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 민중들의 반대와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끝내 한미FTA 타결을 강행했다. 택시 노동자 허세욱 동지가 온몸을 불사르면서 항거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자유를 맞아 기뻐 날뛰는 자본가들
한미FTA가 타결되자 가장 기뻐 날뛰는 자들은 역시 자본가들이다. 전경련, 경총, 대한상의, 중소기업협회 등 각급 자본가 단체들이 일제히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우리 경제가 무너지고 한국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는데 왜 이들 자본가들은 그리도 열렬히 환영하는 것인가? 한국 자본가들은 우리 경제와 한국 산업이 어찌 되든 상관없는 다 매국노들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한국 경제발전과 산업경쟁력 강화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도 목소리를 높여온 자들 아닌가. 농업과 극소수 산업의 자본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본가들이 한미FTA로 자신들의 이윤과 부를 늘릴 수 있는 기회라고 확신하고 있어서이다. 무엇보다도 노무현이 말한 대로 “외부 충격을 통한 구조조정”을 전면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다 채울 수 있는 구조조정의 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 주범을 놓아두고 허공을 상대로 싸우는
노동자들이 한미FTA 반대투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노동자의 삶을 팔아넘기는 협정이 한미FTA이다. 따라서 한미FTA 무효화를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노무현 정부와 함께 FTA 협정을 부추기고 적극 지원한 한국 자본가들이다. 이러한 자본가들을 겨냥하여 한미FTA 반대투쟁에 나서는 우리 노동자의 구호는 “구조조정 분쇄!”, “노동자 생존권 사수!” 등 노동자의 요구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국익’을 위해서 또는 우리 경제와 한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는 것은 우리 투쟁의 방향을 호도하는 것이며, 민족적 차원에서 한국 자본가들과 한 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중간계급의 망상일 뿐이다. 또한 문화주권, 교육주권 등등의 00주권 사수나 사대매국협정 반대 등 소시민적인 민족주의 구호들은 FTA 도입의 실질적인 주범인 한국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을 회피하는 구호들이다. 그래서 한국 자본과 투쟁해야 할 노동자의 대적전선을 흐리고 결국은 한미FTA 반대투쟁의 동력을 무너뜨리는 기능을 한다. 한국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을 우회하고서는 한미FTA를 저지, 무효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데 지금 한미FTA 반대투쟁에는 온통 그 같은 민족주의적 구호들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정작 타격해야 할 대상인 한국 자본가계급을 놓아두고 허공에 대고 외치다보니 지금과 같이 한미FTA를 저지하지 못하고 타결을 허용해야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노동자의 요구를 버리고 남의 구호를 따라하는 질곡
왜 이렇게 되었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구호를 버리고 엉뚱한 남의 구호를 따라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해서이다. 그 동안 FTA 저지투쟁을 관장해 온 범국본은 중간계급 시민운동 세력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경제침탈에 맞서 국익과 한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 범민족적 차원에서 한국 자본가계급과도 한 편이 되어 싸울 수 있다고 믿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미국 자본가계급 못지않게 한국 자본가계급도 한미FTA 추진의 주범이라는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애국주의적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주의적 환상과 이데올로기가 범국본에 참가하고 있는 민노당과 노동조합 지도부들을 매개로 해서 노동자 대중들에게까지 유포되어 버렸다. 민주노총과 연맹, 산별노조, 대공장노조 지도부들 모두가 범국본의 민족주의 구호들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에게 선전 교육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라. 노동자의 투쟁동력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갉아먹는 기능을 하는 다른 계급의 구호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FTA 저지투쟁을 하자고 하니 조합원 대중들이 무슨 투쟁할 동기가 촉발되겠는가. 국익을 수호하고 한국 경제와 우리 산업을 지키자고 하고 무슨무슨 주권 사수니 사대매국협정이니 하는 따위의 호소에 어느 노동자가 계급적인 감성을 자극받겠는가.
그 동안 노동자들이 FTA 반대투쟁에 조직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단지 개별 시민으로나 집회에 참가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두 이런 문제들이 질곡으로 작용해 온 때문이었다.
개별 시민으로가 아니라 계급으로, 노동자 군대로
그 동안 질곡이 되어 온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구호들을 이제 걷어치워 버리고, “구조조정 분쇄!”, “노동자 생존권 사수!”, “비정규직 철폐!” 등 노동자 자신의 요구를 내걸고 조직적으로 집단적으로 FTA 반대투쟁에 나서야 할 때다. 그럴 때만이 FTA로 인해 고통 받고 절망하는 중간계급 대중들까지 노동자 대오의 주변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정부와 자본을 실질적으로 타격하여 FTA 반대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동지들! 더 이상 지는 싸움, 무기력한 투쟁이 아니라 이기는 싸움, 힘이 솟구치는 투쟁을 하고 싶다면, 남의 구호에 휩쓸리지 말고 나의 요구, 노동자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자! 그냥 양심적인 시민으로가 아니라 계급으로, 노동자 군대로 대오를 갖춰 FTA 타결에 기뻐 날뛰는 자본가들에게 철퇴를 내리자!
양효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