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한마디로 참혹한 패배이다. 패배의 원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지만, 필자는 인민들의 시각에서 민주노동당이 패배한 이유와 그를 극복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보통의 인민들이 민주노동당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일까? 까놓고 말해서 그것은 ‘민주노총당’, ‘친북당’, ‘데모당’이다. 물론 이런 부정적 인식의 상당수는 보수언론과 자본가들에 의한 이데올로기 공격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말들에 일말의 진실이 없을까? 보수언론과 자본가들이 아무리 악선전을 하더라도, 우리의 발언과 행동이 그것을 넘어서서 인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진정성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저 말 속에 숨어있는 진실에 대해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필자의 이런 주장은 이제부터는 ‘민주노총당’, ‘친북당’, ‘데모당’ 하지 말고 보수언론과 자본가의 구미에 맞게 지금보다 더 우경화하자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위의 말들은 현재의 어정쩡한 민주노동당의 한계, 즉 인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지 못한 중도적, 봉합적 정당의 한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좌경화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민주노총당’이라는 비난 속에 숨어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부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현재의 민주노총 및 조직노동운동의 상당수가 정규직 대공장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음을 인민들이 이미 궤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운동은 과연 비정규직과 진정으로 연대하고 있는가? 혹자는 대중조직이라는 노조운동의 특성과 현재 조합원의 의식수준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고 변명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운동을 이끌고 나가야 할 계급정당과 노동운동의 상층 활동가들은 과연 무엇을 했던가?
가령, 필자가 살고 있는 경남에선 다음과 같은 투쟁사례가 있다. 100명도 안 되는 진보적 장애인활동가들이 결연한 의지로 싸움으로써, 경남도내 상당수의 지자체에서 장애인 권리쟁취에 관한 일종의 단체협약안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취약한 기반을 가진 장애인운동에서조차 성공하는 일을 계급정당과 노동운동이 왜 못하는가? 당과 노조의 활동가들이 비정규직을 위한 공공주택 및 공공의료보장 등 비정규직의 사회적 권리 확대를 내걸고 지자체나 도를 상대로 직접 투쟁하는 것은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 당과 노동운동이 지역에서부터 이런 직접적 정치투쟁을 만들어낼 때만이, 조합원들의 정치의식도 상승하는 것이며 광범위한 인민들 역시 당과 노동운동이 정규직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구체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친북당’이라는 비난의 진실은 또 무엇인가? 이미 많은 다른 논자들이 지적한 내용이지만, 그 핵심은 격화되어 가는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고통받는 인민들의 현실을 외면한 채 통일 그것도 자본이 주도하는 통일을 몰계급적인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당과 민중운동 내 일부 분파에 대한 거부이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통일이 당면한 최대목표인 한 통일을 위해선 스탈린주의적인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남한 내부의 이른바 ‘민족적 자본가’ 및 ‘통일지향적’인 중도보수 정치세력에 대한 단절은 불가능하며, 이는 결국 민족의 이름 아래 계급적 모순을 외면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는 이번 대선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데모당’은 또 왜 비난받는가? 데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데모와 반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우리들이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그 대안은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사회주의 깃발을 내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의 운영원리를 대중적으로 설득하고 그 원리가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순한 반대를 넘어 사회주의의 미래로 전진하는 것만이 현재의 고통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