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8호/민주노동당(2)] 남북정상선언, 무조건적 환영?

- 노무현 김정일의 2중대를 자처하고 나선 민주노동당 -

지난 10월 4일 남북 정상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하 선언)’을 합의했다. 선언은 상호 체제 불간섭을 기초로 한 법률적-제도적 정비, 군사적 긴장 완화, 경제협력 발전 방안 등을 주요 골자로 하여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다소 구체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번 선언을 통해 노무현 정권의 지지도가 탄핵 후 최고수준으로 급등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변화된 남북 관계에 대한 민중들의 기대감이 큰 것이 사실이며, 일부 운동 진영도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당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미 보수 일간지 뉴욕타임스도 4일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낮은 기대치를 상회했다며 경제와 안보 분야의 협력을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대해 한나라당 및 보수 언론이 ‘비정상적 퍼주기’ 혹은 ‘안보 위협’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회주의 정치세력으로서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애초에 남북정상회담은 미제국주의의 간섭 아래 그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된 상태로 진행되었다. 가령, 핵문제 및 동북아 평화와 같은 의제는 결국 미국의 정치적 의지와 6자회담의 틀에 의해 규정되는 문제로, 남한 정부의 독자적 역량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남한 정부가 상대적으로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고, 또한 실질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아무래도 경제협력 및 대북 지원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실정 속에서 남북 정상은 각자의 정략적 이해를 따라 이번 선언을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개혁세력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대별되는 정치적 성과를 실질적으로 얻고자 했고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다. 한편 김정일 정권의 경우 누적된 경제난에 따른 지원의 실질적 필요성에 더해, 남한에 반북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협력적 남북관계를 차기 정권에도 일정부분 강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번 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소기의 성과들을 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들이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개혁 분파의 구상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주를 포함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경제특구건설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정권의 경제협력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명확하게 남한의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확장을 통한 장기적인 흡수 통일의 시나리오인 동시에 남한 경제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북한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의도에 불과하다. 사실 이들이 의도한대로 북한 경제의 대외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재 북한의 계획경제는 거의 마비된 상태로 공장가동률이 약 20-30%에 불과하며, 남북 경제협력이 북한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어서고 있다. 즉, 북한은 체제 내외의 압박 속에서 불가피한 개방을 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결국 남한 자본주의의 하청기지화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언에 대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가 곧바로 지지 성명을 발표한 것은 몹시 우려스러운 일이다. 운동 진영의 이번 선언에 대한 무조건적 환영은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의지가 부족함을 드러내줄 뿐이다. 이는 개성공단에 대한 섣부른 긍정이 노동 3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북한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탄압을 묵인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50여 년간 한반도 분단체제가 남북 지배세력의 착취 도구로 사용되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통일 정세가 남북지배세력에 의해 장악당하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경협은 민족자본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독점자본의 야욕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5단체를 포함한 재계 인사들이 이번 선언을 일제히 환영하면서 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한 것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북한정권이 아무리 개혁, 개방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 저항한다 하더라도, 이미 북한의 지배세력인 북한관료집단의 이해는 관료지배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시장의 도입으로 귀결되고 있다. 북한의 개방도 남한의 신자유주의도 남북 노동자 계급에게는 잔인한 노동조건과 삶의 파탄만을 안겨줄 재앙일 뿐이다. 통일이라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오직 자본주의가 지양된 새로운 사회상에 근거한 통일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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