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7호/민주노총조직혁신(2)] ‘대대 유회’와 ‘조직혁신안’ 실종에 대하여

[특별기고] ‘대의원 직선제’ 수정동의안 대표 발의한 정은교 대의원

지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는 모처럼 ‘조직 혁신안’이 안건으로 제출되었는데 변변히 토론도 되지 못하고 ‘유회’를 맞았다. 두 가지 점을 짚자.
첫째, 올해 들어와 대대 ‘유회’나 심지어 참가자 미달로 인해 대대가 열리지도 못하는 사태가 네 차례나 일어났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둘째, 지난 대대의 유회는 ‘조직 혁신’에 미온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빚어진 인상이 짙거니와, 한편으로는 집행부가 편법으로 조직혁신안 투표를 꾀하려 했던 소행도 살펴볼 일이다. 그 날 (밑으로부터) 직선제를 추진하는 쪽에서 ‘대의원 직선’ 등을 수정동의안으로 제출했는데 “이들이 수정동의안을 철회해 주었더라면 (불충분하나마) 조직혁신이 실현되었을 것”이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군데군데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의원 직선’은 내가 대표로 발의했으므로, 이들의 말이 옳다면 나는 분별의 지혜가 없는 고집쟁이가 된다!

첫째, ‘유회’는 민주노총의 위기를 재확인해준다. 민주노총 과반수의 대의원이 민주노총의 일에 성의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요, ‘주인’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이 ‘식물 상태’를 벗어나려면 서너 시간의 회의도 지루해하는 대의원들일랑 아예 내쫓고 열의가 있는 사람들로 새로 대의원대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을 들여오기는 쉽지 않다. 다들 이 해결책을 찬성할 만큼 지금 민주노총이 치열한 분위기라면 애시당초 그런 사태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불참대의원과 중도에 빠져나간 대의원 명단을 공개하라’는 온건책이 나온다. 써봄직한 방안이지만 어쩌다 한번 쓸 일이고 약간의 ‘긴장감’만 생길 뿐이다. 이런 일을 애시당초 예방하려면 우선은 ‘대의원 직선’을 들여와 대의원들의 주체성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조준호 집행부가 ‘임원 직선’만으로 땜질한 것이 얼마나 얕은 수작이었는지, ‘유회’로 새삼 드러났다.

둘째로, 민주노총 간부나 대의원들은 조직혁신의 진정성이 없었다. 민주노총이 ‘대공장 정규직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여론의 따가운 비난을 우리가 하루 이틀 듣지 않았는데 간부들이 이 소리를 경청했더라면 진작에 ‘중소영세, 이주, 비정규’ 할당제가 나왔으리라. 실제로는 집행부 안에 ‘뒤늦게’ 그것도 ‘비정규’만 생색으로 끼워넣기로 들어갔다. 집행부 안에 ‘대의원 직선’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그 다음으로 따질 일이다.
위원장이 ‘만장일치’의 편법으로 규약개정 투표에 들어가려 한 것도 살펴보자. 의사정족수 확인과정을 생략함으로써 규약개정 투표에 들어갈 수 있고, 투표가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에 연락을 넣어 ‘과반수를 채운다’는 야무진 작전의 논거는 두 가지다. ① 편법이면 좀 어떠냐? ② 편법이라도 괜찮을 만큼 ‘임원 직선’은 의미가 크다.
① 백 걸음 양보하여, 다른 어떤 사업을 위해 편법을 썼다면 또 모르겠다. 조직 내에 꽉 막힌 말길을 트려고 ‘조직 혁신’을 꾀하는데 이를 의사정족수에도 미달하는 대의원들이 ‘쉬쉬하며’ 결의한다는 말인가? 누군가라도 그 ‘진행의 합법성’을 국가기구에 따져묻는다면 망신살이 어디까지 뻗치겠는가. 이는 이미 민주노총에서 ‘상식’이 사라졌다는 징표다.
② “지금은 이것만, 벅찬 과제는 다음에 하자!”는 ‘단계론’이 때로는 옳을 때가 있는데 그것은 구조가 바뀌기 전에는 ‘다음’ 과제를 앞당길 수 없을 때다. 가령 봉건 사회는 ‘사회주의 변혁’을 당장 추진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단계론은 현상유지 세력이 내거는 허튼 핑계인 바, 조준호 집행부의 핑계가 바로 그 경우다. ‘대의원 선거구 확정’은 그저 숫자 조정문제일 뿐인데 어찌 구실 대기가 그렇게 용감한가.
원래 ‘임원 직선’은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일인 반면, ‘대의원 직선’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국가의 수장은 직선으로도, 간선으로도 뽑는 반면, 의회 의원은 반드시 ‘직선’으로 뽑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대의원을 직선으로 뽑지 않으면서 굳이 위원장을 직선으로 뽑는 것은 그저 ‘미흡하다’고 아쉬워할 문제를 넘어, 뻔뻔스런 ‘사기극’이 아닌가! 언로는 그대로 막혀 있는 채, ‘대표성’만 허구적으로 높여서 관료주의를 더 굳힌다.

더 깊은 물음을 던지자. 정권이 민주노총을 따돌리고(우습게 여기고) 한국노총과 로드맵을 ‘야합’한 것은 민주노총이 ‘총체적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는 뜻이다. 이 추락상을 타개하는 데에 ‘가장 급한’ 일은 ‘조직 혁신’이 아니지 않은가. ‘임원 직선’이 그나마 의미 있으려면 이를 통해 ‘발본의 세력’이 진출해낼 여지가 ‘지금’ 있어야 하는데, 과연 희망을 주는 세력이 우리 주변에 형성돼 있는가? 어떤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당장 강력한 ‘총파업’을 일으킬 수 있는가? 천만 노동자를 거뜬히 엮어낼 ‘비전과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은 또 있는가? 화급한 일은 우리들 사이에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할 ‘비전’을 모아내는 일이 아닐까?
“조직혁신을 하려거든 제대로 하라. 시늉만 할 바에야 애시당초 그만 두라! ‘시늉’은 사기극이기 때문이다. ‘단계론’은 어느 것이나 다 수상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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