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수화가 아니라 운동주체 위기시대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과반수에 육박하는 48.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명박이 대표하는 보수정치세력 또는 부패한 반민주세력이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다시 집권하게 된 것에 대해 누구는 사회가 보수화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가 보수화돼서 보수정치세력이 집권하게 됐다는 설명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대변하고 있는 보수적인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도 불분명하거니와(이명박이 내세운 실용성과 뚝심을 보수적 가치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민중들이 보수적 가치에 적극적으로 동의해서 이명박을 지지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핵심을 빗겨가고 있는 설명이다.
이명박이 당선된 것은 무엇보다 노무현 참여정부 심판의 효과이다. 이미 재보선선거, 지자체선거에서 확인된 여당 심판, 한나라당 밀어주기가 대선에서도 반복된 것이다. 이러한 민심이반은 당연히 사회양극화, 빈곤화, 비정규직화, 생활비급등 등 먹고사는 문제의 절박해짐 때문이다. 민중은 삶의 피폐에 대해 그 책임을 참여정부에 물은 것이고, 참여정부를 무능력한 ‘좌파정권’으로 낙인찍고 등돌린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에 등을 동린 민중들은 왜 이명박을 지지했을까? 제1야당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명박 당선자는 민생문제의 원인들을 시장규제와 좌파정권의 이념적 행태로 인한 투자부진, 경제성장률 저하로 환원시키고서는, 경쟁촉진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인 정책으로 자신이 다시 한국경제에 고성장시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설득했고, 이게 먹혀들었다. 이명박의 대선승리는 동시에 경제대안 경쟁에서의 과거회고적 성장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사실 대선에서 성장주의는 이명박 후보만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다. 모든 후보들이 저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말하며, 자신이 고성장시대를 다시 가져다줄 적격자임을 홍보했다. 여기에는 ‘진보적 성장론’을 주장했던 권영길 후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이런저런 성장론들 중에 이명박의 불도저 성장론이 선택받은 셈이다.
이처럼 이명박 당선에는 민생파탄으로 인한 민중의 노무현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는 것이고, 분노한 민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이명박 인력의 실체도 보수적 가치가 아닌 지금으로선 희망으로 보이는 경제위기탈출방책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중의 분노는 운동주체(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의 역량에 따라 퇴행적인 성장주의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급진적, 진보적인 요구로 분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이 민중이 보수화됐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주체적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민중은 급진화될 수 있는 데도, 당장의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만 보고 민중이 보수화되었다고 진단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오히려 문제는 보수정치세력을 지지한 민중이 아니라, 유리한 객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민중이 급진화하도록 선도해야 할 자기역할을 해내지 못한 주체 자신의 무능력과 무기력이다. 따라서 현 정세의 특징은 사회보수화가 아니라 객관적 조건의 성숙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실망하고 분노한 민중을 변혁운동의 주체로 세우지 못한 운동주체의 위기이다. 운동주체의 위기시대인 것이다.
운동주체의 위기는 주체 자신의 오류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동주체는 왜 자기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 것일까? 이는 이번 대선에서 참패한 민주노동당을 살펴보면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권영길 후보는 16대 대선보다도 25만표를 덜 받은 3.0%를 득표했다. 객관적인 조건은 민주노동당에 유리했는데도 말이다. 민생파탄으로 인한 심판론으로 집권세력이 몰락하고, 제1야당은 IMF위기 책임, 부패한 반민주세력으로 이미 한 번 민중의 심판을 받았던 세력이며, 양극화-비정규직화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어 민중의 불만은 누적되고, 노동자투쟁이 분출되고 있는 정세는 분명 노동자정당을 자임하는 민주노동당에게는 호기이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참패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참패는 자신의 오류에 기인한다. 민주노동당은 사회양극화, 비정규직화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모순악화의 정세에서 반자본주의 정치투쟁기조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민족민주 기조에 자신을 가두고서는 열우당 2중대와 다를 바 없는 실천을 해온 것이다. 그 결과는 2005년 재보선선거, 2006년 지자체선거, 2007년 대선 결과가 보여주듯 자유주의정치세력과의 동반몰락이다.
민주노동당 참패의 경험은 왜 운동주체가 위기에 직면하게 됐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자본주의 모순 악화의 정세에서 노동자, 민중의 고통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음을 폭로하고, 자본주의를 대신할 한국사회의 총체적 대안을 제시하며, 이에 걸맞게 투쟁을 배치하고, 여기에 노동자, 민중을 결합시켜내지 못하면 운동주체는 노동자, 민중을 대변한다는 자신의 말에도 책임을 못 지는, 진정성 없는 세력으로 낙인찍혀 정체와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겠다는 주체의 진정성은 오직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 즉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의 공간에 위치함으로써만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받는 노동자, 민중의 이해는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사회주의의 원칙을 관철시켜나갈 때만이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오늘날처럼 자본주의 모순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더욱 절실해진 주체의 투쟁방식이다.
자본주의 사회란 자본이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생산되는 부 역시 자본이 독점하고 관리함에 따라, 생산수단과 부로부터 노동자, 민중이 소외돼 있는 사회이다. 생산수단를 소유하지 못한 무산대중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 자본의 욕망과 필요를 충족시켜줄 때만이 살아갈 수 있다. 자본의 본성인 무제한적인 이윤추구는 필히 노동자를 더 오래 기계에 매어놓고, 점점 빨라지는 기계의 리듬에 따라붙을 것을 강요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을 더욱 헐벗긴다. 따라서 노동자의 자기개선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독재를 얼마나 몰아내고, 대신 노동자의 참여와 결정(노동자의 생산수단 통제)을 얼마나 관철시켜내는지에 달려있다. 또한 노동자의 자기해방이 사회에 대한 자본의 독재를 몰아냄에 따라 민중 역시 자기결정권을 회복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은 자본과의 투쟁을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 그 자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자본과의 피말리는 투쟁 역시 끝장낼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와는 싸우지 않고 자본과 싸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그 자체와 대결하지 않는 투쟁은 결국은 노동자, 민중을 위해 싸우겠다는 자기정체성을 배신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동자, 민중으로부터의 철저한 외면이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주체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회피하거나, 반자본주의 투쟁을 대중적으로 해낼 역량을 갖추지 못함으로써 오늘날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정체와 위기에 빠져든 것이다.
위기를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로 돌파하자!
따라서 오늘날 운동주체 위기시대를 극복해내는 핵심은 과거회고적 성장주의세력, 자유주의세력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민생파탄 폭로(그 원인이 자본주의 자체에 있다는 것)와 한국사회에 대한 총체적 대안(대안은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다)을 제시하고, 이것이 단지 공문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진정어린 투쟁을 노동자, 민중과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투쟁의 예각화만이 운동주체 위기시대를 극복해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선참패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정치세력 2중대 노선에 대한 반성과 이를 반자본주의 정치투쟁기조의 예각화로 쇄신하겠다는 각오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 다만 당권파의 북한에 대한 태도만이 쟁점화되고 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이처럼 비본질적인 논쟁에 전면적인 쇄신이 요구되는 위기의 시간을 소진한다면, 그 결과는 정치적 파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