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금속대대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삼성SDI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에 결합하기 위해 아침에 출발했다. 26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삼성SDI 동지들과 언양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연두빛 새잎에 어울리는 건 바람뿐만이 아니었다. 한 없이 예쁘기만 한 나이에 거리로 내쫒긴 삼성SDI 젊은 비정규직 동지들이 부드러운 봄빛처럼 연두빛 새잎과 나란히 섰다. 서로가 찾은 자신들의 특별한 주소지였다.
금속노조 곤색 조끼 위로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모자를 쓰고 그 위에 단결투쟁 머리띠를 둘렀다. 마스크와 목장갑을 끼고 피켓을 들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구조조정 분쇄하고 가자! 현장으로”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 놓고 동지들을 향해 웃는 모습들은 어떠한 구호보다도 소중한 우리 투쟁의 성과물이 되어야 한다. 삼성SDI 동지들과 연대하기 위해 달려갔지만 열정과 활력에 찬 모습에 내가 더 힘을 받고 왔다.
연대와 투쟁 정신을 팔아먹고 투쟁을 정리하는 것, 이것이 금속노조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방침인가?
삼성SDI 결의대회를 마치고 현대중공업으로 돌아와 현장모임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금속노조 남택규 수석부위원장이 32억원에 하이닉스 매그나칩 자본과 잠정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정이 지나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고 지냈던 하이닉스 매그나칩 지회 조합원 동지에게 전화를 했다. 동지는 이미 술이 취해 있었고 내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면서 울먹였다. 왜 죄송하단 말인가? 동지들은 충분히 고통받아왔고 충분히 투쟁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연대하지 못해, 동지를 지키기 못해 제가 죄송하다고 함께 울었다.
2004년 12월 25일 그 축복 받은 날에, 단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거리로 내쫒긴 동지들이었다. 구속되고 손배 ․ 가압류에 고통당하고 생활고에 못 이겨 아내마저 집을 나가버리고 배가 고파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동지들이었다. 목숨 내 놓고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조직했던 동지들이었다. 그런데 이 동지들에게 금속노조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돈 몇 푼으로 투쟁을 정리하라는 것인가? 돈 몇 푼 받고 노조 깃발을, 그 피의 깃발을 내리라고 협박하는 것인가? “전체 조합원의 뜻”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동지들을 기만하면서 말이다. 이가 갈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연대와 투쟁의 정신으로 지쳐 쓰러진 동지를 일으켜 세우지는 못할망정,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책임지지 못하겠다고, 폭력적으로 투쟁을 종결하려는 모습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에 분노는 가시지 않는다.
26일 새벽, 원청사용자성 인정, 동일단협 적용, 노동시간 단축, 장투사업장 문제 해결, 임금 등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맞선 핵심적인 투쟁 의제들이 중앙교섭 의제에서 부결된 이후 휴식 시간에 나는 우연찮게 금속노조 조직실장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남택규 수석이 막판 교섭을 하고 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돈 몇 푼과 피의 깃발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란 말인가? 연대와 투쟁의 정신을 팔아 처먹고 투쟁을 정리하는 것, 이것이 금속노조 상층 지도부들에겐 “좋은 소식”이자 “사상”이고 “노선”이겠지만 현장으로 돌아가고자 투쟁했던 동지들에겐 피눈물이다. 금속노조 남택규 수석부위원장이 하이닉스 자본이 제시한 32억원에 잠정합의한 것은 통과된 금속노조 5기 사업계획안의 정치적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투쟁을 조직하고 확대하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돈으로 정리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이후 비정규직 투쟁뿐만 아니라 모든 투쟁계획에 대한 금속노조 중앙 지침의 결론일 뿐만 아니라 6월 총파업 투쟁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임시대대를 통과한 사업계획안은 연대와 투쟁 정신을 삭제하고 파업 자제를 선언하는 것, 자본가계급과의 협력 선언이다
25일 금속노조 임시대대는 현 시기 금속노조의 계급적 성격과 세력관계의 배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회순 변경을 통해 1호 안건으로 올라온 한미FTA 체결 저지를 위한 금속노조 총파업 결의의 건은 슬로건부터 전술문제들까지 대단히 많은 제약과 한계를 갖는 안건이었다. 국익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는 한미FTA 무효화 투쟁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른바 “6월항쟁 노선”은 노동자 공동전선을 국회 일정을 중심으로 한 인민전선으로 해체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단적으로 7월부터 도입되는 노동악법 폐기투쟁이 삭제되어 있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한미FTA 무효화 투쟁의 계급적 성격은 바로 노동악법 폐기투쟁을 통해 등장할 수밖에 없고 노동자 공동전선의 현장투쟁 동력은 노동유연화 분쇄, 구조조정 분쇄,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통해서 조직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FTA 체결 저지를 위한 금속노조 총파업 결의의 건은 어떻게든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절충”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절충안마저도 노사협조주의자들은 부담스러워했다. 노사협조주의자들은 대규모적인 구조조정과 연중무휴의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무권리, 빈곤의 축적이 예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조합원들을 핑계되고 투쟁 동력을 구실로 삼아 총파업을 해체하고자 했던 것이다.
“파업 하자 말자는 쉽게 할 수 있다, 조합원들의 견해를 반영해서 심도 깊은 결정을 해야 한다”, “막가파식 파업은 해서는 안 된다”, “파업만이 능사냐”, “현장조직력 점검해서 수위 정하자. 조합원이 따르지 않으면 산별 뿌사질 수 있다”, “민주노총 지침에 성실하게 따른다고 정리하자. 민주노총 일정에 보조를 맞추자“, “동지들을 못 믿겠다. 파업을 안했을 경우에 어떻게 할 건이지 안을 내라”, “각서 쓰고 파업하자” 등 현장 조합원들을 핑계되고 투쟁 동력 부재를 구실로 삼았다.
“파업 해체안”은 부르주아지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현장조합원들의 생존권조차 함께 팔아먹는 행위이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의 “양치기 파업”의 결과는 무엇인가? 노동악법이 국회를 통과했는데도 여전히 국회를 쳐다보며 원망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투쟁할 때 투쟁하지 않고 파업을 해체시킴으로써 현장조원들의 체념을 강화시키고 자본의 현장통제력을 강화시켰다. 이제는 대중동원 능력조차 상실하고 있는 그 책임의 당사자들이 “막가파식 파업”을 해서는 안 된다면서 현장으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현장조합원들의 체념과 불신을 근거로 파업을 해체하고자 했다.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시기와 전술 문제는 중집위로 위임하자”는 기만적인 안은, 파업의 시기와 전술이 삭제된 총파업 결의는 얼마든지 정갑득 집행부에 의해 통제되고 사라질 수 있는 안이었다. 왜냐하면 “파업 자제” 선언을 하고 파업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본가계급을 만나 “산별교섭이 교섭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 향상을 할 수 있는 방안”임을 설득하여 올해 완성4사가 참여하는 산별기본협약, 금속산업 사회적 합의기구를 건설해야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파업 해체안”인 집행부의 수정동의안이 부결되고 원안인 6월 총파업 투쟁 건이 통과되었지만 세력관계는 만만치 않다. 460여 명 중 202명이 “파업 해체안” 을 찬성했고 원안은 271명 찬성으로 과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6월 총파업 투쟁은 산별교섭 확보 일정에 가시처럼 박혀 있지만 언제든지 뽑혀 버려질 수 있다.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인정하고 자본의 구조조정과 배치전환을 허용하는 금속노조의 산업정책들은 ―고용안정기금(노사공동기금), 산별고용지원센타, 공동결정제도(노동조합의 경영참가), 직업훈련, 고용알선, 취업센타의 운영권 확보 등 ― 통과되었다. 6월 총파업 투쟁과 통과된 사업계획안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다. 금속노조 임시대대에서 통과된 사업계획안의 핵심적인 사상은 연대와 투쟁의 정신을 삭제하고 파업 자제를 선언하는 것, 자본가계급과의 협력 선언이기 때문이다. 하나가 채택되면 하나는 폐기될 수밖에 없는 적대적인 계획들, 전투는 불가피하다.
불법 비공인 파업을 조직할 수 있는 현장투쟁 주체들을 재조직해야 한다. 여기에 미래가 달려 있다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를 분쇄하기 위한 핵심적인 투쟁 의제인 ▲비정규직 의제 1. 원청사용자성 인정 (367/175) 부결, 2. 동일단협 적용 (348/133) 부결, ▲노동시간 단축 의제 (355/105) 부결, ▲임금의제 (380/107) 부결, ▲장투사업장 의제 (353/158) 부결, ▲[산업공동화 대책], [산별고용안정시스템구축] 삭제안 (350/12 ) 부결 등, 죄다 부결되었다.
노사협조주의에 대한 이론적이고 정치적 태도인 [산업공동화 대책], [산별고용안정시스템구축]에 찬성표를 던진 대의원 동지들은 12명밖에는 안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노동해방주의자들의 정치적 선전 선동이 백배는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지불능력에 종속되고 손에 잡히는 결과물의 압력 하에 놓인 현장대의원들은 노동해방주의자들의 모든 선전과 선동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들을 노동해방의 전망 하에 새롭게 일으켜 세우는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노사협조주의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계급적 현안 문제인 비정규직 의제, 노동시간단축 의제, 장투사업장 의제, 임금의제를 쟁취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현장투사들이 12명에서 271명으로 확대되었을 때 총파업은 해체되지 않을 것이며 노사협조주의자들의 파업 통제와 파괴를 뚫고 전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노사협조주의 VS 노동해방주의의 세력관계는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상층 중심의 정파 질서는 구획되어 고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현장 투사들은 소수일지라도 현장을 향한 정치적 선전 선동의 결과들에 따라 정파적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현장의 힘”이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을 “6월 총파업 투쟁 결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생중계되고 있는 대의원 대회장에서 감히 노골적으로 총파업을 반대할 수 없었던 노사협조주의자들의 기만적인 논리들을 보라. 이제 이들을 현장투쟁의 압력 하에 놓이도록 하는 것, 나아가 이들의 지도력을 뿌리로부터 끊어내는 계급투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이 땅 노동계급에 대한 무제한적인 수탈이 개시되고 있는 현 시기는 노사협조주의자들의 정치 ․ 조직적 기반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정치적 폭로의 재료들이 매일 매일 제공되고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투쟁은 중앙 사업계획서 밖에서 매일 매일 조직되고 있다. 이것을 계급투쟁으로 조직하는 것은 전적으로 현장투사들의 몫이다.
따라서 6월 총파업을 지지했던 271명의 대의원 동지들이 노사협조주의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도록 하는 것, 규율 잡힌 새로운 조직운동의 필요성을 자각하도록 하는 것, 나아가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맞선 투쟁 의제들을 현장에서 선전 선동하는 능력들을 향상시키는 것, 나아가 노사협조주의자들의 통제를 뚫고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불법 비공인 파업을 조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는 현장투사들의 이러한 정치 ․ 조직적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옛 혁명가의 슬로건은 현 시기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조직하고자 하는 모든 현장투사들의 투쟁 방침이 되어야 한다.
조성웅 (금속노조 현중사내하청지회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