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연속 흑자기업에서 전체 조합원 500여 명 중 20%가 넘는 116 명에 대해 구조조정이 단행되었다. 양산의 한일제관은 IMF 때도 주야 맞교대로 팽팽 돌아가며 사업을 확장하던 기업이었다.
아직 민주노조의 경험과 투쟁의 경험이 없던 한일제관 조합원들은 2006년 1월에 발표된 사측의 구조조정에 넋을 놓고 일방적인 희망퇴직을 강요당하였다. 지금이나 당시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산하의 통칭 어용노동조합으로서 사측의 노무관리 부서역할을 했다. 노동조합이 앞장서 사측에 구조조정 합의를 해주었고 한발 더 나아가 희망퇴직까지 주도하는 악질적인 작태를 서슴지 않았다.
한일제관 자본은 구조조정 과정에서‘고임금이니까, 이번에 정리해고 대상!’이라며 노골적으로 장기근속자와 여성노동자들에게 구조조정에 순응할 것을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성장을 위해 자기 몸이 부서져라 15년, 20년을 묵묵히 일해오던 다수의 조합원들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자기 생존권을 무참히 박탈당해야 했고, 아주 극소수의 조합원들만이 사측의 폭거에 막무가내로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희망퇴직을 거부하였다.
이것이 한일제관 해고투쟁의 시작이다. 한일제관 5명의 구조조정 반대! 원직복직쟁취! 투쟁은 출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본과 정권에 맞서서 생존권을 지키고자 목숨 건 투쟁에 나서고 있다.한일제관 해고자들은 1년을 넘어가는 해고투쟁을 하면서 한일제관 자본에 맞선 투쟁들을 끊임없이 진행해 왔다.
비록 소수이지만 우리들의 투쟁은 출퇴근 선전전을 비롯해 대시민 선전전, 천막농성, 사장실 점거농성, 단식농성 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쉼 없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간절한 염원과는 반대로 한일제관 자본은‘해고자들의 투쟁이 결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일체의 교섭은커녕 구사대를 동원한 투쟁 깨기에 혈안이었다. 5명에서 출발해 나중에 3명으로 줄어든 상황에도 지속된 투쟁은 한일제관 사측에게 있어‘저들의 투쟁력이 질기고 강하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강력하고 집요하게 괴롭히면 투쟁 자체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듯 했다.
이후 한일제관 사측은 구사대를 동원한 폭력을 넘어 몸뚱이 밖에 없는 해고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라는 형태로 탄압의 강도를 높여 갔다. 3억이라는 손배 액수는 투쟁대오에게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닐 뿐더러, 투쟁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우리들로 하여금 패배감을 갖게 하기 위한 저들의 강화된 술책이었다.
지극히 소수의 투쟁하는 대오에게 개별 자본은 법을 앞세워 해고를 합리화 하고 폭력과 손배를 통해 아예 투쟁의 싹을 자르려 한다.
자본을 압박하기 위한 유효한 수단을 갖기도 어렵고 투쟁대오를 불릴 수 있는 연대의 조건도 지극히 취약한 지역의 해고자들에게 사측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일상적인 폭력만행을 자행한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투쟁은 지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어렵게 양산지역에서는 전무했던‘구조조정반대 지역대책위’구성으로까지 나아갔다. 대책위는 한일제관 자본에 대한 압박투쟁을 통해 그간 묵묵부답이던 한일제관 자본을 교섭테이블에 앉히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 교섭을 끌어내봤다는 성과만을 남긴 채 정리되는 과정을 겪고 만다. 열려진 교섭국면을 넘어‘원직복직 쟁취’의 결과를 내는 데는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교섭을 더욱 압박하고 실제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더욱 투쟁 강도를 높이고 집중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쉽게 자신의 조건을 뛰어 넘어 투쟁을 확대 강화하기에 넉넉하지 못했다.
대책위는 최근에 투쟁의 강도가 낮아지고 동력은 더 이상 결집되지 못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해고자들의 간절한 염원인 원직복직의 희망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돌려졌다.
그 동안 양산지역에서 대책위까지 꾸려가며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을 해본 경험이 없던 주체들은 교섭이후의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투쟁을 통한 사측의 압박에 대해서 부담을 가졌고 낮은 수준에서의 투쟁을 통해 동력유지를 하기에 급급한 상황으로 몰렸었다.
결국 초기 대책위의 투쟁으로 열려진 교섭국면은 더 이상 한일제관 자본에 대한 압박의 힘을 지닐 수 없었고, 한일제관 자본은 조직력이 이완되고 더 이상의 투쟁이 담보되지 않는 대책위의 요구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교섭채널과 요구를 묵살한 것이다.
이후 더 이상의 교섭은 진행되지 않았고, 교섭결렬 이후 떨어진 투쟁동력은 회복되지 못한 채 대책위의 집중투쟁은 유야무야되는 상황에 처했다.
이제 한일제관 해고투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했다. 한일제관 해고자들은 객관적인 상황과 주체역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후 한일제관 원직복직투쟁을 장기적인 투쟁으로 전환하고 질긴 투쟁을 통해 기필코 원직복직을 쟁취하자는 결의를 하였다.
지금도 양산 곳곳에서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계약해지라는 생존권 문제가 지속적으로 터지고 있다. 한일제관 해고자들은 지난 1년간의 생존권 쟁취투쟁을 바탕으로 지역연대와 생존권 사수투쟁에 적극 결합해 나갈 것이다.
지방의 작은 도시 양산에서 흑자를 40년 동안 이어오던 기업에서 소리 소문 없이 116명 노동자의 생존권이 박탈되었다. 정리해고 법안 통과 이후에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가! 언제나 자본과 정권에 맞서서 노동자 ․ 민중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은 늘 죽음을 각오하고 또한 죽음을 부르는 투쟁 속에서 쟁취되어 왔다.
한일제관 해고자 3명은 한일제관 자본에 맞서 끝장내는 투쟁을, 그리고 원직복직쟁취를 통해 자본의 잘못된 구조조정을 반드시 엎어버릴 것이다.
소지훈 (양산 한일제관 해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