트 반값을 말하고, 입으로 서민을 외치고 있다. 누적된 대중의 분노에 대한 불안감 역시 여전하다.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 하락의 배경도 먹고살기 힘들어서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이데올로기 공세와 더불어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대공장 노동자들에게는 대공장 이기주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해 움츠러들게 하고 있으며, 말을 듣지 않으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군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공권력을 동원하여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체포영장, 소환장을 남발하고 있다. 한껏 움츠려들어 기를 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 카운터펀치는 노사관계 로드맵의 국회 통과와 적용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답답할 정도로 투쟁이 갑갑하다 하더라도 미래를 생각한다면 다시 투쟁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최후까지 격렬하게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 투쟁의 전망도 보이는 법이다. 특단의 결의를 내오자!
첫째, 총파업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금속노조, 핵심 대공장노조가 총대를 확실히 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산별 완성 대대에서 총파업 결의를 하자!
둘째, 공공부문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특단의 결의가 필요하다. 대정부투쟁에서 승리하지 않고선 조직력 회복이 어려운 공공부문 노조들에게 대체근로는 파업권 박탈이다. 조합원 총회 형식이든 뭐든 투쟁에 힘을 보태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하여 총파업으로 나아갈 방도를 찾자!
셋째, 공권력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투쟁에 참여한 동지들의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공권력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 지역, 단사 선봉대를 구성해야만 한다. 자생적인 투쟁은 한계가 있다. 준비된 투쟁을 위해 활동가 전체가 선봉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모든 단위가 어렵다. 총파업을 이끌고 온 금속노조, 현대차노조는 더 어려울 것이다. “왜 우리만 투쟁해야 하냐”는 하소연이 집행부의 귓가에 맴돈다. 그렇다고 앉아서 죽을 순 없지 않는가. 한 번 더 다시 총파업 깃발을 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