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3호] 물사유화를 막아낸 볼리비아의 물전쟁에서 배운다

-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선 볼리비아 민중의 이야기 -

공공부문에서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나라의 사례 한 가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나라의 사례는 단지 비슷한 자본의 공세 앞에 놓였다는 것만 특징적이지 않다. 이 나라는 자본의 공세에 당당히 맞서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한 민중들의 투쟁과 승리가 존재하는 나라이기에 더욱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사실 이 나라는 에보 모랄레스라는 원주민 대통령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국토는 우리나라보다 10배 크지만 인구는 8백3십만인 나라인 볼리비아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라이다.

볼리비아는 15년의 신자유주의 지배를 깨고 승리한 항쟁을 세 번이나 일구어낸 나라이다. 이 세 번의 항쟁은 2000년, 2003년, 2005년에 일어났으며, 각각 물전쟁, 가스전쟁(1차, 2차)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2003년과 2005년의 투쟁은 대통령의 퇴진을 이루어낼 정도였다. 여기서는 2000년 물전쟁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15년전 먼저 갔던 한 나라의 이야기

볼리비아는 군사독재 하에 있다가 1982년에 민주주의를 쟁취하였다. 그러나 다른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처럼 볼리비아도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IMF의 소위 “충격요법”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볼리비아에 신자유주의가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이후 볼리비아 정부는 신경제정책(NEP)이라는 것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대통령인 ‘빅터 파즈 에스텐소로’는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명목 하에 DS 21060이라는 포고령을 1985년 8월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본 목적은 공공서비스의 사유화였다. 볼리비아의 경우 국가부문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서 고용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사업체만 아니라 산업전체가 국가소유인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국영기업들 모두가 사유화되었고, 그것도 헐값에 매각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팔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더욱이 정부의 요인들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사유화과정에서 자본과 결탁하고 각종 이권을 챙기곤 하였다.

다른 한편 신경제정책은 노동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는 것이기도 했다. 가령 볼리비아의 주석광산은 국가수입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대규모였는데, 당시 국제가격의 하락 등으로 광부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1986년 9월 광부들의 노동조합은 대규모 행진을 조직하였지만, 정부는 군대까지 동원해 광부들을 해산시켰다. 광부들의 행진이 좌절된 이후, 광산은 사유화되고 노동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전개되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력을 괴멸시켰다. 이후 15년 동안 볼리비아는 초국적 자본의 착취와 수탈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물전쟁의 시작

이러한 시기가 10여년 지속되자 민중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자본의 모순 자체가 저항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입증하듯이 2000년 물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과거와는 다른 조직화의 기미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미 물전쟁 5년 전부터 물전쟁의 주무대인 코차밤바에서는 ‘Fabriles’(코차밤바 공장노동자연맹)란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서, 새로운 노동자계급에 다가가고 조직하기 위한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볼리비아에서도 우리처럼 10여년이 지나자 소위 ‘비정규직’ 노동자라 할 만한 층들이 대거 형성되고 있었으며, 이런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들은 노동자계급의 젊은 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노동조건과 임금, 고용상태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Fabriles\'는 이러한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고 조직하게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농민들을 통해 물사유화의 심각성을 접하게 되었고, ‘Fabriles\'와 ‘Pueblo en Marcha\'(행동하는 민중)등이 주축이 되어 물사유화에 대항하는 \'Coordinadora\'(물과 삶을 방어하는 연합)라는 조직을 만들게 된다. 이 조직은 물전쟁 내내 투쟁의 지도부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물사유화의 내용

그렇다면 당시 물사유화는 어떻게 추진되고 있었는가? 우선 1999년 6월 발표된 세계은행의 보고서가 사유화의 발단이었다. 이 보고서에서는 금융대출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물 사유화를 요구하였다. 볼리비아 정부는 물사유화를 추진하기 위해 1999년 10월 ‘법률 2029호’를 입법하였다.

이 법은 물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한 온갖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1) 우선 수도회사의 물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자치적인 수도분배체계를 모두 불법화하였다. 2)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까지도 그 이용을 금지하는, 말도 안 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게다가 3) 수도공급을 맡은 ‘Aguas del Tunari’(투나리 수도회사)에게 16%의 수익성을 반드시 보장해주면서, 동시에 40년간의 계약기간을 보장해주었다. 4) 수도요금을 미달러에 고정시켜 볼리비아의 환율변동에 손해 보지 않도록 해두었다. 이 ‘Aguas del Tunari’라는 회사는 세금회피지로 유명한 케이먼 군도에 사업등록되어 있는 컨소시엄 기업으로 미국 벡텔사가 자회사를 통해 사실 상 소유하고 있었다.

민중의 승리

이러한 물 사유화는 울고 싶은 아이에게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물요금 폭등에서 오는 고통은 심각한 것이었다. 요금은 300%가 올랐고, 최저임금이 41달러인 나라에서 인상된 요금 30달러는 죽으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유화저지투쟁은 시작에 불과하였고, 신자유주의 15년이 가져다준 고통이 이 투쟁을 통해 최초로 대중적으로 분출되었던 것이다.

1999년 11월 ‘Coordinadora\'가 조직된 이후 12월부터 투쟁이 시작되었으며 2000년 벽두부터 본격화되었다. 1월 11, 12, 13일 동안 집중적인 투쟁이 이루어졌으며, 정부가 사유화를 철회하고 법안을 폐지하겠다는 합의를 하면서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4월 10일 최종적으로 민중들의 승리가 확실해질 때까지 ‘Coordinadora\'의 대표 앞에서는 합의하겠다고 하면서 나중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식으로 기만하였다. 그러나 바리게이트 설치, 도로봉쇄 등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참여의 폭도 더욱 확대되었다. 투쟁의 대오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대오들 사이에서 민주적 토론구조가 형성되면서 대중들은 투쟁을 통해 더욱 단련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2월 4일이후 정부의 기만이 재차 반복되었을 때에는 ‘Aguas del Tunari’을 완전히 추방하자는 요구로 더욱 높아지기도 하였다. 결국 4월 10일 정부는 협상에 나와서 민중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전쟁이 낳은 결과

이러한 민중의 투쟁은 15년 동안 침묵을 강요당한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었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삶을 개선하기 위한 요구를 더욱 과감하게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2003년과 2005년의 큰 투쟁을 낳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볼리비아 민중은 아주 기본적인 삶의 진실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고 바꾸고자 하였다. 이들은 물은 파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유산이며, 인간의 권리라고 했다. 수백년동안 지속되었던 이들의 삶의 기준과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은 사고파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들이 보기에는 사회 공동의 부에서는 나오는 이익은 모두가 누려야 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로 이들이 물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단지 물사유화의 저지만이 아니었다. 볼리비아 민중은 소유권만을 바꾼 것이 아니라 수도회사에 대한 경영과 통제를 획득하였다. 이제 다시 공영화된 수도회사는 시민이 선출한 3인, 시청에서 2인, 전문기술학교에서 1인, 노동조합에서 1인이 이사로 참여하게 되어있다. 공공서비스가 모두를 위한 것 인만큼 그 운영도 민중과 노동자에 의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일을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는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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