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2006년도의 10대 뉴스를 뽑으며 한미 FTA 민중궐기와 사상최대의 무기한 총파업을 운운하며 성과적(?)으로 1년을 평가했다. 그러나 2006년은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직가입을 빼고는 별스레 기뻐할 일이 없었던 한해였다. 오히려 포항에서 태풍이 몰아치던 날 하중근 열사가 돌아가시고, 비통한 마음을 지금도 지울 수 없는 것이 더 솔직한 한해 마무리가 될 것이다.
뿌리가 깊은 노사협조주의(사회적 교섭)
10대 뉴스중에 산별노조시대 활짝이라는 구절이 있다. 산별노조시대는 화들짝 찾아왔지만 그리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총은 1995년 출범과 함께 세가지 목표를 천명했다. 정치세력화, 산별노조건설, 사회대개혁 이중 산별노조건설은 가장 난망한 문제였다. 이것이 가장 난망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산별교섭을 이루는 일이 녹녹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01년도에 출범한 금속노조는 조직형태를 단일산별로 바꾸어 내고, 산별교섭을 요구로 파업을 끌어냄으로써 최초의 단일교섭을 끌어내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보건의료노조도 조직변경과 함께 통일교섭을 끌어내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그 이후 산별교섭을 끌어낼 동력은 찾아지지 않았고, 최근에 들어서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이 통과될 거라는 예상속에서 허겁지겁 조직형태를 단일산별로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산별노조를 향한 문이 활짝 열렸는지는 몰라도 그 문이 제 출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산별교섭을 이루어내는 방법은 이제 한가지다. 산별교섭을 요구로 내걸고 파업투쟁을 전개해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는 것이다. 스웨덴의 LO는 양차 대전을 전후해 자본가들이 LO가입 사업장에 대한 집단해고를 하면서 저항했음에도 이를 관철시켰다. 노사협조주의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국가가 주도해서 자본가들을 교통정리해주고, 산별교섭을 법제화하는 일은 안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의 상식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민주노총을 정치적 파산상태로 만든 노사정대표자회의의 씨앗이 되었던 산별교섭 법제화의 주관적 희망이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 게다.
앞서 밝힌 대로 산별노조건설의 고민은 산별교섭의 실현으로 구체화된다. 나름대로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단병호 집행부때이다. 당시 지도부는 산별교섭 법제화에 목표를 걸고 상층교섭을 시도해 보았지만 실제 성과도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자본가들이나 정권은 이에 대해 별 관심도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움직임이었지만 그 움직임이 노동운동에 있어서 상당히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된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기반으로 교섭력의 기반을 현장투쟁력에 두었던 지금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의 전통과 다르게 상층 ‘교섭력’에 힘을 싣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직까지 민주노동당의 의원단이 교섭단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민주노동당이 교섭단체를 만들 정도의 의원수를 갖게 되고, 정치적 위신을 갖춘다면 상층 교섭력에서 비교할 수 없는 힘이 가세되는 것이고 상층교섭을 통한 난제해결이라는 공식이 일정하게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산별교섭을 강제하는 산별건설이 난망한 상태에서 집단교섭의 형태로 정권과의 노사정교섭이 부각되게 되었다. 노사정교섭의 틀에서 다른 것도 있었지만 산별교섭의 법제화등의 성과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는 끼여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산별교섭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정치적 의제를 노사정 틀안에서 제기할 수 있고, 쟁점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중투쟁을 끌어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추구했던 세력에 대한 지나친 미화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좋게 보아도 현장투쟁에 대한 피로도가 쌓인 단위노조 대표자들의 희망, 즉 “교섭을 통해 성과 좀 보여달라”는 희망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포섭되고, 소위 민주화세력으로 미분화되어 있던 시절의 인맥과 동질감으로 얽혀있는 개량주의적 상층의 작태였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든 저든 간에 이를 현장투쟁동력이 없다고 노사정위원회 참여에 슬며시 동의해 준 전투적 조합주의자들에게 반성 있을진저!
닳고 닳은 노조관료가 단호한 자본가에게 상대가 안된다는 걸 보여준 2006년
98년이후 비정규직 노동운동이 등장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은 허둥대었다. 비정규직 운동이 성장하는 시기에 민주노총은 자기 관리체계안에 이 운동을 넣어두는 데 급급했고, 비정규직 운동이 보여주는 역동성을 받아 안으려는 방안을 찾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비정규직 노조는 하나둘씩 결성되었고,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과 치열성을 계승하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 되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법안 문제가 노동운동의 중심적 의제가 되자,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가까운 이웃이상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민주노총은 자기역할에 대해 혼란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비정규직확대법안이 등장한 사건은 비정규직 의제와 관련해서 비정규직 노동조합활동이외에 이러타한 활동이 없었던 노동계의 패배를 법제화하자는 자본가들의 발칙함이 발동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타협도 그 결과는 무참한 결과를 낳기 마련이었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타협을 통해 무엇인가를 건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패배의 절망감을 공유하는 것이 더 필요했다. 절망감속에 투쟁을 결의해야 할 순간에 잔머리를 쓰다가 우리는 당했다. 비정규직 법안 수정안이 그 중에 하나였고, 여당측에 파견법 재개정의 가능성을 갖고 저울질을 하려는 시도가 그중 하나였다.
노사관계 로드맵은 통과되는 와중에 보여준 민주노총 상층과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보여준 모습은 비정규직 개악안에서 보여준 노동운동의 퇴보를 비참한 수준으로 끌어 내렸다. 복수노조문제와 전임자 임금문제를 선택사양으로 만든 것에서 우리의 실패는 예고되었고, 막판에 특수공익사업장을 최대 쟁점으로 만든 것으로 비겁함은 겨울하늘에 닿았다.
실험이었다면 사고의 부족이고, 경험이면 우리가 너무 비참해 지는 최근 1, 2년간의 민주노총의 갈지자 횡보는 민주노총이 시대가 요구하는 발전에, 정세가 요구하는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름의 정세적 감각으로 나온 “세상을 바꾸는 투쟁”도 제 3자에게는 유순한 개혁요구처럼 여겨져 버렸다. 사실 이땅에서는 일자리 창출을 말하면 고용없는 투자가 들먹여지고, 공공일자리 창출을 말하면 각 공공기관마다 경영평가를 받는 사실, 공무원들도 총액임금제를 도입하고 있는 사실이 무화과 먹이듯 튀어나온다. 이런 조건에서 (자본주의)세상을 바꾸면 얼마나 바꾼다고 “바꾸자”고 악을 써야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발전하는 2007년을 고대하며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강줄기에 떠 있는 나룻배 같은 존재다. 조합운동은 좋던 싫던 그 흐름에 결정적으로 방향이 결정된다. 그것이 노동조합의 한계이고 숙명이다. 자본주의 강줄기가 타협의 흐름으로 갈 때,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통한 성과를 축적할 수 있다. 87년이후 90년대 초까지 그러한 양상은 지속되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IMF이후의 남한 자본주의 강줄기는 배제와 억압이라는 흐름으로 변했다. 아무리 노사화합의 수식으로 위정자들이 사탕발림을 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다. 노동조합운동은 이에 역행하려고 기를 써야지 제자리라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쟁의 고삐를 슬며시 놓는 순간 순식간에 양보교섭에 몰리고, 무력화에 빠지게 된다. 이를 전복시키려는 태도야 말로 혁명적 노동운동, 사회주의 노동운동인 것이다. 전투성의 고삐를 놓치지 않는 것, 즉 현장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제자리 지키기 운동이다. 자본주의 모순을 폭로하고, 자본주의를 깨부수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 해결을 위한 운동이고, 앞으로 전진하기위한 운동인 것이다.
민주노총 운동이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상근 간부 몇몇의 대오각성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투쟁동력을 유지시키고, 조합원 대중의 정치의식을 높이기 위한 목적의식적 활동에 복무하는 현장 사회주의 노동자 조직만이 그러한 일을 위한 기본동력이자 주체인 것이다.
민주노총은 역동적이고 야심만만한 현장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에게 활동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활동가들로 하여금 현장에서 조합원에게 직접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호소할 기회를 가질 직선제를 확대하는 것이고, 재미없는 각본으로 짜인 허가된 집회가 아니라 전경을 몰아내고 자유토론으로 시끌벅적한 가두 투쟁을 기획하는 것이다. 싸울 거리가 없어서 싸우지 못하지 않는 한 조합원대중을 요동치는 정치토론과 피와 살이 튀는 가두투쟁으로 안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협조주의에 안녕을 고하는 2007년, 새롭게 부상하는 혁명적 노동운동,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원년이 될 2007년을 만들자는 각오를 다지며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들에게 새롭지 않지만 언제나 설레는 인사를 보낸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