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에 GS칼텍스 자본에 의해 공장 밖으로 내몰리고 생존의 항시적인 위협 속에서 1,000일이 훌쩍 넘어버린 지난 11월13일 새벽, GS칼텍스 해복투 이병만, 박성준 동지는 여수 석창4거리의 35만5천 볼트가 흐르는 55m 철탑에 올라갔다. 철탑을 흔드는 바람에도 겨우 얇은 합판 위에서 버터내야 하는 위험천만한 그 자리에서 해복투 동지들은 “복직약속 파기자 GS칼텍스 자본 심판하자”, “GS칼텍스 자본은 해고자 복직 약속을 지켜라”라며 피눈물로 절규해야 했다.
현장에서 올려다 본 철탑은 ‘55m’라는 숫자보다 훨씬 높고 위험천만해 보였다. 노동자가 자본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위험과 고통을 견디어내야 하는 것인지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병만 동지는 진압반대 사수투쟁을 위해 모인 연대동지들에게 철탑농성은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며, 더 힘찬 투쟁을 해나갈 것을 결의했다.
“동지들, 감사합니다. 3년 동안 여러 분들이 저희들을 도와주셨기 때문에 저희들이 이 자리에 존재한 것 같습니다. 항시 동지들과 함께 남아 있겠습니다. 지금 싸움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더 큰 투쟁, 정말 타격을 주는 투쟁, 악질자본 GS칼텍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투쟁을 준비할 것입니다.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2004년에 GS칼텍스(구 LG정유) 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과 지배개입에 반대하며, ‘비정규직 철폐’, ‘지역발전기금 출연’, ‘주40시간 근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총파업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사측은 필수공익사업장임을 악용하여 불법파업으로 몰고는 공권력을 앞세워 전면적인 노조무력화를 획책했고, 그 결과 사측의 의도대로 GS칼텍스 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어용화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30명이 공장 밖으로 쫓겨나고, 8명이 실형을 받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GS칼텍스 해복투의 처절한 복직투쟁이 시작되었다. 해복투 투쟁은 2004년 파업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투쟁이며,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악랄하게 탄압한 자본과 정권을 폭로하는 투쟁이고, GS칼텍스 노조를 다시 되찾기 위한 투쟁이다. 이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전국 노동자 동지들의 연대로 GS칼텍스 자본을 쳐부수자.
복직을 약속해놓고 마지막에는 복직 절대불가라며 우리를 속였다
철탑농성 현장에서 만난 김영복 해복투 의장은 지난 7,8월의 35일 간의 단식으로 이미 쇠약해진 몸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한 단식으로 인해 오직 결의와 동지애로만 버티고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입을 떼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병만, 박성준 동지가 철탑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사택에서의) 강제퇴거에 항의하기 위해서 단식을 35일 하자, 회사 쪽에서 교섭을 요청했다. (교섭에 응하며) 두 달 동안 회사 규탄, GS칼텍스 불매를 하지 않을 것, 우리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컨테이너 철거 등 회사가 요구하는 사항들을 전부 들어주었다.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교섭하지고 했다. 두 달 동안(8/22~10/26) 우리는 그러한 요구들을 다 받아들이고, 어떻게 보면 굴욕적인 마지막 제안까지 했다. 평조합원이었던 두 명은 협력업체에 갔다가 1~2년 후에 복직하고, 나머지 동지들은 회사가 하는 보상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가 이것마저 거부했다. 그리고 애초의 교섭시한이 지났었지만 노동부와 정권의 중재요청을 받아들여 일주일 정도 교섭기간을 연장했다. 우리의 최소한의 요구들을 회사는 받아들여야 했지만, 결국 10월31일 회사는 마지막까지 거부했다. 교섭에 응할 때 분명히 부속합의서에다 복직을 전제로 한 교섭이라고 했었다. 우리는 몇 명이 복직하느냐, 또는 복직을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 밀린 임금이나 이런 것들을 논의하자는 것인 줄 알았는데 회사는 마지막에 복직은 절대불가라고 했다.
그래서 11월7일 GS자본에게 전면전을 선포했다. 민주노총 전남본부가 결의한 GS칼텍스 해고자 복직문제를 위한 11월17일 1만 노동자 지역 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전면전을 선포하고, 단식에 들어갔다. 우리 해고자들은 장기 투쟁이 되고, 생계가 밑바닥을 치다 보니까 마음이 절박하다. ‘뭔가 선도투를 해야 된다’, ‘이제 일상투쟁만 가지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런 극단적인 투쟁(철탑농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동지들이 제가 단식하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어제 새벽에 올라갔다. 저 동지들은 어떻게 보면 죽음을 각오한 투쟁이 아닌가. 어차피 막다른,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에서 저런 길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해복투를 상대로한 GS칼텍스의 사기극이 이병만, 박성준 동지를 고공철탑으로 몰은 것이다. 이이서 김영복 의장은 GS칼텍스가 지역에 끼친 피해, 공권력과 함께 어떻게 노동자를 탄압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노자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 노동자가 해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지만, 기업이 지역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도 문제이다. GS칼텍스는 환경오염을 엄청나게 시켰다. 그리고 40년 동안 여수에서 이렇게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지역민에게는 와서 해준 게 없다. 공익시설을 만들어서 기부를 한다거나 하지 않고, 고용효과도 미비하다. 이러면서 40년 동안 부를 축적해왔다. 노조가 2004년에 사회적 의제를 가지고 공공성 강화 요구를 하자, 도리어 회사는 노조를 무력화시켰고,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만들었다. 또 노동자들을 해고시켰고, 그 노동자들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없도록 수단 방법을 안 가렸다. 같이 파업을 했던 동지들이 외면하게 만들게 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파업이 끝나고 나서 회사가 조합원을 상대로 한 회유와 협박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우리가 이런 극한투쟁을 하는 것이 오히려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극히 당연한 투쟁인데, 이렇게 전기가 되는 투쟁을 만들지 않으면 저놈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GS자본 눈치를 굉장히 보는 공권력은 저놈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GS칼텍스가 불법이 아니냐 하면 진압을 하고, 집회를 불허하고, 우리가 3년 동안 겪었다. GS칼텍스가 우리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 폭력으로 고발하면 무혐의 처리 시키고, 이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일들을 겪고서 우리가 어떻게 법으로서, 정상적인 방법으로서 투쟁할 수 있겠는가? 일상투쟁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3년 동안 싸울 수 있었던 건 동지가 있어서이다
김영복 의장은 환갑이 다 된 나이로 연이은 단식투쟁을 하며 불굴의 투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해복투의 장철 사무국장 역시 구속의 경험과 생존권 박탈의 극한 조건에서도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해복투 동지들이 3년 동안 싸워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저희들이 3년 넘어가면서 투쟁하다 보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들에 대한 동지애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지애만 있다면 투쟁은 길고 힘들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영복 의장
“자본주의 사회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노동자의 승리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됐다고 승리라고 표현하기 힘든 것처럼, 제가 복직이 됐다고 해서 승리라고 보기 힘들 것입니다. 3년 투쟁하다 보면 많은 동지들 만납니다. 우리보다 힘든 조건에서 싸우는 동지들도 만납니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투쟁하는 동지들, 그 동지들에게 했던 약속들, ‘같이 싸워서 우리가 원하는, 계급이 원하는 것을 향해 이겨 나가자’, 그 약속들을 생각합니다. 동지들에 대한 의리와 같이 했던 동지들과 함께 하는 것이 올바릅니다. 이후의 싸움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동지들과 함께 하는 것이 맞습니다.” - 장철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