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29호] 비정규직투쟁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며

민주노동당이 18대 총선에서 비정규직노동자에게 비례대표 2번을 주기로 결정했다. 11월 초 권영길후보의 제안이 최고위를 거쳐 17일 중앙위에서 전격 가결된 것이다. 감히 비정규직 할당 자체를 반대할 수가 없을 테니 만장일치로 통과된 게 이상할 건 없다. 다만 이런 안건이 보름여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된다는 게 황당할 뿐이다. 그 동안 당이 비정규직 문제에 취했던 포지션과도 잘 맞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진정성이 없는 위선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비정규직 할당을 통해서라도 비정규직 문제에 당이 보다 올바른 태도를 갖추기를 바라는 맘으로 통과시킨 중앙위원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할당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반응이 반전되고 지지율이 상승하리라고 보는 건 너무 어리석은 것이다. 우선 대선을 앞두고 급작스런 이런 결정이 그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특히 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선심성 제스처로 인식될 소지가 크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힘겹게 투쟁해온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반가워할 것 같지도 않다. 비정규직 동지들이 초기 당에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간 굵직한 몇몇 투쟁 과정에서 큰 실망과 좌절을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벌인 현자비정규직노조의 투쟁은 역사에 획을 그을 중대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투쟁에 적대적인 모습까지 보이며 찬물을 끼얹는 정규직노조의 태도로 싸움은 곤경에 빠졌고, 민주노총과 당은 남한 최대 실세노조인 이들 눈치보기에 급급해 사태를 방치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집중연대집회에 깃발도 안 가져가는 치졸함을 보였다. 결국 싸움은 패배했다. 이것으로 자동차 4사에 공히 걸린 불법파견 문제는 노동부 판정까지 얻은 유리한 상황에도 다시는 해보기 힘든 싸움이 되어버렸다. 이런 후 치러진 울산북구 재선거는 말 그대로 참패였다. 투쟁하는 비정규직이 등을 돌린 탓이 컸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맹위를 떨치는 비정규직법이 개악되기까지 대응도 되짚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원내 활동에 매몰돼 싸움을 그르쳤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이미 협상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에서 권리보장입법의 취지를 살려보려 협상에 집착한 일, 정부 법안에 대해 사유제한이니 하며 위험스런 수정안까지 내며 투쟁에 혼선을 초래한 일들이 그렇다. 협상에 골몰하며 노동자들에게 기대심리를 심어주며 법 개악 저지 전선 구축에 실패한 것이다. 뒤늦게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법안통과를 막겠다는 의원들의 행동은 일관성이 없었고 노동자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 숱한 혼란 속에서 저항도 제대로 조직 못하고 통과된 악법이 지금 노동자들의 목을 죄여오고 있는 것이다. 한편 로드맵을 국회 환노위에서 기만적으로 ‘합의’해준 사건은 잘못된 당운동의 단면을 보여주었고, 그 시간 국회 바깥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 ‘강행처리’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피터지는 혈전을 벌여야 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민주노동당이 저지른 과실이다.

최근 당 안팎을 들썩이게 했던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는 어용과의 투쟁으로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을 부정하는 배신행위에 해당된다. 한국노총이 자본과 결탁, 도모한 악법으로 고통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공식사과는 그 자체로 죄악이다. 이것은 악법 도입을 합의해준 한국노총에게 당 지도부가 함부로 면죄부를 주는 동시에, 악법에 저항하는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요구를 부정한 것이다.

이렇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심각한 오류를 남겼다. 문제는 지나간 과오가 노동자들이 겪을 고통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투쟁을 제대로 못한 만큼 그 책임이 당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나간 과오를 덮어둔 채 비례대표 한 자리 내주는 것은 좋게 보려 해도 위선이다. 이번 결정으로 그 동안의 과실을 털어낼 수 있다고 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생색내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그간 당이 비정규직투쟁을 어떻게 해왔는지 반성적 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그 어떤 진정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방기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