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거센 투쟁이 있을 때마다 일개 사기업을 지켜주겠답시고 꼬박꼬박 전경들을 투입해서 파업대오를 때려잡던 국가다. 우리는 이 국가권력이 항상 자본을 비호한다고 해서 ‘자본가 정권’이라고 불러왔다. 이번의 삼성 비자금 사태는 역대 정권들이 왜 그토록 자본가들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했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삼성과 국가권력의 관계는 그간 민중들이 막연히 짐작해왔던 수준의 정경유착조차 훨씬 뛰어 넘었다. 일련의 폭로들은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었고, “재경부, 국세청 로비는 규모가 훨씬 더 크다”고 증언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는 물론 국정원, 검찰, 경찰이 매일 삼성에 정보를 보고했다니 삼성은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권력자였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당은 곧바로 ‘삼성비자금사태특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특검제 도입과 수사를 주장했으며, 지난 13일 정동영, 문국현과 환한 웃음으로 손 맞잡고 특검법안 발의에 합의를 해둔 상태이다. 이에 자본가 세력은 사뭇 긴장한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등 소위 경제 5단체는 16일 “기업의 이미지 손상과 대외신인도 하락 등 국가 경제 전반의 피해”를 들먹이며 특검 도입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청와대도 이유를 자꾸 달리 대며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겠다고 해서 한통속임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2005년 노무현이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 말은 비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국가권력이 자본에게 있다는 자기고백이었던 셈이다.
저들이 악착같이 반대하는 특검이기에 꼭 통과되길 바라지만, 당이 오로지 특검발의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그간의 역사로 볼 때 특검은 한계가 분명하다. 삼성비자금 특검이 도입되면 역대 7번째 특검이 실시되는 것이지만, 대개 몇몇 비리 인사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시원치 않게 마무리된 것이 대부분이다. 특검이 오히려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특히 정동영과 문국현이 동의하는 수준의 특검이란 정략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전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공산이 크다. 노동자 정당이라면 이번 사태가 결코 몇몇 부패한 인물들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 한국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임을 민중들에게 폭로해야 하며, 그 해결 방안도 기업의 노동자 통제라는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삼성은 전 방위적인 로비 활동으로 얻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통해 노동자를 철저히 탄압해왔다. 정권과 경찰, 검찰이 힘을 모아 지원한 노동탄압이 삼성 신화의 배경이고 그 유명한 ‘무노조 경영’의 실체이다. 16일 삼성 본사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서 최세진 삼성 SDI 하이비트 해고자 대표는 “삼성은 짧게는 3개월에서 7년을 근무한 노동자들에게 사직을 강요하고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에게 식칼테러, 직원에 의한 성폭행, 집회에 대해 벌금을 물리는 등 탄압을 일삼아왔다”고 증언했다. 무자비한 노동 탄압은 곧바로 독점자본에 대한 사회적 감시망과 제어 장치를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찌 이번 비리 사태가 삼성 하나만의 문제이겠는가. 정치권력이 독점자본의 하수인이었음이 분명해진 이 시점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노동자 정당이라면 개혁을 가장한 신자유주의 세력과 분명한 대별점을 긋고, 독점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노동자 통제를 외쳐야 한다. 노동자들이 기업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때 비로소 끈질긴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종식시킬 수 있음을 설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 정당의 진면모를 민중의 가슴에 깊이 각인시킬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