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조합원의 의사를 직접 묻는 것이 가장 민주적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민주노조운동이 지켜온 원칙이자 조합원의 상식이기도 하다. 민주노조운동을 함께 해온 어느 노조에서나 조합원이 자신의 대표자를 직접 선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적 원칙과 상식이 총연맹에서는 아직까지 통하지 않고 있다. 총연맹의 위원장을 전국의 조합원이 자기 손으로 뽑는 것은 현장에서 당연시되는 상식의 적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의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은 다시 한번 조합원의 상식을 거스르고 있다. 지금의 간간선제를 단지 앞 글자만 떼어내서 간선제로 바꾸는 선거인단제가 어떤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굳이 선거 두 번 치를 것 없이 전체 조합원의 투표로 위원장을 뽑는 것이 쉽고도 옳은 길이다.
쉽고 옳은 직선제를 놓아두고 선거인단제를 하려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마당에, 집행부가 7월 28일에 서울지역본부에서 조직혁신안 관련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다. 설명회장에는 40여명의 조합원이 모였고, 집행부에서는 최은민 부위원장과 박유순 기획실장이 왔다. 혁신안에 대해서 박유순 기획실장의 발제가 시작되었다. 발제의 내용은 대략 ‘지도부도 임원직선제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조건들을 따져보았을 때 당장 직선제 실시하는 것은 어렵다. 직선제를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선거인단제는 직선제로 가는 과정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일단 선거인단제를 해보면서 2009년에 직선제 도입을 검토하자’는 것이었다. 발제가 끝나고 혁신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대체로 ‘지도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직선제를 못한다는데, 사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직선제 못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다. 조합원들은 직선제 할 준비가 되어있다. 오히려 선거인단제 하는 것이 직선제보다 어렵다’와 같은 내용의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조합원의 문제제기는 정당했다. 지도부가 들고 있는 직선제를 하지 못하는 이유들 즉, ‘선거인명부가 없다. 선거관리가 어렵고 선거비용이 많이 든다’ 등의 실무적인 어려움과 자본의 지배개입 가능성, 정파적 대결의 전국화 등을 비판하는 데에는 복잡한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실무가 어려워서 선거 안하겠다는 조합원은 없다. 지배개입이나 정파적 대결은 상층부의 문제지 조합원들은 건강하다’라는 조합원의 당당함이면 충분했다. 이처럼 조합원은 자신있어하는데도 지도부는 준비단계가 필요하다며 직선제를 회피하려 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그 이유를 보면 곧 직선제를 위한 조합원의 소양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조합원으로서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대접이다. 이처럼 지도부가 조합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조합원 때문이랄 수 있을까? 오히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총연맹에 오래 있은 탓일 게다.
조합원을 이끌어야 할 지도부의 혁신안이 오히려 조합원의 상식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제는 조합원이 지도부를 이끌어야 할 참이다. 하지만 지도부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있지 않은 것 같다. 겸허한 지도부라면 전국순회 설명회를 실제적인 의사수렴의 장으로 여기고 조직해야 할 터인데, 반대로 지금 지도부는 설명회를 형식적인 요식절차로 만들고 있다. 조합원이 한참 일할 시간에 하는, 더욱이 단위노조 대표자 및 간부만 오라는 설명회를 바라보며 지도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조합원의 손으로 직접 뽑지 않은 지도부라서 그렇다는 말을 참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