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8호/쟁점] 분화의 시대에 총단결의 기구, 공장위원회를 건설하자

비정규직 노동운동 정규직 노동운동의 어색한 공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요구가 있다. 몇년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분쇄투쟁에서 보여준 정규직 집행부의 파렴치한 행각이 노동운동에 충격을 준 뒤, 그리고 소위 계급적 좌파진영이라고 자처하는 세력조차 자기정화능력이 없음이 증명되면서 그런 소망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구호가 높아지는 반면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정규직노조가 평조합원 수준에서 보수화되는 경향, 즉 방어 투쟁(고용안정, 단협사수)에 허덕이며 타인을 돌볼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은 비정규직-정규직 연대 구호가 구체적인 실천으로 발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매번 투쟁주체는 비정규직 노동자인데, 정규직 전국센터가 대정부교섭권, 단체교섭권, 넉넉한 조합비 등 공식적인 힘을 여전히 유지하는 불균형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어디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건지가 불투명해졌다. 말하자면 이게 분업인지, 후원자관계인지 둘의 관계는 여전히 모호하다.
최근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할 수 있는 투쟁임에도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 투쟁이 현대자동차 불파투쟁이다. 현대자동차에서 불법파견문제는 노동부의 잇따른 불법파견판정으로 자본으로서는 도덕적, 법률적 명분을 완전히 잃은 사안이었다. 때문에 현장에서 자본의 악랄한 착취에 투쟁하고자 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열려 있는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집행부와 비정규직 노조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현장활동가들의 대대적 참여가 봉쇄되었다. 이것은 수십년 계속된 기업별노조의 낙후성이 노동운동의 보편성을 갉아먹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자본들 사이에서 원하청관계는 상전과 종같은 관계다. 이런 위계질서를 정규직 노조가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비정규직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과 지도의식을 가졌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후진성에 영합한 소위 현장조직들과 그들과 결합한 정치조직들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안기호동지를 비롯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지도부들이 정규직 노동조합활동가들보다 더 높은 운동성을 가지고 있었던 현실이 소위 현장파 정치조직들이 원하청 질서를 노조운동 차원에서 답습하려고 했던 작태를 폭로하게 했다. 하청노동자운동의 경우, 운동성이 높은 활동가들이 현장에 목적의식적으로 취업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모두의 운동성을 고양시키면서 단결력을 강화할 방안에 대한 고민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에 엄연히 차별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자본이 만들어낸 차별이고,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사심없는 연대와 단결이 요구된다. 기업별노조의 깊은 영향으로, 그리고 아직도 어정쩡한 산별노조의 상태때문에 노조운동차원에서 이러한 연대와 단결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보편적인 형태의 노동자 조직이면서 정치의식의 성장과 운동성의 성장을 보장하는 새로운 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이 틀은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전투성과 활기, 그리고 정규직 활동가들의 고양된 운동성을 결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남한 노동운동 역사상 87년 때 잠깐 등장했던 쟁대위, 비대위, 즉 파업위원회다. 파업위원회는 무력화된 어용노조를 대치하거나, 혹은 무노조 상태의 현장을 단결시키는 유력한 수단이었다. 거기에는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이고 구별이 없었고, 직종이고 뭐고 간에 차별이 없었다. 말 그대로 계급조직이었고, 총회라는 직접민주주의에 의해 지도부의 교체가 언제든 가능했던 유연성을 갖춘 조직이었다. 이러한 파업위원회가 나름대로 역사적으로 공식화된 용어가 공장위원회다(사무직의 경우, 직장위원회).
공장위원회는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자를 조직하는 보편적인 수단으로서 역할을 못하거나 그럴 여유가 없을 때, 역사적으로 등장했다. 러시아에서 소비에트의 등장과 함께 혁명공간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공장위원회가 등장했고, 레닌은 볼세비키가 주도권을 갖고 있던 이 공장위원회를 주목했다. 당시 공장위원회는 현장노동자의 직접적 요구를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소비에트보다 항상 정치적으로 앞서 있었다.
한편 공장위원회는 러시아나 뒤이은 독일의 경험에서 파업투쟁을 위한 기관이었다. 공장위원회는 곧이어 산업별, 업종별, 지역별로 결합하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정치기관으로 발전했다. 또한 노동조합 세력이 마비되거나 미비할 때 노동조합 전국센터의 역할을 대신해왔다.
남한에서도 만약 전국적인 파업투쟁의 물결을 올라온다면 현재와 같은 낮은 노동조합 조직율을 돌파하는 수단으로 공장위원회가 주목을 받을 것이다.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존의 노조 질서를 존중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7년에 복수노조가 허용되었다면 공장위원회는 복수노조를 관리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의 의도에 저항해 공장전체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의 기관으로 나섰을 것이다.
지금 그런 고양의 시기도, 복수노조의 시기가 아님에도 공장위원회는 건설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노조운동의 후진성이 산별노조 건설의 시대라는 지금도 극복이 요원할 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조합주의, 경험주의를 극복하기에 기업별노조 의식이 뿌리 깊고, 노조운동의 정파질서도 집행부 장악 외에 딱히 정치적 실천이 없는 가운데 정치의식의 퇴보를 촉진시킬 뿐이다. 내 식구 감싸기가 일반화되고 있는 현 정파질서에서 도덕성의 고양도 운동성의 고양도 기대난망이다.
또한 기존의 정규직 노동조합이 전 공장의 대표성을 획득하는데 난망하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즉 정규직노동조합이 25%에 지나지 않는 대우자동차 군산공장에서 어떻게 정규직 노조가 현장대표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장대표성을 갖는 대중조직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한다. 현장 대표성을 갖춘 조직이 나서는 것, 즉 현장대중의 투쟁기관이 나서지 않으면 현재의 침체와 후퇴를 극복할 수가 없다.
또한 현재 투쟁하고 있는 대우자동차에서 보이듯 노동운동의 보편성을 유지하려는 정규직 활동가들과 이제 노동운동에 발을 디딘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 대중간의 결합이 시도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이를 단순히 사안별 연대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활력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장위원회 건설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현장대중조직으로서 공장위원회

공장위원회는 비정규직, 정규직를 불문하고 참여하는 부서별 모임에서 공장위원을 선출하고공장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공장위원회가 기존의 현장조직과 다른 점은 선진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대중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중조직은 성장하는 대중조직이다. 처음에 공장위원회는 공장전체의 고작 10%를 대표하는 대표만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부서를 제외하고는 아예 공장위원을 뽑지 못하는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뽑힌 공장위원은 정규직,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그 부서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공장위원회가 자신의 활동을 통해, 그리고 투쟁의 조직화를 통해 차츰 공장전체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공장위원회가 어색하면 한 때 많이 등장했던 소위원이나 현장위원을 연상하면 된다. 그때와 다른 점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참여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하나 다른 점은 공장위원회는 년간 1회 이상 총회를 소집하고, 비상시 총회를 언제든 소집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편 공장위원회는 지역별, 산업별, 나아가 전국단위 회의체를 구성할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5%를 대표하는 공장위원회 전국대표자회의로 시작할 수 있지만, 뒤이어 정세의 발전에 따라 수십%를 대표하는 회의체로 발전할 수 있다.

과도강령의 대중적 실천단위 공장위원회

혁명적 시기에 건설되지 못하는 공장위원회는 대중의 의식을 직접 반영만 한다면 운동적으로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낮은 의식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단위가 되어야 한다.
공장위원회는 당면한 대중의 요구,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와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은 물론, 의료, 교육, 주택, 노후(연금) 등의 생활개선의 요구, 나아가 이들 분야에서 공적소유를 높이려는 요구, 은행과 기간산업의 사회화 등 과도강령을 목표로 요구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러한 높은 요구수준을 바탕으로 노동자정당들에 대한 입장과 정치노선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 혹은 지지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공장위원회는 복수의 노동자 정당이 존재할 경우 현장대중의 정치적 분화를 촉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문제에 있어서 공장대중의 단결을 유지하는 기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하반기에는 공장위원회 건설을 일정으로 올리자

이미 공장평의회를 주장하는 활동가들도 있었고, 제3노총 논의도 있어왔다. 모두가 현재의 노동운동의 답보를 극복하고 새로운 질을 갖는 운동의 활성화에 목말라 나온 의견들이다. 이제 그런 동지들에게 공장위원회를 제안한다. 공장위원회에 많은 동지들의 상상력과 추진력을 보여줄 것을 호소한다. 현장대중의 요구와 노동계급의 역사적 소임을 만족시켜줄 새로운 대중운동의 출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하반기 공장위원회 건설 일정을 현실화하기 위한 활발한 토론과 소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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