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로 권영길 후보가 선출되었다. 경선에 나선 세 후보 중 당의 우경화에 가장 앞장서나가던 권영길후보가 당선됨으로써 가뜩이나 문제 많던 민주노동당의 대선투쟁은 더욱더 표류할 위험성이 높아졌다. 이미 많은 비판이 있었듯이, 경선과정에서 권영길후보가 주장한 ‘진보적 성장론’과 ‘사회복지국가 통일론’은 ‘진보정당의 정체성’조차 훼손하는 것으로서 엄격히 말해 진보정당의 후보가 아니라 급진적인 자유주의정당의 후보가 내걸기에 적합한 주장이다. 진보정당 내에서 이러한 내용이 버젓이 주장되고, 이런 주장을 내건 후보가, 지지이유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자주파의 지지로 후보로 선출된 것은, 얼마나 민주노동당의 우경화가 ‘진보정당의 정체성’마저 위태롭게 할 정도로 심각하게 진행되었는가를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그만큼 민주노동당의 우경화는 이미 깊숙이 진행된 상태이다. 경선과정에서 심상정 후보가 진보적 성장론을 일부 비판했지만, 이것이 치열한 쟁점이 되지 않은 것은 당의 우경화가 일상화되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른바 ‘자주파’, ‘좌파’를 불문하고 박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극단적으로 우경화한 권영길후보뿐만 아니라, 그 주장에 이렇다 할 특징이 전혀없는 노회찬 후보, 그리고 상대적으로 ‘좌파성향’을 갖는 것으로 인식된 심상정후보조차도 우경화경향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세 후보의 정책공약 중 가장 좌쪽에 있는 것으로 분류되는 것이 택지국유화일 정도로, 세 후보 공히 자본주의의 모순악화에 대응할 급진적 노동자정치의 내용으로 제출한 것이 거의 없다(당연히 강조했어야 할 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조차 누락되었다!).
필자가 글의 제목에서 후보로 선출된 권영길후보만을 지칭하는 후보라는 단수가 아니라 ‘후보들’이라는 복수를 쓴 것은 필자가 비판하는 것이 권영길후보뿐만 아니라 당경선에 나선 심상정, 노회찬 후보 모두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낙선한 심상정, 노회찬 후보 역시 대선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도 이들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1.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투쟁의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후보들은 삶의 파탄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이 2007년 대선투쟁에서 핵심이라고 동일하게 말하고 있다. 이 말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말은 모든 계급과 그 정치세력들이 동의할 정도로 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이미 3년 전부터 이점을 잘 알고 민생파탄을 공격하고 이를 야기한 노무현을 집중공격하면서 자신들이 대안세력임을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그리고 성과도 내서 현재 대중들의 ‘묻지마 지지’를 끌어낸 상태이다. 그래서 민생정당이 되겠다는 후보들의 다짐은 극히 상식적인 주장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후보들이 강조하는 비정규직문제나 양극화문제 역시 이미 누구나 그 심각성을 지적하는 문제이다. 아마 이 문제를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세력이, 바로 이 문제를 야기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일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정책책임자였던 이정우가 물러나기 전에 얼마나 자주, 그리로 반복하여 양극화문제를 언급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난 몇 년간 신문기사를 검색해보기만 하면 된다.
대선투쟁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핵심은 민생파탄,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라는 현상을 거론하며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추상적으로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폭로하고 제시, 투쟁하는 것이다. 즉, 이들 문제의 원인이 이윤창출과 자본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자본주의체제에 있음을 폭로하고(폭로거리는 생생한 삶의 현실에서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그 대안은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 자본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우선하는 체제,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사회주의로 향하는 과도적 조치를 내걸고 투쟁하는 것이다.(당연하게도 필자가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체제는 구소련과 북한 등 실패한 ‘현실사회주의’가 아니라 실패의 교훈을 반영한 민주적 사회주의체제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열린우리당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대안세력으로 비합리적으로 기대하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민생을 더욱더 극단적으로 악화시킬 세력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후보들이 이 문제의 원인을 체제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에둘러서 말하고, 마치 자본주의체제의 극복없이도 이들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을 대중들에게 유포한다면, 현재처럼 모순이 격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들 역시 기존질서의 사실상의 옹호자로 역할할 뿐이다.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공격하지 않고 자본주의체제의 극단적인 문제점만을 비판하는 것은 실제로 나쁜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좋은 자본주의를 선동하는 것으로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다.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은 이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민주노동당을 위시로 한 진보세력이 무기력과 침체에 빠지게 된 근본적인 정치적 오류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조차 극히 희박하다.
기이한 것은 대선후보경선 국면에서 자본주의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 제시에 대한 후보들의 ‘수사학적’ 언급조차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삶의 아우성이 들끓고 있는 2007년 한국사회에서 후보들의 입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용어조차 거의 듣기 어려웠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투쟁하고 있는 한국 밖의 좌파들이 이 사실을 접하면 이 ‘기이한 한국좌파의 행태’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역사적 경험에 의하면 개량주의자들조차 사회의 모순이 격화되면 ‘혁명적 언사’를 자신의 개량주의적 행동을 위장하기 위해 남발하곤 했다. 현재 한국의 진보정당에서는 이런 일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민주노동당이 체제에 포섭되고 길들어져있는지를, 얼마나 무기력증과 소심증에 빠져있는지를 나타내는 병적인 현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국현의 등장은 민주노동당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확연히 구분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노출시키고 있다. 문국현이 앞으로 자유주의 정치세력 내에서 얼마나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게 될지는 회의적이지만, 그의 등장은 몇가지 점에서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기존 정치세력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내고 있다.
그는 모든 자본가 정치세력들이 신자유주의를 무조건적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지양을 주장하고 있다. 자본가들 사이에서 정리해고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한국사회에서 그는 자신이 해고없이 IMF사태를 넘겼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이것이 한나라당과 자유주의정치건달 모임인 통합민주신당과 비교하여 그를 ‘참신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일색의 자본가 정치세력 내에서 그는 이점만으로도 매우 독특하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주장으로 신자유주의 반대가 곧바로 진보가 아니라는 명백한 진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지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지만 전후 30년간 시대를 풍미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배격한 케인즈주의였고(닉슨조차 케인즈주의자로 차처했다!), 때문에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는 그 자체로서 진보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충분히 자본주의적 틀내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문국현은 이를 현실로서 입증해주고 있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의 구호 속에서 자본과 자본주의 반대를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진보세력연하는 것은 기만이며, 문국현은 이들 사이비 진보세력과 자신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폭로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문국현은 체제에 포섭되고 길들여진 이른바 진보세력이 얼마나 자신이 있어야 할 정치적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자유주의좌파 수준의 위치에서 헤매고 있는지를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2. 자신의 실패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후보들과 민주노동당
낙후된 위치에 서서 자본주의 반대를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는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의 대선투쟁을 보면, 얼마나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문제점과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난 실패에서 아무런 교훈도 끌어내지 못하는 조직으로, 즉 ‘발전가능성이 희박한’ 둔감한 조직으로 되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2005년 울산북구 재선거에서의 민주노동당 패배는 비정규직 투쟁에서 보여준 민주노동당의 불철저한 태도가 그 1차 이유이다. 현대자동차에서의 불법파견 관련 투쟁은 당이 총력을 다해 지원연대했어야 할 투쟁이다. 만약 당시 민주노동당이 불파판정이라는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적극 대처하여 불파투쟁에 전력하였다면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매우 유리한 진지를 확보하고, 당은 노동자계급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에 정규직 노조가 극히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이로 인해 비정규직노조와 정규직노조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자 민주노총집행부와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내 최대규모의 실세노조인 현대차정규직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비정규직노조의 투쟁과 거리를 두었다. 그 결과 당연히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역시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불신을 샀으며(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우리가’ 아니었다), 그것이 울산북구 재선거 선거결과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선거패배 이후 최고위원회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당은 그후 아무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기 최고위원회에서도 이전의 정치기조가 그대로 반복되었고,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울산북구, 동구 구청장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전국적으로도 패배했다. 2006년 선거패배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구별되는 뚜렷한 독자적인 노동자정치를 실천하지 못해,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별 차이 없는 무능한 세력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어 민생파탄을 초래한 열린우리당과 함께 동반몰락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동당’다운 뚜렷한 독자적인 급진적 노동자정치를 실천하지 못해 열린우리당과 동류의 한묶음의 세력으로, 열린우리당과 내용적으로는 같으나 이중에서 보다 과격한 세력으로밖에 대중들에게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패배로부터의 교훈을 민주노동당은 이후의 당활동과 2007년 대선투쟁에 반영해 왔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2006년 민주노동당은 확고하고 진정성있는 태도로 비정규직법 개악저지투쟁을 전개하지 않았으며 악법통과에 대한 아무런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노사관계로드맵 문제에서는 갈팡질팡하다 급기야는 악법통과에 협력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노무현정권에 대해서는 노동악법통과와 한미FTA체결 등 많은 결정적인 투쟁계기가 있었음에도 분명한 정치적 반대전선을 형성하고 투쟁하지 않았다. 대선투쟁에서는 자유주의세력까지도 포괄하는 ‘진보대연합론’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논란이 되어왔으며, 당정치활동은 급진적 노동자정치의 강화방향이 아니라 중간층 획득을 중심으로 한 우경화방향으로 향했다. 후보들의 정치기조 역시 몰락한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상실한 공간을 대신 차지해보려는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교체론의 연장선 위에 서있다.
과장없이 말해 민주노동당은 전혀 자신의 실패에서 교훈을 도출하고 이를 실천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2005년 울산북구 선거결과가 경고를 보냈지만 아무런 자기변화 없이 2006년 지자체선거에 임했던 것과 똑같이, 민주노동당은 2006년 지자체선거 패배 이후에도 아무런 자기변화를 실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2007년 대선에서 무언가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막연히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이 2006년 지자체선거와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게으른 자가 나무아래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기변화없이 당에게 돌아올 것은 정체와 침체뿐이다.
3.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은 한사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회피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악화되고 이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초래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당이 우경화되는 현상을 보면,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이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너무 심한 비판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그렇다.
얼마 전에 후보들이 얼마나 반자본주의적인 투쟁기조에 서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선거게시판을 꼼꼼히 살펴보고 자본주의라는 단어로 검색해 본적이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네 개밖에 검색글이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 공격을 후보들이 의도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선기간 내내 필자는 후보들 중 누구하나 나서서 유세와 토론에서 자본과 인간을 대립시켜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는 자본에 예리한 공격을 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을 파괴하는 자본과 자본주의에 맞서 인간다운 삶을 투쟁으로 확보하자는 주장만큼 현재 노동자, 민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주장이 있을까? 투쟁현장과 집회에 가면, 절박한 현실에 몰린 노동자들이 몸벽보와 구호로 거의 통일되어 있다시피 ‘...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고 절규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 후보들에게서는 이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이는 후보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열망과 정서와 크게 괴리되어 있다는 것,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와는 달리 전혀 절박한 위치에 서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중들의 절박한 요구를 보다 분명하고 의식적인 정치적 요구로 압축하여 표현하고 투쟁을 선도하는 것이 노동자정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이다. 대중들의 절박한 요구와 외침은 후보들을 통해 정치적으로 보다 분명한 요구로 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누락되고 축소된다. 투쟁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자본가들이 용인하는 수준으로 완화하고 관리하고 있는 것이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이 실제로 하고 있는 역할이다. 후보들과 민주노동당은 투쟁의 역동성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관료주의적으로 통제하며 투쟁을 박제화하고 있다.
권영길후보는 진보적 성장론으로 이미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에 투항했으며, 자신이 민주노동당의 과격한 이미지를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 후보가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할 정도로 전도된 의식을 노출시켰다. 언제 민주노동당이 과격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어서 ‘과격한 이미지’를 완화할 필요까지 생겼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너무나 자본과 타협하는 온건한 체제내적 정치를 해온 것이(2005년 비정규직법 수정안 소동, 2006년 이미 배신한 한국노총과 협의하여 비정규직법 개정안 단일안을 마련하려 한 것, 2007년 비정규직 투쟁주체들이 악법철폐투쟁을 하고 있는데 투쟁수위를 시행령저지투쟁으로 축소, 왜곡한 것 등) 문제가 아닌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후보에게는 자본주의 공격이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할 여지조차 없다. 권영길후보에게는 급진적 노동자정치는 고민거리가 아니며 민주노동당이 ‘과격한 이미지’를 탈각하고 자본에 거부감을 주지 않는, 중간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합리적인 국민정당화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당면과제인 것이다.
노회찬후보는 이번 경선에서 유일하게 급진적인 공약으로 인정되는 심상정후보의 택지국유화를 비판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가 이유로 든 것은 택지국유화가 오히려 특권층의 이해를 더욱더 옹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 문제에 올바로 접근하려 했다면 이런 뒷다리잡는 식의 비판을 할 것이 아니라, 심상정후보보다 더욱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심상정후보와 경쟁했어야 했다.
심상정후보는 경제문제의 중요성을 감수성있게 인식한 유일한 민주노동당 후보이다. 세 후보 중 현실문제에 대해 가장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한 흔적을 보인 후보이다. 그런데 이점은 특별히 심상정후보가 칭찬받아야 할 점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두 후보가 그렇게 하지 못할 정도로 극히 게으르고 둔감하여 감수성조차 결여되었다고 비판받아야 할 점이다. 이런 심상정후보도 주장하는 정치적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역시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심상정후보의 세박자경제론의 정책골격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공격하는 사회주의 지향의 과도적 내용이 아니라, 케인즈주의적 내용들의 짜깁기 수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한미FTA반대의 기본논리구조도 한미FTA를 통해 자본이 노리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공세 강화에 비판의 초점이 맞추어져있지 않고, 다른 두 후보와 똑같이 국익론적 구조를 갖고 있다.
4.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근본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이다.
민주노동당이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 나간다면 그 스스로의 모순으로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 등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자본주의의 모순격화라는 시대흐름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이미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 역시 시대흐름에 적응하지 못하여 정체와 위기상태에 빠져있다.
이미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을 왔다갔다하며, 진보적 대통령후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경화한 권영길후보가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가 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더욱더 증폭될 것이다.
이번 대선투쟁공간에서 노동자정치, 사회주의정치 실천을 강화하려던 사회주의자들의 시도는 후보로 내세우려던 이갑용이 권력에 의해 배제되고, 이를 민주노동당 내 관료개량주의세력이 묵인방치함으로써 실패했다(이중의 배제). 그런데 이 실패는 사회주의자들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고 대선투쟁기조의 급진화를 이루어내지 못하여 민주노동당의 우경화가 더욱더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와 민주노동당 전반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고, 계급투쟁을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자본가들의 구미에 맞게 완화, 관리하는 역할을 해가고 있다. 반기업정당 이미지를 벗겠다는 권영길후보의 대변인 박용진의 17일 발언은 우발적인 말실수가 아니다. 만약 민주노동당의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분리되어 정치적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현 시기 사회주의자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최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선투쟁이 급진적인 노동자정치를 실천하도록 당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다(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 채택, 진보적성장론 폐기 등). 다른 하나는 계급투쟁을 선도적으로 실천할 진정한 노동자정당,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자기변화를 거부하고 더 이상 노동자정치 실천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없게 될 정도로 퇴보할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낡은 구틀을 깨고 새로운 노동자정치조직,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을 벌여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의 계급투쟁은 창당시의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기본방향을 이탈하여 국민정당화하는 민주노동당에게 무조건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맡겨야 할 만큼 한가롭지 않다. 철저히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자본가들과 노동운동 내 그 대리인인 기회주의세력과 투쟁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