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공무원노조 권정환 동지가 민중언론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현장노동자>에 보내왔습니다. 참세상의 양해 하에 글을 게재 합니다
서울시청은 지난 3월 15일 공무원 퇴출후보 3% 명단을 확정했다. 이로 인해 공무원사회에서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마치 유행처럼 전국의 지자체들은 무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들을 퇴출하겠다고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도 이를 공직사회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조치라며 일제히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이다.
공무원 퇴출제는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반인륜적 야만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더욱이 이번 퇴출자 명단에 오른 공무원들을 ‘무능력하고 불성실하면서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는 사람들’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지난 날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의 삼청교육대와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과 다름없는 반인간적이며 야만적인 일이다.
이미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공직사회는 한 차례의 구조조정을 겪었다. 그 당시에도 정부는 퇴출되는 공무원을 무능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으로, 심지어 비리가 있어 쫓겨나는 공무원으로 몰아갔다. 이는 퇴출자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정부의 기만적 행위였다. 이로 인해 퇴출된 공무원은 어느 곳에도 항변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자신을 변호할 수 없게 되었다. 퇴출되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사회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고 싸늘한 시선만을 받았을 뿐이다. 그들의 자녀 또한 무능력하고 불성실한 부모를 둔 죄로 학교와 사회로부터 낙오자와 일탈자로 눈총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번 3% 강제퇴출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수십 년 동안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성실히 살아온 사람들일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그 밥그릇을 빼앗으면서 ‘사회적 암 덩어리’로 낙인까지 찍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짓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이 사회의 지도층들이 눈썹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런 야만적인 일을 실행하는 것과 보수언론들이 이를 옹호하는 것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감추고 그 책임을 희생양을 만들어서 떠넘기는 것이라고 본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사회양극화가 더 심각해지고 공공서비스가 점점 더 열악해지는 것이 과연 이들 하위직 공무원들 때문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외환은행의 자료를 허위조작하고 론스타에 매각되게끔 한 것은 초국적 자본과 유착한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이었지 결코 하위직 공무원이 아니었다. 또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각종 공공서비스가 열악해지는 것은 사회복지에 쓰여야 할 예산을 감축하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책임은 정부와 그 정책을 입안한 정치인들에게 있는 것이지 하위직 공무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서울시와 여러 지자체에서 자행하고 있는 공무원 구조조정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공무원구조조정은 사회 전반의 노동조건과 고용의 질 악화
지금 공직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이번에 3% 퇴출명단에 포함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전체 공무원노동자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서울시에서의 3%는 전국의 3%가 될 것이다. 올해의 3%는 내년에도 새로운 3%의 추가명단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도 새로운 3%를, 아니 그것은 5%, 10%로 확대될 수 있다. 더욱이 계속해서 그 범위는 매년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이 갖추어진다. 나이가 많고 근속년수가 많은 공무원일수록 이 명단을 피해갈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된다. 사실상의 법정 정년제도가 폐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무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을 솎아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가 아닌 전체 공무원의 노동조건과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조치인 것이다. 공무원의 노동조건이 악화될수록 다른 산업에서의 노동조건도 동반하락 할 것이고 이는 다시 공무원의 고용조건을 더욱 더 악화시킬 것이다. 이는 계속해서 악순환이 될 것이다.
행정의 효율성은 공공성의 파괴와 자본의 이윤 증대
지금 정부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무능력하고 불성실한 공무원을 솎아내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2005년부터 총액인건비제를 시범 실시해왔으며 올해에는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까지 포함하여 전면 실시하려고 한다. 총액인건비제를 통해 행정기관의 자율성을 높이고 기구와 정원을 책정, 운영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효율성이란 비용을 줄이고 수입을 많이 늘려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뜻한다. 바로 이 효율성의 개념을 행정에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서비스란 것이 사기업에서의 생산처럼 계량화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공무원에게 지급되는 임금비용을 줄이고 현재 공공영역에서 하는 업무를 아웃소싱이나 민간위탁하는 방법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이다.
행정기관에서 업무를 아웃소싱이나 민간위탁 할 경우 포함된 임금비용은 사업비로 둔갑한다. 이를 통해 행정의 효율성이 높아진 것처럼 보이게 된다. 아웃소싱이나 민간위탁 된 부문은 공무원의 구조조정을 수반하는 것이고 그 자리는 보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민영화된 부문의 공공요금 인상과 함께, 그동안 공무원 임금에서 보전된 비용이 사기업의 이윤으로 흘러들어간다.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는 인건비를 최대 감축한 조직에 한해 교부세 증액과 인센티브 지급으로 기초자치단체를 유인하고 경쟁적으로 이러한 일은 반복되게 된다.
결국 전사회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는 더욱 더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사기업에게 이윤이 되지 않는 사회적 약자지원, 무의탁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지원 그리고 환경보호와 응급의료지원 같은 공공서비스 영역이 약화되게 된다. 부자들은 확대된 시장 속에서 온갖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재앙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무원 퇴출제는 단지 기준만 공정하고 명확하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러한 제도가 아니다. 공무원 퇴출제는 민중의 삶을 더욱 파괴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무원 퇴출제를 무조건 반대해야만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노동조합 밖에는 없다. 더욱이 당사자인 공무원노동자가 공무원노조로 일치단결해서 투쟁해야만 이를 막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정부의 정책에 맞서 싸우고 우리의 정당성을 전 사회에 알려나가는 투쟁을 해야 한다.
공무원 구조조정 저지투쟁은 비정규직 확산을 막는 투쟁
지난 2월 서울시 마포구청에서는 공무원퇴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마포구의 공무원노동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노동조합으로 일치단결하여 투쟁을 하였다. 선전전과 중식집회, 그리고 구청광장에서 수많은 조합원이 모여 대중투쟁을 하였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구청장은 단 한명도 퇴출시키지 못했고 구조조정 정책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들의 투쟁이 구조조정을 막고 승리를 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대안이다.
현재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공무원노조특별법’의 수용여부를 두고 내홍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금 공무원노동자의 일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직접적인 공격 앞에서 한가롭게 이러한 논쟁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금 서울시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지 시청이라는 한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 무너지면 서울의 다른 자치구로 확산은 순식간이며 전국으로 번져 나가서 공무원 구조조정이 대세가 될 것이다. 한 번 제도화되면 이를 폐지하기란 더욱 어려운 법이다. 지금이 이를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공무원 구조조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사회적으로 만연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슬기롭게 대처하고 투쟁에서 승리한다면 이 사회의 노동자들과 민중들 또한 신자유주의의 야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단초를 열 것이다.
권정환 (전국공무원노조 마포지부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