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경 하나, 하중근 열사가 ‘남들 다 하는 주5일제하라’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맞아 돌아가시고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9월 6일에 장례를 치렀다. 물론 장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유족의 입장이 받아들여져서 결국 ‘전국건설노동자’ 장으로 치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를 가눌 수 없다. 살인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나, 대통령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언론과 검경의 탄압 속에 고된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벌써 몇 년째 계속된 건설노동자에 대한 탄압으로 대구, 경북, 울산, 경기 등에서 정당한 교섭과 투쟁으로 임단협을 체결했음에도 검찰은 이들 지도부에 대해 공갈, 금품갈취 등으로 수배, 구속하는 실정이다.
풍경 둘, 고속철도승무지부 동지들이 철도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부당해고에 맞서 파업투쟁한지 200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 이들의 요구에 귀를 막은 언론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고용이나 노동관계에서 철도공사가 실제 사용자로서 역할을 했다는 자료가 계속 폭로되면서 이들의 주장에 차츰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여성파견노동자로서 전체 노동자의 95% 이상을 불법 파견으로 채워 사업을 해 온 기륭전자는 어떤가? 지난 해 여름에 시작된 투쟁이 공장점거와 천막농성 등으로 이어져 만 1년이 지난 상황에도 회사는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잘만 돌아가며 차량용 위성수신기를 만들고 있다. 그 1년을 지나며 이번에는 기륭전자분회 분회장과 부분회장 동지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회사와 교섭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풍경 셋, 이러한 상황에도 정부는 한미FTA를 통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며 3차에 이르는 협상에 매달리고 있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지금과 같은 조건에서 FTA를 실시한다면 농업뿐만이 아니라 서비스시장을 포함한 전 사업에서 우리의 시장이 붕괴되고 실업자가 넘칠 것이라’고 경고해도 한 귀로 흘리며 미국과 협상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농업시장뿐만이 아니라 유통, 의료, 교육, 법률 등 서비스 전 분야에서 미국의 선진 자본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대부분의 중소영세 자본은 문을 닫고 노동시장을 더욱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2. 정부의 노사관계선진화방안(일명 로드맵)과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이미 여러 곳에서 얘기했으므로 여기서는 그냥 넘어간다. 오히려 거기에 대응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 대해 쓴 소리를 하고자 한다. 민주노총은 전국노동자대회와 메이데이 집회를 통해 계속하여 ‘로드맵 분쇄, 노동법 개악저지,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 쟁취’를 우리의 요구라고 확인하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와 한국노총과 공조를 결정하였다. 노사정대표자회의는 결국 민주노총을 뺀 채 노사정이 모여 ‘복수노조 합법화 와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3년 유예’를 주 내용으로 해서 ‘필수공익사업장 확대-파업시 대체근로 가능, 부당해고에 대한 금전보상 가능’ 등을 결정하였다.
공무원노조는 정부의 불인정으로 각 지자체에 의해 정면으로 탄압받고 있고, 위장된 자영업자로 취급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처지는 ‘경제법적 보호’ 운운하는 속에 2000년 논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려 한다.
민주노동당을 본다면 지난 겨울 단병호 의원이 ‘기간제사용에 대한 사유 제한 축소’ 수정안을 맨 처음 들고 나왔으나 별 논의 없이 2005년 정기국회가 마감된 이후 이번에는 권영길 의원이 ‘노동계 단일안’을 얘기하며 수정안을 제안하였다. 지난 단병호 의원 수정안 때와 마찬가지로 당내에서 별 토론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나, 이것이 당과 민주노총 정례협의를 통해 어느 순간 우리의 기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당과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나 한국노총과 공조를 통한 ‘노동계 단일안’에 매달리다가 교섭틀 안에서도, 대중투쟁 공간에서도 적절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3. 민주노총은 이러한 때 즉각 노사정 야합 무효를 선언하고,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의 힘으로 로드맵 분쇄와 비정규직법 개악안을 폐기하는 투쟁을 벌여나가자. 이미 진행 중인 노사관계선진화방안과 10년 전 IMF보다도 몇 곱절 더 노동자를 잡는다는 한미FTA에 묶어 이번 비정규법안 폐기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늘 동력이 문제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또한 늘 동력 계산하다가 때를 놓치거나, 정작 시도도 해 보지 못한 채 놈들의 들러리를 설 때가 많았다. 이번만큼은 정말 이 땅의 주인은 노동자이고, 우리가 노동하지 않으면 세상이 멈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도록 하자. 또한 이것은 총연맹과 몇몇 산별연맹(노조) 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단위 노조와 활동가들까지 함께 가야 할 투쟁이고 문제이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년 동안 민주노조운동을 이끌었던 대공장 노동자와 함께 사내하청 노동자, 불법파견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위장된 고용관계에 저항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