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해결에 무능력한 6자회담
작년 10월의 북한 핵실험이 야기한 한반도 위기 고조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한반도 위기 고조의 근본원인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주의적 정책에 있다. 미국의 북한체제 붕괴책동이 핵실험이라는 북한의 과잉행동을 유발한 것이다. 북미간 적대의 심화에 따른 한반도 위기는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중단하고 북미간 직접대화에 나서 북한과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함으로써만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핵실험으로 고조된 위기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함으로써 잠시 이완되었다. 현재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공식적 협의체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6자회담의 틀 내에서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지지부진하지 않을 수 없다. 6자회담 자체가 미국이 한반도 위기의 근본책임을 북한에게 떠넘기고, 마치 북한이 일으킨 문제를 주변 이해관계국들이 모여 해결하는 것처럼 호도하기 위해 직접대화 요구를 거부하고 북한에게 강요한 대화틀이기 때문이다. 또한 6자회담은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구상된 것이다.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국의 의지도 전달해줄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에 비우호적인 일본과 한국을 참여시킴으로써 북한의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었다.
북핵문제의 해결은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는 미국의 실질적인 태도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미국의 태도변화는 한반도 위기의 근본책임이 미국에게 있음이 적극적으로 폭로되고 공유됨으로써 가능하다. 하지만 6자회담은 책임소재를 흐리고 미국을 변호해주는 역할을 통해 북핵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다. 사실상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북미간 직접대화 방식을 통해서만 북핵문제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이후의 미국의 BDA(방코델타아시아 은행) 북한계좌 동결 그리고 북한의 6자회담 이탈, 2006년 7월 미사일 실험, 9월 핵실험, 이에 이어지는 미국 주도의 UN 대북제재 결의와 북한의 6자회담 복귀, 13개월 만에 재개된 제5차 6자회담의 휴회까지의 후퇴와 제자리를 오가며 위기를 증폭시켜 온 지금의 답보상태는 6자회담이 문제해결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북핵문제는 6자회담이 아닌 북미간 직접대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제5차 6자회담과 베를린 회동
2005년 11월 이후 13개월 만인 작년 12월에 재개된 2단계 제5차 6자회담은 별 성과 없이 휴회됐다. 미국은 북한에게 핵폐기 초기 이행조치의 대가로서 서면화된 체제안정보장과 종전협정 서명, 경제지원 등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선 금융제재 해제입장을 고집해 회담이 결렬됐다고 북한을 비난했다. 자신들은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 즉 BDA 금융제재는 불법자금 세탁 혐의에 따른 적법한 조치이므로 북핵 관련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기만적이다. 북한의 6자회담 이탈을 초래한 금융제재가 북핵문제와 무관하다는 억지주장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금융제제와 같이 북한 측으로서는 체제위협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조치들을 중단하지 않은 채, 핵폐기에 대한 상응조치 목록에 이것저것을 추가해보아야 불신만 늘어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북적대정책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도 9. 19공동성명의 원칙인 ‘행동 대 행동’에 따라 미국과의 신뢰를 쌓아나가 종국에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에 조력해야 할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6자회담이 다시 재개될 전망이다. 이번 회담재개의 물꼬를 튼 것은 베를린에서의 북미 6자회담 수석대표들 간의 양자회동이었다. 베를린 회동 이후 미국이 기존의 다자형식 대화틀을 고집하지 않고 북한과 독자적인 협상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베를린 회동은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질적 진전이 북미 양자 간의 대화에 달려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