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34호/역사속의 사민주의 (1)] 역사의 범죄자 혹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민주의자들의 역사

시리즈 순서

역사속의 사민주의 2) 학살의 역사
역사속의 사민주의 3) 이중대의 역사
역사속의 사민주의 4) 식민지 문제
역사속의 사민주의 5) 여성문제
역사속의 사민주의 6)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역사속의 사민주의 7) 사회적 분업과 직접 민주주의
역사속의 사민주의 8) 산별노조


사민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 면전에서 엿을 먹이는 가장 흔한 방법이 한국에서 사민주의만 해도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라 불릴 만큼 개판인데다가 교육, 의료, 주택 문제와 같은 분야에서 민중들의 절박한 요구가 사민주의 정권하의 성과들과 일치하는 점이 꽤 많다는 점에서, 이 말은 사민주의자들의 방어논리로서 꽤 유효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개량을 추구하는 사민주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사회의 번영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사민주의라도...”라는 말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가 계속 번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오늘날 남한의 사민주의자들은 자본주의 모순이 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번영을 꿈꾼다는 점에서 보면 대단히 비현실적인 세력이다.

자본주의의 번영과 사민주의 개혁을 조화시키는 방법중에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적이었던, 그러나 20년 단명에 그친 방법이 이른바 케인즈주의 정책이다. 노동자임금 상승 및 사회임금의 확대 → 내수시장의 확대 → 기업실적의 호전 → 고용확대로 이어지는 케인즈주의 혹은 복지사회가 서구사회에서 가능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대중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차대전을 통해 평등한 조치의 의미를 알게 된 대중의 정치적 각성이 큰 역할을 했던 영국이나, 독일처럼 나찌에 협력한 자본가계급이 대중의 경멸에 부딪친 것, 그리고 무솔리니를 몰아낸 이탈리아 공산당 빨치산 12만 8천명 등이 예이다. 대중의 압박을 실현할 대중동원에서 사민주의는 교묘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즉 동원된 대중이 자본주의 자체를 전복하자는 주장을 하는 세력과 결합하는 것을 차단해야 했던 것이다. 2차대전 직후 공산주의자가 시장이 된 독일 브레멘시를 당시 점령국이었던 영국군이 접수한 예처럼 극좌파 혹은 혁명주의자들을 제거하는 것이 사민주의자들의 첫 번째 과제였다. 그리고 부르주아들에게 그들의 정책을 설득하는 문제가 두 번째 과제가 되었다. 이는 부르주아들에게 사민주의적 개혁이 자본가들의 이익과 크게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일정한 양보가 없이는 혁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학살의 역사

혁명주의자들이 대중과 결합하지 못한 것은 혁명주의자들의 조급성이나 지도력의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혁명적 시기에서조차 혁명주의자들이 사민주의자들을 제압하지 못한 이유를 들라면 혁명주의자들의 무능과 오류를 거론해야 한다. 그러나 사민주의자들이 혁명주의자들을 제압한 힘은 그들의 정치적 능력과 도덕적 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들과의 협력과 반동세력의 압도적인 물리력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노골적으로 말해 부르주아들과의 협력을 통해 혁명주의자들을 학살한 세력이 오늘날의 사민주의자들의 뿌리이며, 노동자들의 피칠갑이 그들의 강령이다. 그래서 시리즈 ‘역사속의 사민주의’는 혁명가들을 학살한 역사를 먼저 다룰 것이다.

이중대의 역사

사민주의자들은 항상 새로움을 말하며 혁명주의자들을 교조나 낡은 세력으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20세기 초엽부터 21세기 초엽까지 항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온 가장 낡은 세력중의 하나다. 입헌적 공화제, 대의제에 대한 충성과 부르주아 의회에서 좌파를 참칭하는 허풍, 자유주의 세력과의 은밀한, 혹은 노골적인 공모 등 100년 동안 그들의 모습은 한결같고 권태로운 반복의 연속이었다. 사민주의자들이 보여준 지루한 반복중의 하나는 이중대의 역사다. 진보신당 심상정후보가 보여준 총선에서 통합민주당과 후보단일화를 추구한 것은 정도를 넘어선 이중대 행태였지만, 그래도 선지자들의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속의 사민주의’는 자본가 정부에 협력한 역사를 폭로할 것이다.

식민지 문제

사민주의자들은 자국의 자본주의적 번영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식민지 문제에 무능하거나 무관심, 이를 넘어 식민지 해방세력과 적대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제국주의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인식자체가 없음은 오늘날 남한 사민주의자들의 북핵문제에서 보여준 무지와 투항주의적 태도에서도 확인된다. 사실 케인즈주의를 가능케 했던 자본의 지속적인 경제적 양보는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에서의 수탈을 빼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오늘날 금융자본의 세계적 수탈을 보장하는 세계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혈안이 되고 있는 사민주의자들의 모습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다보스포럼에 참여한 사민주의자들의 숫자를 세는 것만으로는 이 설명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명확해진다.

여성문제

여성문제에 대해 진보연하는 사민주의자들이지만 역사적으로 사민주의 정당은 교양 있는 가부장적 남성노동자의 정당이었고, 그들이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에서의 주부의 역할이었을 뿐이다. 이런 오랜 관행에 폭발적으로 저항한 것이 68혁명이었고, 우리는 68혁명때 보여주었던 사민주의자들의 허둥됨을 낱낱이 폭로하는 것으로 그들의 위선을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분업체제와 위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여성의 해방은 보장될 수 없고, 사민주의에 포섭된 여성운동은 잘 보아도 관료로 출세한 여성노동자의 자기해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한때 케인즈주의로 재미를 보았지만 신자유주의의 적극적인 수용자가 된 오늘날의 사민주의자에게 다른 경제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케인즈주의를 통해 복지국가를 이루었다고 사민주의자들이 주장하지만 복지국가내에서 이민자들, 여성들, 청소년, 학생 등 주변부에 있는 민중들의 수탈과 무권리 상태를 방치했다는 점에서 케인즈주의는 산별노조, 사민주의자들에 포함된 사람들의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이다. 이러한 케인즈주의가 파산하자 사민주의자들은 시장주의자들의 공세에 무력하게 대처하다 종국에는 그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결국 제 3의 길을 운운하며 신자유주의의 적극적 수용자가 되었던 그들의 최근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사민주의자들의 역사적 종언은 참담히 증명된다.

사회적 분업과 직접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하의 대의제를 중요시하는 사민주의자들에게 의회-원외정당-노동조합들의 역할은 엄격한 위계와 분업을 전제로 한다. 이런 태도는 자본주의 사회체제 내에서 이루어진 분업을 당연시하고 노동자를 해방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 일반으로 보는 사민주의자들의 기본 입장으로 이어진다. 자기해방의 주체로서 노동자는 사회적 분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위계와 귀천이 있는 자본주의 생산의 분업은 파괴되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은 사민주의자들에게 오래전 잊혀진 구절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분업에 익숙한 사민주의자들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직접민주주의이고, 생산자들의 통제였다는 사실은 역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된다.

산별노조

사민주의자들은 노동조합, 그중에서도 산별노조와의 협력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적절히 통제할 필요성이라는 면에서 산별노조는 사민주의의 입맛에 딱 맞다. 산별노조는 하부조직의 반란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산별노조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사민주의자들은 기꺼이 부패한 노조관료들과 공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중앙교섭이 노동자들의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노동자들에게 확신시켜주지 못하는 한 산별노조는 그들이 행한 악행을 용서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또한 자본주의 번영과 자본가들의 양보를 전제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그림이다. 내수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양보할 의사가 없는 자본가들을 앞에 두고 산별노조에 목을 매고 있는 사민주의자들의 가련한 처지는 남한에서 더욱 돋보인다.

독재체제가 가장 오래 지속된 시기에 산업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성장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70년대 유신때부터 전두환 정권때까지 15년 동안 노동자들은 시골에서 올라와 거대한 조선소로 자동차 공장으로 기계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독재시대의 억압적 분위기하에서 반공이데올로기에 시달렸다. 게다가 시골에서 어르신 들이 숨죽여 이야기하던 동구밖, 밀밭에서 대창으로 찔려 죽은 사람들 이야기, 3.8선을 넘어간 사람들 이야기는 정치란 몹쓸 것이고 무지랭이들이 범접하다가는 목숨 잃기 딱 좋은 짓이라는 생각을 굳게 했다.

선거용 정당이라고 폄하하는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가입하는 일조차 조직적 결의가 없으면 불가능할 만큼 학살당한 빨갱이에 대한 추억은 이땅에서 노동자의 뒷덜미를 잡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다. 진보정당이 겨우 시민권을 획득한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무모한 짓으로 보일만하다. 그러나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길, 배신의 길이 뻔한 길을 경고하지 않는 것은 의인들의 습성이 아니다. 사민주의는 혁명의 적이자, 자본가계급의 불편한 동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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