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노총이 그럴 줄, 정말 몰랐나!?
9월 11일 노사정 로드맵 야합 이후, 한국노총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한국노총을 해체하라는 주장이 각 성명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한다면, 한국노총이 충분히 그럴 줄 다들 예상했었다는 게 정확하다. 태생부터가 대한노총이라는 어용노총인 한국노총으로서는 자기사업장에 민주노조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복수노조에 반대할 수 밖에 없고, 상층 노조 관료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임자 임금 지급에 필사적이다. 게다가 한국노총은 바로 작년말 비정규 법 개악 저지 투쟁 당시에도, 노무현 정권의 개악안을 대폭 수용한 것을 노동계 최종안이라면서 도리어 투쟁에 훼방을 놓았었다. 따라서 한국노총에게 그럴 줄 몰랐다고 한다면, 순진하다 못해 아예 무능한 것이다. 오히려 한국노총 배신자 운운은 민주노총이 로드맵 분쇄 투쟁에서 실패한 것에 대해 한국노총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 로드맵 분쇄를 위한 전술이었던 사회적 교섭 전술, 즉 노사정위에 복귀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 결과 로드맵 분쇄 ‘투쟁’은 없었고 노사정대표자회의 교섭만 있었다.
2. 노사정위 복귀 - 직권조인 하던가 아니면 들러리 서던가
신자유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역관계에서 자본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6년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역관계는 역전되었는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오히려 자본가 계급의 공세가 더욱 거세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교섭, 즉 노사정위에 복귀해서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두 가지 정해진 시나리오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하나는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처럼 직권조인 하듯이 노동자 계급의 생존권을 자본가 계급과 자본가 정권에 팔아먹는 경우이다. 이런 예가 바로 98년도 노사정위 1기 때, 민주노총 배석범 위원장직무대행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에 합의해주는 도장을 찍어주었던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직권조인 하기 전에 노사정위를 탈퇴해서 직권조인만은 하지 않는 경우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대신 들러리가 된다. 이번 로드맵 노사정대표자회의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한국노총은 노동자 계급의 생존권을 팔아먹는 야합을 했고, 민주노총은 탈퇴 선언까지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막판에 제외된 채 노사정 합의 과정의 철저한 들러리가 되었다.
그러나 직권조인 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이번처럼 들러리가 되는 경우 역시 문제는 심각하다. 우선 민주노총은 일단 협상에 임했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노사관계 로드맵 자체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반대했다고 대중적으로 인식될 수가 없다. 그 다음, 한국노총은 남아서 합의를 했기 때문에 자본가 계급과 노무현 정권은 노사정 대타협이었다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철저히 노사정 야합의 들러리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로드맵 분쇄를 비롯한 전반적인 ‘투쟁’ 자체가 노사정대표자회의 때문에 철저하게 방기된다는 것이다.
3. 고 하중근 열사 두 번 죽인 로드맵 노사정대표자회의
실제로 노사정대표자 회의가 열렸던 지난 6월말부터 9월초 사이에 민주노총은 대정부, 대자본 투쟁을 방기했다. 특히 고 하중근 열사 사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민주노총이 해야할 총력 투쟁은 노사정대표자 회의에 맞춰져 논의 시한 이후인 9월 5일 이후로 모두 미뤄졌다. 열사가 돌아가신게 8월 1일 이었는데 한달이 넘어서야 총력투쟁을 하겠다는 것은 실상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다.
어용노총인 한국노총 마저도 작년 고 김태환 열사 투쟁 당시 노사정위원회를 박차고 나가고 모든 위원회에 불참한 채 총력 투쟁에 임했던 것을 기억한다. 반면에 민주노총은 조준호 위원장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열사 리본까지 단 채 참석해서 대화와 협상에 임했다. 살인 정권, 살인자 계급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와 협상을 한다는 것은 열사에 대한 예의가 아닐 뿐만 아니라 노조 대표자가 할 짓이 아니다. 열사를 살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부정하는 자본가 계급과 자본가 정권에 대해 민주노총 대표자가 대화와 협상을 하고 있는데, 열사 투쟁 자체가 진정성을 가질 수 없다. 이는 열사 투쟁 현장에서도 확인 가능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노무현 정권은 열사 투쟁에 대해서 철저히 폭력으로 나왔다.
4. 조합원 총회는 커녕 대의원 대회 조차 무시한 비민주적 노사정위 복귀!
게다가 노사정위 복귀는 민주적 절차를 밟아 결정된 것도 아니다. 6월 19일 민주노총 중집 회의에서 노사정위 복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2005년 대의원대회는 노사정위 복귀 문제 때문에 몇 번이나 무산되고 유예가 되었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노사정위 복귀를 최소한 전 조합원 총투표와 같은 더 확대된 민주적 방식을 통해서 결정할 순 있어도, 대의원 대회에서 위임한 적도 없는 중앙위나 중집에서 노사정위를 복귀할 수는 없다. 이는 민주노총 규약 위반이요 월권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절차상 노사정위 복귀 자체는 무효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특히 전진 그룹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진은 작년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직후, 이미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석하는 사회적 교섭 전술은 정기대의원원대회에서 통과된 사업계획 상 나와있는 중층적/총체적 교섭방침으로도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는 전진 대표가 민중언론 참세상에 기고한 글에서, 또 전진 그룹을 대표해서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토론회에 참석한 회원이 했던 발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이수호 집행부가 별도 안건으로 사회적 교섭 전술, 즉 노사정위 복귀를 안건 상정한 이유는 노사정위 복귀가 심각한 문제이자 격렬한 반대 입장이 상당수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진 그룹이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제시한 해법은 한마디로 이미 상정된 안건 자체를 무시해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는 노사정대표자회의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이 민주적 의사결정 없이도 복귀할 수 있도록, 국민파 집행부에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렇게 전진 그룹은 이미 작년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하는 것이 절차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6월 19일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전진 소속 중집위원들은 분명히 노사정위 복귀에 찬성을 했다.
5. 6월 19일 노사정위 복귀를 만장일치로 결정한 중집은 정치적 책임을 지고 조합원들 앞에 공개사죄하라!
앞서 말했던 전진 뿐만 아니라 소위 좌파 중집위원들 역시 조준호 집행부의 노사정위 복귀에 대해서 끝까지 반대하지 못한 채, 만장일치로 결정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로드맵을 앞두고 5월 말 민주노총은 중집회의와 중앙위원회에서 노사정위 복귀 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노사정위 복귀 전술을 폐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그다지 회의 성원의 변화도 없이 어이없게도 6월 중집에서는 노사정위 복귀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당시 논쟁은 파업이 안되니 교섭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사정위는 실상 자본가 계급과 자본가 정권의 개악안을 안건으로 두고 벌어지는 협상장이다. 따라서 사실 말이 협상장이지 개악 과정에 명백한 반대를 하지 않는 들러리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잘 모르는 대중 입장에서는 뭔가 주고 받을 것이 있는가 보다라는 인상을 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줄 것은 노동계급의 생존권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투쟁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교섭에 임해봤자 그 교섭은 철저한 양보교섭과 직권조인 뿐이다. 그렇다면 투쟁이 안 된다고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투쟁을 계속 조직하는 것이 답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99년 이후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위 복귀에 대해 조준호 집행부와, 이에 대해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준 중앙집행위원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조합원 앞에 머리 숙여 공개 사죄부터 해야한다. 앞으로 로드맵 분쇄 투쟁이 조합원들에게 진정성을 가지려면, 사회적 교섭 전술, 즉 노사정위 복귀가 오류였음을, 특히 무엇보다도 비민주적 의사결정이었음을 반성하고 공개 사죄하는 것만이 그 전제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