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년 현대차를 비롯한 주요대공장이 산별노조로 전환한 이후 규약개정이 있었고 15만 금속노조 선거에서 결선까지 치룬 접전 끝에 51.4%의 지지를 얻은 정갑득 후보가 당선되었다. <현장노동자>는 작년 대공장 산별전환과정에서 산별만능론 비판에서부터 사회연대전략 반대후보에 대한 지지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입장을 피력해왔다.
규약개정부터 선거까지
<현장노동자>는 금속노조 규약개정 과정에서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신성원 직무대행을 대표발의자로 하는 규약개정(안) 현장발의 동지들과 함께 했다. 규약개정 과정은 금속노조가 위로부터 통제할 것인가, 아니면 현장공동화를 막고 현장투쟁을 적극적으로 엄호할 것인가 였다. 금속노조 완성대의원대회 준비위 원안에는 위원장의 현장 파업 중단권이라는 독소조항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대의원들의 적극적인 논쟁으로 최악의 규약개정(안) 통과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장투쟁과 현장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 관심을 전혀 갖지 않는 상황에서 규약은 말 그대로 규약일 뿐 현실은 아니기 때문이다. 15만 금속노조 위원장을 뽑는 지도부 선거에서는 현장투쟁을 강화하고 지원하겠다는 후보는 별로 없었다.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주된 공약으로 대부분의 후보들이 제출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여전히 산별교섭 자체일 뿐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 대한 후보들의 방안은 없었다. 당선된 정갑득 후보를 중심으로 정책들을 살펴보자.
조합원의 가장 큰 걱정, 고용불안
현대자동차든 어디든 조합원의 가장 큰 관심은 고용안정이다. 따라서 금속노조 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은 고용문제에 대해서 많은 정책들을 제출했다. 해외공장, 모듈화, 외주화 등의 문제에 대해서 기업별노조로는 대응하기 어렵고 산별노조로 전환하여 산업정책에 개입하지 않으면 항상 사후 대응으로 그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다고 산별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던 터였다. 따라서 정갑득 후보는 대안 있는 산업정책 개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내용은 정책연구원과 업종분과를 강화하여 진보적 산업정책을 마련하고, 자동차산업 육성 특별법 제정, 철강 및 조선산업 육성으로 국내 투자 및 고용보장, 표준 하도급 계약서 작성, 산업 내 총고용 보장과 노동시장 개입 등이다. 전재환 후보나 박병규 후보 역시 고용안정기금이나 지역별 고용센터 및 직업 훈련센터의 개설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즉 대부분의 후보들이 고용안정 투쟁을 전개하되 고용이 불안할 경우를 대비하여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이미 대공장의 산별전환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이기도 했다.
금속연맹은 작년 대공장의 산별전환을 앞두고 독일의 사례를 들며, 자신의 공장이 고용이 줄어들면 다른 공장에 가서 일을 하면 된다는 논리를 설파했었다. 즉 산업 내 총고용 보장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공약이다. 자본주의 경쟁에 따라서, 물량에 따라서 인원의 이동을 용인하는 것이다. 이는 현대 ․ 기아차 자본이 원하는 바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미 현대차 자본은 수 년 전부터 노조에 물량과 인원의 이동에 대해서 단협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며 이에 대한 논의를 제기해왔었다. 더 나아가 전재환 후보는 고용이 불안정할 경우를 대비하여 산별고용보험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모든 해고의 금지
산업정책 개입을 통한 고용안정은 필연적으로 생산성 향상과 같은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될 가능성이 있다. 정갑득 후보가 제출한 자동차산업 육성 특별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노사(정) 간의 합의를 기본적인 전제로 한다. 실업의 문제를 사회안전망, 즉 산별실업기금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자본의 인원축소에 동의해 주는 꼴이다. 크게 단결하고 싸운다는 산별노조, 계급적 대의를 세운다는 산별노조는 1차적으로 ‘모든 해고의 금지’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물론 현재와 같은 역관계에서 ‘모든 해고의 금지’가 당장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원칙을 버리고서는 노동자계급이 생산을 통제하는 것으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단계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간연속 2교대의 실현과 야간노동 철폐다. 이미 야간노동 철폐는 현장에서 야간노동으로 뼈골이 빠지는 노동자들에게는 절실한 과제다. 07년 초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보여준 주야 맞교대 전환에 대해서 전주공장 노동자들은 2차례에 걸쳐 집행부가 사측과 합의해 준 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주간연속 2교대 시행에 반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야 교대제보다 휴일 특근으로 인한 수입이 더 많다는 점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에게는 여전히 야간노동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현장조직인 <현장동지회>의 활동가 대부분은 설비의 확대를 통해서 부족한 물량을 확보하는 것이 대안이지 교대제를 도입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보지 않는다. 야간노동 철폐라는 가교를 통해서 고용의 확대를 위해 투쟁해야 하며, 이후에는 모든 해고의 금지를 위해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해소냐 철폐냐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가장 크게 힘주어 강조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와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 문제다. 정갑득 당선자는 미조직 노동자들까지 산별 단협을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 제도를 언급했다. 그러나 당장 사내하청 노조로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과의 단협 동일적용과 같은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과 같은 공약을 내걸기는 했지만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그 자체로 머물러서는 선언적인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 즉 임금, 고용, 복지 등 단체협약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쟁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공장 노조가 산별로 전환한 이후 현대자동차에서 강신준 교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인정해야 하며, 대신 임금을 좀 올리고 고용이 그나마 안정될 수 있도록 하자며, 서구에서 유행하는 유연안정성이 산별에서 할 수 있는 비정규직 관련 교섭방안임을 역설했다. 이렇게 해서는 비정규직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비정규직 고용이 정당화되어 버린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위한 세부적인 투쟁계획을 가질 필요가 있다. 07년 금속노조 중앙교섭에서 임금과 모든 단협이 교섭의 내용이 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금속노조는 요구(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요 기업지부에 비정규직 동일단협 적용을 요구안으로 채택할 것을 권고하고 강제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정갑득 후보 자신이 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도 가능하다.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금속노조 지도부가 선출되었고, 현대차지부 선거가 마무리되면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를 열어 15만 금속노조의 첫 해 사업을 결정할 것이다. 현장활동가들은 단사 투쟁만이 아니라 금속노조의 사업과 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먼저 07년 중앙교섭의 내용에 대해서 개입해야 한다. 중앙교섭에 나오지 않는 주요 대공장 자본에 대해서는 투쟁을 결의해야 하며, 중앙교섭의 성사를 위해 지도부가 양보안을 제출할 경우 이에 대해 단호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현재의 금속노조는 중앙-지부-지회의 3중 교섭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이중, 삼중 교섭으로 인해 불필요한 비용이 들며, 어차피 단사별 교섭을 또 해야 한다면 산별교섭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따라서 교섭의 횟수를 제한할 것, 그리고 단사 조합원의 통제를 강화할 것을 산별노조에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선거과정에서 이정행 선대본은 양보 없는 산별교섭을 주장했으며,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무쟁의 선언 등과 같은 것을 경계했다.
두 번째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적으로 엄호해야 한다. 현대 ․ 기아차, GM대우와 같은 현장에 조합원이 존재하는 사업장의 경우, 정규직노동자들과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동일한 단협을 적용받을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우를 급속히 개선시킬 수 있는 방안이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는 투쟁이다. 활동가들은 금속노조가 사업으로 받아 안고 투쟁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한편 현장투쟁의 활성화도 활동가들의 몫이다. 작년 11월 규약개정 과정에서 현장투쟁을 제약하려는 관료적인 시도들을 일정 정도 막아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투쟁에 대해서는 집행부의 결정 여부와 상관없이 신분보장기금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현장투쟁을 활성화하여 사업장 내에서의 힘의 우위에 서야 한다.
박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