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투쟁에서 참패하였다. 5년 전 2002년에 비해 당원 수와 당조직은 급격히 확대되었음에도 권영길 후보는 2002년보다도 낮은 3.0%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낮은 득표율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은 2002년과 달리, 사회의 향후 발전방향을 둘러싸고 의미 있는 논란거리를 제기하는 데에서도 실패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선에서의 참패 이후, 민주노동당이 보인 모습이다. 권영길후보와 당내경선과정에서 권영길후보를 지지한 자주파와 개인들, 그리고 선대위와 최고위원회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최고위원회의 사퇴와 심상정비대위의 구성으로 사태를 수습하는 데에만 몰두하였다. 대선이 참패로 끝난 지 이미 한 달이 지났지만,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대선참패의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은 사실상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의견그룹 전진을 중심으로 대선투쟁의 참패에 대한 철저한 평가는 진행하지 않은 채 “종북주의 때문에 대선투쟁에서 패배하였다, 종북주의 때문에 당이 망했다”는 정치적 공세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 결과 당은 대선에서의 참패에 이어 제2의 추락을 경험 중에 있으며, 어렵게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대선참패이후 한 달이 다 된 시점에서도 평가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고, 당의 모습에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행렬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대선에서의 참패 이후에도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가 실종된 채 정파 간 정치공세만 난무하는 민주노동당에 과연 미래가 존재하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이 드는 시기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미 민주노동당은 진정성 있는 반성과 평가가 불가능한 정치조직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조차 든다. 필자가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이런 상태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고 대선참패 이후의 당의 모습이 이를 더욱더 명확하게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미주).
민주노동당이 대선에서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참패한 핵심적인 이유는,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 악화와 사회의 양극화, 이에 따른 노동자, 민중의 삶의 악화, 파탄에 민주노동당이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노동자정치의 강화로 대응하지 않고, 오히려 우경화하여 자유주의정치세력과 독립적인 정치세력으로 노동자, 민중들에게 전혀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노동당은 열우당 2중대, 대통합민주신당 2중대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유주의정치세력과 함께 ‘민생파탄을 초래한 한 묶음의 무능한 세력’으로밖에 인식되지 못해 동반 몰락했다.
이 자명한 사실조차 민주노동당, 보다 구체적으로 민주노동당내 정파들은 분명하게 정치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할 만큼 현실인식과 현실과의 소통에서 실패하고 있으며 대신 민족주의세력과 사민주의적 개량주의세력사이에는 사태의 핵심을 완전히 놓친 지루한 정치공세만이 반복되고 있다. 주인(노동자, 민중, 당원)의 마음은 급속히 떠나가고 있는데 객들(정파들)의 내부정치만이 횡행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해온 사회주의자들에게 지금만큼 당의 현실을 냉정히 평가하고 그 대안을 단호히 실천해야 하는 시기도 없었다.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어떠한 역할을 하였고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은 과연 앞으로 혁신되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이 다해간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대안을 강구해야 하는가? 정파연합당이 사실상 해체되고 있는데 원하든 아니든 더 이상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는 지난 것이 아닌가?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면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이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등등 사회주의자들이 지금 스스로에게 제기해야 하는 질문들은 어느 것 하나 가벼운 것들이 아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대하며 토론회에 참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 표현되는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한 시도가 역사적으로 마감되어가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겸허한 태도일 것이다. 오늘 토론회가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해온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간에 고민과 대안을 소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
1) 2000년 창당에서 2004년 4.15총선까지
민주노동당의 2000년 창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주요과제로 설정한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민주노총의 주도 + 정파연합당). 96, 97 총파업이 창당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창당을 주도한 점이 이전에 실패를 반복하던 진보정당 추진 움직임과 달리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토대를 빠른 시기 안에 구축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좌파들이 당시부터 민주노동당 창당이 민주노총 내 개량주의세력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유로 민주노동당의 창당을 개량주의세력의 정치세력화 시도 정도로 축소하여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민주노동당 창당의 의의를 지극히 일면적으로만 규정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 내 개량주의세력의 주도하에 창당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노동자도 정치세력화’를 해야 한다는 대중적 열망을 기본 동력으로 한 것이었고, 민주노동당의 창당에는 개량주의적 세력만이 아니라 변혁적인 세력 역시 참여하였던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들이 이후 실천에서 민주노동당에 대당하는 자립적인 대중적 정당을 창당하는 데서 실패한 것은 이들이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과제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기권한 채 좌익분파주의적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주체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하여 출발부터 의회주의적 경향과 대리주의적 경향, 개량주의적 경향이 우세하였지만 창당 이후 격화된 한국사회의 모순과 이에 따른, 기존보수정당과 다른 대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열망고조,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로 상징되는 급진적인 주장을 배경으로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가 민주노동당의 ‘한계 속에서의 성장’시기였다. 비록 많은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그리고 비례대표제라는 제도의 덕도 보았지만 이 시기에 민주노동당은 진보불모의 한국정치지형에 돌파구를 내는 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기대를 받게 되었다. 2004년 총선직후의 메이데이 전야제와 집회가 어느 해보다 활기에 찼던 것과 총선이후 대규모 당원입당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2) 2004년 4.15총선 이후 당 혁신의 실패와 ‘당의 한계가 오류로 전환된 퇴보의 시기’
그러나 2004년 총선이후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혁신함으로써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데에서 실패하였고 변화된 정세에 지속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노출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불리한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체적 한계와 오류였다.
객관적 조건은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이는 민주노총에게도 똑같았다). 사회의 모순 심화는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열망을 고조시켰다.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곪아 터지고 있었고 객관적 조건은 급진적인 노동자정치의 본격적인 전개에 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주장이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은 이 주장이 자본 위주의 사회질서에 대해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읽고 당은 2004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을 전개했어야 했고, 원내진출을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토대로 적극 활용하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열린우리당 등 자본가정당과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노동자정치의 실천과 결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당은 이러한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반자본주의정당으로서의 성격 강화는 실천되지 않았고, 2004년 너무나도 당연한 비정규직관련 투쟁의 전면화와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의 건설이 당시 당내에서 논란이 될 정도로 당은 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2005년 불파투쟁을 당은 사실상 방치하였다. 당 정치사업에서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적 기조가 갈수록 강화되었다. 또한 당은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의회에서 대신 해결해주는 고루한 의회주의, 대리주의정당의 성격을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이 분리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으며,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이 끊임없이 반복될 정도로 독자적인 노동자정치의 실천에 실패하였다. 당원들 특히 노동자당원들의 주체적 당활동 참여 확대를 위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은 사회적 모순의 격화되는 조건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체제에 안주하며 우경화하는 상황을 연출하였고 이는 당연히 당의 침체와 위기로 연결되었다.
2005년 울산북구재선거에서의 패배는 이를 반영하는 것이었고, 선거 패배 이후 최고위원회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당은 그 후에도 아무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기 최고위원회에서도 이전의 민족주의적, 개량주의적 정치기조가 그대로 반복되었고,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울산북구, 동구 구청장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전국적으로도 패배했다.
2004년 이후 당이 보인 모습은 발전이 아니라 정반대로 퇴보였다. 당의 급진화가 아닌 우경화는 당의 침체를 가져오고 이 침체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당은 다시 우경화로 향하고 이것이 다시 침체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확대 재생산되어 왔고, 2007년 대선후보 당내경선에서 자주파의 종파적인 이해로 세 후보 중 가장 우경화한 권영길후보가 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된 이후에는 현충원 방문, 친기업정당 선언으로 우경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당대표의 한국노총 사과사태까지 발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정치적 몰락위기를 가져온 대선에서의 참패였다.
창당 이후 2004년까지의 시기가 ‘당의 한계 속의 성장 시기’였다면 2004년 이후는 ‘당의 한계가 오류로 전환된 퇴보의 시기’였다.
3) 민주노동당의 퇴보추세는 역전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
그러면 민주노동당은 과연 앞으로 혁신되어 퇴보를 멈추고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당으로, 노동자들을 당의 주체로 세우는 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그 첫번째 이유는 몇 가지 혁신조치로 달라질 수 없을 정도로, 자본주의적 모순악화, 사회양극화 정세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는 이미 구조화되어있기 때문이다. 현재 당에는 크게 보아 민족주의경향, 사회주의경향, 사민주의경향이 존재한다. 이 중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민족주의경향은 당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채택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고 있으며 시대착오적인 민족민주적인 정치투쟁기조에 당의 정치투쟁기조를 여전히 가두어두려 하고 있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국가비전채택은 이 경향의 돌발적인 시도가 아니라 일관된 기조의 산물이다. 이들은 이 기조를 조만간에 더욱더 밀어붙일 것이다. 사민주의경향은 공공연한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회주의로 위장된 사민주의경향까지 합하면 당내 두 번째 규모의 경향으로서, 이 경향은 반자본주의적인 기조의 예각화를 민족주의자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방해하고 있다(반자본주의적 기조 반대에서 민족주의자들과 사민주의자들은 공조하고 있다). 이들 두 경향을 합치면 민주노동당은 60%이상의 다수가 반자본주의적 기조를 당의 기조로 채택하고 투쟁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당이 노동자대중의 투쟁흐름과 분리되어 이미 관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은 창당시기부터 민주노총 상층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후 일반 노동자들이 다수 입당하였지만, 일반노동자들이 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통로가 봉쇄되어(가령 앞에서 예를 든 현장분회의 약화, 계선조직에서의 현장라인의 누락 등) 당은 노동자대중의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그 결과 당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한 흐름이 당에 영향을 미치거나 당사업과 연결되지 않고 상층관료의 통제아래 관리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은 노동자대중의 분노, 열망,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당의 잘못된 정치노선, 패권주의적 운영, 출세주의자들 사이의 권력투쟁 등에 실망하여 건강한 선진노동자들과 변혁적 세력들이 새로이 입당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한 기존당원들이 개별적으로 탈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선패배 이후 당이 보인 극히 실망스러운 모습은 이 추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의 퇴보추세가 역전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2003년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이 발전하도록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정당화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2008년 현재의 시점에서 당전반의 사회주의정당화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현실을 냉정히 인정해야 한다. 이 정도가 아니라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 사회주의정당화 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당이 퇴보하여 당이 창당당시 내걸었던 노동자정치세력화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조차 공문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4)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실제로 하고 있는 역할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기대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표체로 행세하며 노동자정치의 발전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그 역사적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진정성을 갖는 사회주의자라면 이 점을 철저히 인식하고 역사적 한계에 이른 민주노동당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을 가져올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언제 어떻게 분화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사회주의자들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5)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온전히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만약 민주노동당이 2004년 이후 올바른 궤도에 올랐다면 민주노동당은 지금 사회주의정당에 근접한 정당으로 발전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었다면 민주노동당은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창당초기 이상으로 발전하는 당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은 분화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풍부화를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역량부족과 대응 실패,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인 정치투쟁기조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발전해야 할 때 발전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가 정반대로 퇴보하듯이 민주노동당은 발전해야 할 때 발전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찾지 못하고 퇴보하여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온전한 발전에 걸림돌이 된 정당이 되어버렸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당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노동자정치세력화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2. 민주노동당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할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자!
1)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온 민주노동당의 분화 -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는 지나갔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 어느 정파도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창당할 수 없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정파연합당을 가능하게 했고,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동거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원내로 진출한 2004년을 경과하면서 정파동거체제는 본격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핵에 대한 태도문제를 둘러싸고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2003년 이후 북미간의 공방이 격화될 때마다 정파간 이견으로 신속하게 당론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실패해왔다. 통일된 정치적 입장의 결여로 당은 능동적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선도자로 나서는 데에서 실패하였다. 여타 문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고 이것이 해결불능의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대선후보 당내경선 과정에서였다. 자주파의 종파적 행동으로 발생한 당내경선 후유증으로 민주노동당 내의 정파동거체제는 이미 대선참패 이전에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대선참패는 이를 표면으로 들어나게 하였다.
원래 정파동거체제는 장기간 계속될 수 없는 것으로 언젠가 분화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매우 불리한 조건에서 분화의 시기가 찾아왔다. 대선 참패로 민주노동당 전체가 정치적 몰락위기에 처한 시기가 분화에 유리한 시기가 아님은 주관적 생각에 빠진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보다 좋은 조건에서 분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분명한 것은 이미 동거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점이고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이지만 이미 분화는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파연합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은 각각의 주체가 원하든 아니든 이미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이미 다시 봉합될 수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정파연합당이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정파 간 이합집산을 통해 새롭게 정파연합당을 재조직할 것인가, 아니면 정파연합당이 유효한 시기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이념적으로 특징이 분명한 당을 건설하고 새로운 활로를 각각 찾아 갈 것인가가 선택지점이다.
사회주의자로서 필자는 후자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세력들이 총선에 연연해 한다거나, 내용도 불명확하고 오래 가지도 못할 새로운 정파연합당에 매달리지 말고 긴 호흡으로 사회주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길,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 길을 통해 대중들과 새로운 내용과 자세로 만나는 것이 대중들에게 보다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태도이고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힘 있게 성장할 수 있는 방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민족주의세력, 사민주의세력에게도 권유해보고 싶은 제안이기도 하다. 물론 선택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2) 우리가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할 때 핵심적으로 담아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글의 1.항목에서 필자는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에서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당의 구조적 한계로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주장이 민주노동당으로부터 계승할 성과가 전혀 없다거나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경험에서 끌어낼 수 있는 반면교사적인 교훈이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도는 변증법을 공부한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의 경험 속에서는 주요 회의내용의 공개와 직선제 등처럼 외국의 진보정당과 비교하여 매우 선진적인 내용들이 다수 있다(물론 이 모두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투쟁으로 쟁취된 것들이다). 이 모두는 향후 건설될 사회주의정당이 계승해야 할 내용이다. 다른 한편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당원교육이 극히 부족하였다. 특히 새로이 입당한 당원들을 당 활동으로 이끄는 초보적인 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점은 민주노동당의 경험이 제공하는 대표적인 반면교사적인 교훈이다. 공과가 어떠하든 민주노동당의 경험은 향후 사회주의정당의 건설과 발전과정에서 소중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시도는 민주노동당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경험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자신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타국의 역사적 경험도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교훈을 실천적으로 반영하여 건설될 당의 내용으로 최대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전제로 오늘 토론회의 발제문에서는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이 핵심적으로 담아야 한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을 밝혀 보겠다.
(1)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념, 강령, 전술, 조직운영에서 구현되는 사회주의정당
- 우리가 건설할 당은, 명목상으로만 사회주의를 표방할 뿐 실제의 활동은 경험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활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행세식 사회주의자들의 집합소가 되어서도 안된다.
- 우리가 건설해야 할 정당은 실제로 사회주의가 이념, 강령, 전술, 조직운영에서 구현되는 사회주의정당, 사회주의 활동이 충만한 당이 되어야 한다.
(2) 현실사회주의 실패 경험의 교훈을 반영하고, 인류가 새롭게 축적한 물질적,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목표로 하는 당
- 또한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이념으로 내거는 사회주의를 추상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사회주의 실패 경험의 교훈을 반영하고, 인류가 새롭게 축적한 물질적, 문화적 성과와 새로운 삶의 양식에 대한 문제의식을 능동적으로 수용한 새로운 사회주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회주의의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정당은 변화된 역사적 지형 속에서 대중적인 사회주의정당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축적된 대안적 사회주의에 대한 논의의 성과를 모아, 건설될 사회주의정당은 자신의 사회주의의 내용을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3) 노동자계급이 투쟁과 조직의 주체가 되는 당 - 대리주의정당의 배격
- 민주노동당은 노동자계급의 정당임을 자처하였지만 실제로 민주노동당에서 노동자계급은 주체로서 참여할 수도, 당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였다. 실제의 모습은 민주노총 전현직 관료 중심의 당이었다.
- 또한 민주노동당은 당의 주체로 노동자계급을 세우지 못하고 노동자계급의 선두에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요구 일부를 의회활동을 통해 대신 해결해주려는 대리주의정당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 앞으로 건설할 당은 철저히 노동자계급을 투쟁과 조직의 주체로 세우는 당이 되어야 하며 대리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여야 한다.
(4)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의회활동을 결합하는 당
- 의회주의적 실천은 결코 계급투쟁을 발전시키지도 계급해방을 실현하지도 못한다.
- 민주노동당이 무기력한 당이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당이 의회주의적 한계에 갇혀 조로증에 걸려 짧은 기간 동안에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 의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거투쟁과 의회활동를 소극적으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선거투쟁과 의회활동을 올바로 결합해야 한다.
(5)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
- 민주노동당은 의회주의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당 이후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으로 발전하는 데에서 실패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창당 이후 당의 주류를 형성한 세력은 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이를 방해하였다. 이는 당의 현장분회가 창당 이후 의도적이라고 할 정도로 배격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 이러한 민주노동당의 한계는 곧바로 의회주의적 실천, 해결사적 대리주의적 실천을 고착화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 우리가 건설할 사회주의정당은 이러한 반면교사적인 교훈을 철저히 반영하여 노동현장에 기반을 두고 현장의 투쟁과 밀접히 결합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
- 이를 위해서 조직구조도 현장단위조직을 기반으로 한다.
(6)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로서의 당 + 대중적 당
- 우리가 건설할 당은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전위정당이다. 전위정당하면 비합직업적 혁명가조직을 연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위정당의 본질은 비합직업적 혁명가조직이 아니라 당이 노동자계급의 선진적 부대라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당원들의 교육, 투쟁에서의 단련을 일상적으로 실천한다.
- 전위정당의 성격을 갖는 것과 동시에 대중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정당에 대비되는 것은 전위정당이 아니라 직업적 혁명가조직이다. 당은 최대한 대중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
(7) 당원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당
- 당원은 당조직 중 하나에 참여하여 활동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지 않는 경우는 후원당원으로 조직한다. 이러한 방식이 당원들의 주체적 참여를 담보할 수 있다.
-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교훈으로 당원들의 교육과 훈련에 당역량을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8) 민주집중제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구현되는 당
- 민주집중제는 매우 훌륭한 조직운영원리이다. 특별히 사회주의정당만의 조직 운영원리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집중제는 구호로서만 남고 민주주의는 실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탈린주의정당이 그러했고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그러하다.
- 현실에서 존재했던 것은 민주집중제를 구실로 특정종파, 특정종파의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를 내려 먹이는 반민주주의정당이었다. 말로서가 아니라 토론과 비판의 자유, 행동의 통일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생동감 있는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
3.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가장 먼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은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 건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 민주노동당의 분화 시기, 사회주의 정당 건설의 구체적 경로 등은 향후 토론심화과정에서 구체화해가자. 임시 당대회 후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보다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자.
2) 전국순회토론을 통해 사회주의당원들과 현장당원들 사이의 소통을 확대하고 의지를 모아가자!
3) 사회주의자로서 구체적인 사회주의활동을 실천하자!
- 거창한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사회주의활동부터 실천하자.
- 우선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학습활동부터 실천하자.
- 노동현장 단위조직 건설을 실천하자.
- 당 안팎의 사회주의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사회주의적 정치투쟁전선을 형성하자
4) 대선투쟁 평가와 당사업 및 운영 평가에 적극적으로 임하자!
맺으며
오늘 토론회의 핵심주제는 토론회 제목처럼 민주노동당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해가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주의자들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당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왔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당이 자기의 것으로 안고 투쟁할 것, 의회주의를 배격할 것(당직공직 겸직금지를 지속할 것 등), 사회적 모순의 격화에 맞추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실천할 것 등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만약 당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심각한 정치적 위기에 처할 것임을 이미 2005년부터 지적해왔다. 2007년에 들어서서는 당원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표현 ‘만약 당이 반자본주의적 정치투쟁기조를 확립하지 못할 경우 당은 정치적 몰락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당의 심각한 상태를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를 당은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경고한 대로 참담한 패배와 정치적 몰락이었다. 참담한 패배 이후에도 당은 진솔한 반성과 평가와는 너무나 거리 먼 행보를 하며 한달여를 보내왔고,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멸하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자신이 기초하는 노동자계급과 갈수록 멀어지고 노동자계급과 소통하는 데서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늘 발제문에서 필자는 이미 민주노동당은 혁신될 수 있는 시기를 놓쳤고 더 이상 혁신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의 창당 때부터 함께 했던 당원으로서 이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게 퇴보한 당의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이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솔직히 이를 인정하고 사회주의정당 건설이라는 대안을 실천해가야 한다. 아직 우리들은 이를 가능케 하는 구체적 경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향이 올바르고 역사의 방향과 일치하며 노동자계급의 열망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이를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당장 구체적 경로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왜 지난 10년의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가 실패했는가를, 민주노동당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민중운동 전반이 왜 침체와 무기력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겸허히 반성, 성찰하는 것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참패 이후 벌어지고 있는 당내 움직임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것은 그 주체들에게서 운동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성찰의 기운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만큼 감동도 없다. 당 밖의 좌파 움직임도 아직은 그다지 고무적이지 않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는 넘쳐나는데 관료주의적 변질 등 주체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세에서는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오기 어렵다.1
오늘 발제에서는 토론회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기대할 만한 내용 - 당에서의 분화시기,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구체적 경로는 다루지 않았다. 이 주제는 앞으로 순차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오늘 토론회가 향후 토론과 실천에 하나의 자극제가 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으면서 발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