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을 위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이 도래하고 있나?
요즘 언론매체나 노동운동 주변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례를 순서대로 적어본다면 8월 열우당 김근태씨의 노동계에 대한 잡딜 제안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는 9월 20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고회’를 열고 2010년까지 사회서비스 일자리 8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은 9월 28일, ‘좋은 일자리 빨리 만들기’라는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을 발표하여,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정부주도의 거품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 만들기의 주인공인 기업’과 지방주도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한편, 어용노조 한국노총의 위원장 이용득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희극을 보여주고 있다. 이용득 어용 위원장은 6월에 미국에 투자유치를 위해 자본과 함께 외유하더니, 9월 26일 일본 도쿄로 날라 가서 200여명의 투자가들을 모아놓고 ‘한국투자환경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이용득 어용 위원장은 이제 “노동운동의 목적이 임금인상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바뀌고 있다”고 말하면서 “노사문제 때문에 한국 투자를 망설인다면 이제 그런 걱정은 털어버리라”고 장담하였다고 한다.
보수우익세력에서도 이제는 노동운동 내에 자기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하여, 노동자를 배신한 권용목씨가 대표를 하는 ‘뉴라이트 신노동연합’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공공연히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거칠고 맞서 싸우는 투쟁의 이미지가 강했다”며, “이제 노동자와 경영자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역시 노동운동의 최대 과제로 일자리 창출을 거론하면서 “국민전체의 최대 관심과 고민은 양극화 해소이고 전체 노동자의 고민은 고용의 안정성과 양질의 일자리”라고 하면서 “기업, 정부, 노동자 모두 힘을 합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양극화를 해소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IMF가 도래한 이후 실업률이 높아지자 김대중정권이 일자리창출을 위해서는 해외투자에 적극적이고 기업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한 바는 있지만, 지금처럼 자본과 정권, 보수우익, 어용노총, 노동운동의 배신자들을 막론하고 ‘일자리 창출’에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의미부여를 했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으로서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노동운동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개편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 할 것이다.
자본의 논리대로는 좋은 일자리는커녕 일자리 창출조차 어렵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은 일자리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는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업률은 수치상으로 3%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일자리의 감소, 특히 양질의 일자리 감소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제조업부분에서의 취업비중은 489만명에서 418만명으로 71만명이 축소되었으며, 특히 대기업의 경우에는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에 전력을 다하면서 대규모 사업체 고용비율이 1993년 30%에서 2004년 17%로 감소하였다. 500인 이상 사업체의 수도 1993년 719개에서 2004년 383개로 축소되었다. 게다가 각종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가 확산되고 기업의 경력직 선호와 고학력화로 대량 등의 이유로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일자리 창출’은 중요한 정치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자본은 ‘일자리 축소’의 의제를 자신의 것으로 적극 소화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듯한 가면을 쓰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현실에서는 기껏해야 열악한 노동조건의 노동자들을 확산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노동자들을 포섭하고 노동운동을 해체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우선 이들이 내놓고 있는 대안은 서비스 업종에서 대대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은 9월 20일 노무현정부의 사회서비스 확대방안이나, 한나라당이 발표한 ‘좋은 일자리 빨리 만들기 대책’에서 결국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부평에서 개점한 ‘2001 아울렛’이라는 대형유통마트가 1000명의 직원 중 33명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한 사례는, 서비스부문에서의 일자리 확대가 결국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노예만을 더 많이 창출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효율성’,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느 영역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더라도 ‘좋은’ 일자리, ‘버젓한’ 일자리는 아닐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업활동 여건을 보장하고 기업규제 해소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이 일자리 창출의 주체이기 때문에 기업투자와 여건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성장이 되어야 분배가 된다’는 구닥다리 논리의 변형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경제가 성장을 하다라도 일자리 창출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국내기업이 ‘생산성향상, 비용절감형 경영에 주력’했기 때문이라고 들고 있다. 자본가들조차도 투자여건을 확보를 위한 행위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논리는 결국 자본가들이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하는 뻔한 거짓말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투자유치를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열심히 나서서 하고 있는 일이다. 이용득 어용위원장은 마치 이것이 뭔가 새로운 노동운동을 만드는 일에 자신이 나서고 있다는 데에 퍽이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이 열심히 유치를 해서 공장이 들어온들, 이 공장이 노동자들에게 좋은 임금을 주고 정규직으로 채용할 리 없다는 것은 이용득 위원장 빼고는 모두 아는 사실이다.
즉 실제로 이들이 일자리 창출 그것도 ‘좋은’, ‘버젓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기는 힘든 것이다. 그리고 창출된 일자리도 결국 비정규직에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자리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효과가 전혀 없는 대안을 내놓고서도, 버젓이 ‘일자리 창출’을 운운하고 있다.
‘일자리 감소의 극복’은 허울뿐, 안정된 일자리 창출은 자본주의 극복이 대안
최근 나오고 있는 자본과 정권, 보수우익세력의 ‘일자리 창출’ 논의라는 것 자체는 실제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보다는 노동자계급을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포섭하고, 노동운동을 체계적으로 해체하는 것에 중심이 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아야 한다. ‘일자리 창출’ 대책이 단지 그 자체 정책으로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노동운동의 변화와 관련지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하겠다. 일자리 부족이라는 중대한 현실에 대해 자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자본의 일자리 창출 대책이 실현불가능한 것이라 할지라도 의제를 선점한 자본에게 계속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부족으로 노동자계급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의 극복이 어떠한 방법으로 가능한가이다. 이미 자본주의의 시장질서, 이윤추구논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한, 현재의 일자리 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는 요원한 것이다. 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버리고,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임금과 노동조건, 고용안정을 보장해주는 일자리를 대거 확대해 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대당할 수 있는 자기 이념을 노동자계급이 무장하고, 이에 대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일자리 요구투쟁을 할 때, 안정된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자본과 노동자 계급 내 자본의 꼭두각시들은 자본에 순종하는 길이 일자리를, 그것도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를 전면에서 공격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 즉 사회주의적 자기 전망을 가지고 이에 입각하여 대응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확보하는 유일한 방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