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차질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사측의 완고한 입장 때문에 장기전으로 돌입할 것 같던 성과급투쟁이 어정쩡한 타협안으로 조기타결 되었다. 노조는 잔업 ․ 특근 거부, 본관 앞 텐트농성, 본사상경투쟁에 이어 선거까지 무기한 연기하고 4시간, 6시간 파업을 강행하였다. 사측의 민주노조에 대한 도발은 9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 제 현장조직과 조합원들을 단결투쟁 하도록 만들었다. 매년 진행해 온 임단협투쟁 때보다 더 많이 모인 7~8000여 명 조합원들의 파업집회는 단순히 강탈당한 성과급 50%를 되찾는 투쟁만은 아니었다.
성과급투쟁- 어정쩡한 타협
성과급투쟁 초기 정부와 총자본, 여론의 현자노조 죽이기 작업에 맞선 울산․아산․전주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지지 성명, 금속비정규직대표자회의의 지지 성명, 민주노총의 연대투쟁 결의로 급속한 확전의 양상을 띠었다. 장기전과 대리전으로 발전할 투쟁이 어정쩡한 타협안으로 급반전 된 것은 사측의 경제적 양보보다 노조의 양보가 더 컸기 때문이다. 성과급 50%가 아닌 생산목표 달성 격려금 50%라는 명목으로 합의한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그 동안 관행으로 합의서 맨 마지막을 장식했던 민형사상 고소․고발 철회, 손배 철회가 합의서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12대 집행부는 자신들이 구속되는 한이 있더라도 조속하고 원만한 합의를 위해 민형사상 고소․고발 철회, 손배 철회를 양보 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감수해야 할 민주노조운동의 위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다양한 악법으로 파업권이 봉쇄되어 있는 현 상태에서 ‘불법’ 파업에 따른 손배 인정은 대기업노조, 아니 산별노조도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다. 철도노조가 2005년 ‘불법’ 파업에 따른 손배 24억원을 몇 년간 분할해 납부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배가 현실화되면 노동조합의 운신의 폭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배달호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간 손배가압류를 정부와 총자본, 여론이 불법파업에 대한 최고의 대응책으로 손배를 활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장노동자>가 우려하는 것은 합의서의 다음과 같은 조항이다. “5. 노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 및 역할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동안 현대자동차를 사랑하고 아껴주신 국민들과 고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사 공동 추천의 외부 전문가위원회를 출범, 공동연구를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발전적 노사문화를 조기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나아가 지역 주민들과 국민들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사회공헌활동에 공동참여 한다.”
노사전문위원회 발족식
노사동수 10인으로 구성된 노사전문위원회(대표 박태주)는 가장 큰 현안인 ▲ 근무형태변경(주간연속 2교대)에 따른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것 ▲ 임금체계 제도개선 ▲ 생산량 및 임금 관련 ▲ 후생복지 및 협력업체 관련 ▲ 기타 생산적 노사문화 구축에 대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현대차 노사간의 당면 현안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활동을 오는 2009년 3월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노사전문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은 노동조합이 해야 할 기본적인 사업 --임금, 노동조건, 근무형태, 후생복지 등-- 의 대부분을 담고 있다. 그것도 현자노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 좁게는 자동차 산업, 넓게는 교대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사업들이다. 협력업체 관련도 부품사, 비정규직 문제를 포괄하는 사안이다. 87년 민주노조운동의 태동 이후 역대 노동조합은 현재의 임금, 근무형태, 후생복지 쟁취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구속, 수배, 해고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주간연속 2교대도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임금, 노동조건, 후생복지의 후퇴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노사전문위원회가 그런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까?
노사전문위원회가 현대차 관계자의 "노사 양측의 합의로 출범하는 노사전문위원회는 외부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대안모색을 통해 발전적인 노사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노사전문위원회를 더욱 활성화시켜 노사 상생 및 화합을 위한 안정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극복하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입장을 제출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깔고 있는 노사전문위원들
박태주 대표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기의 원인과 극복 방안을 도요타에서 찾았다. 그는 세계노동운동사에서 경이로운 현대차노조의 파업이 고용불안에 따른 단기실리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사측이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노조가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는 노사 상생의 ‘빅딜’을 해야 한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거창한 분석처럼 보이지만 하나마나 한 주장이다. 문제의 해법이 생산성 향상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회사가 해온 낡은 레코드의 재판 아닌가? 임금삭감 없는 주간연속 2교대도 생산성 향상만 된다면 아무런 문제없다고 한다. 주간연속 2교대에 대한 노동조합의 입장은 “자본의 이윤을 줄여서라도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이지만 사측과 전문위원회 다수는 “이윤을 확대할 수 있는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박태주는 “........ 도요타는 유연하고 다기능을 갖춘 숙련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하는 구조”이다, “생산방식의 유연성은 현장노동자들의 높은 숙련도와 협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선 도요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박태주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경쟁력이다. 회사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조합은 생산성 향상에 무조건 협조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에 근거해서만 고용과 임금을 보장받자는 자본의 핵심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박태주는 <노사관계 현대차 브레이크 없는 질주? 엑샐레이터>라는 글에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파업이나 라인 정지에 따른 생산차질대수는 98,963대이며 그 중 현안관련 라인 정지는 29,086 대로 30%를 넘는다”고 밝히면서 물량의 이동이나 전환배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안관련 라인 정지의 주요 내용이 모듈화, M/H, UPH 협상인데, 만약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유연화를 쉽게 인정한다면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은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태주의 구상은 비정규직, 산별교섭에 대한 입장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박태주는 “산별노조의 기본은 사회적 연대정신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대원칙”이라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희생과 양보를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임금격차를 구체적 사례로 꼽았다.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정규직의 양보는 박태주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문위원 전체의 입장이기도 하다.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강신준 교수, 98~99년 노사정위원회 책임전문위원이며 2002년~현재까지 노사정위원회 비정규노동특별위원회 공익위원을 맡고 있는 중앙대 이병훈 교수 -- 대표적인 노사정위원회 참여론자다 -- 등 모두 정규직 임금의 희생을 전제로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주장해 온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박태주 대표는 문제 해결의 키를 갖고 있는 산별노조 --교섭권, 체결권 모두 가지고 있다 -- 의 안착을 위해선 산별교섭(금속중앙교섭)이 교섭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을 현실로 보여줘야 한다며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을 권고해 왔다. 박 대표가 요구하는 “전략적 선택”이란 산별교섭 성사를 위해 일정기간 노동조합의 양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며 최후에는 무쟁의라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노사전문위원회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결과물을 제출할리 만무하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현장노동자>는 이제 가동한 노사전문위원회에 어떠한 기대도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아니 오히려 노사전문위원회의 연구과정부터 철저히 공개할 것, 조합원들의 이해를 거스르는 연구결과에 맞서 투쟁할 결의를 높여야 한다.
▶ 노사전문위원회의 연구결과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노조 차원을 넘어 현장활동가들, 반자본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연구단위들이 결합하는 별도의 연구단위를 구성해서 투쟁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노사전문위원회에서 나오는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활동가, 조합원에게 정기적인 공청회를 실시해야 한다. 중요한 현장 사안에 대해 공청회, 보고대회는 기본으로 해왔다. 우리의 노동조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연구용역에 대해 현장조합원들의 참여는 당연한 것이다. 결과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내용에 대한 논쟁이 선행되어야 한다.
▶현 시기 당장 투쟁을 조직할 수 없더라도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 우위를 점하고 이후의 물리적인 투쟁을 위한 고지를 확보해야 한다. 노동조건, 생존권에 지대한 영향을 줄 연구에 대해 활동가들은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현장여론을 조직해야 한다.
정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