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민주노동당은 최고위원회 선거를 진행 중이다. 지난 6월22일 당대회에서 통과된 최고위원회 구성 방안에 따라 9명의 최고위원을 선출하며, 이중 과반수득표자는 당 대표가 된다. 유덕상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등 11인이 후보로 출마했고, 이 가운데 강기갑 의원과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표직을 놓고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수호가 누구인가? 민주노총 내 노골적인 노사협조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대변자로서,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내내 노사정위원회 복귀문제로 분란을 일으키고 헛짓을 일삼다가, 결국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으로 임기도 못 채우고 물러난 자이다. 강승규 비리사건은 누구나 알다시피 민주노총의 도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계급대표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사태였다. 그런데도 당시 이수호 위원장은 진퇴를 저울질하는 책임성 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강제로 쫓겨나다시피 사퇴했다.
이러한 이수호 전 위원장의 진저리나는 행각은 지금도 계속되는데, 작년 7월에 임종인 전 민주당 의원, 지금종 전 미래구상 사무총장 등의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새진보연대(준)을 출범시키더니, 이윽고 대선용 선거연합을 민주노동당에 제안한다. 그런데 이처럼 새진보연대를 만들고 선거연합을 제안하는 과정들을 당시 새진보연대 대표였던 이수호는 어처구니없게도 민주노동당 당원 신분인 채로 진행했다. 이후의 이수호 전 위원장의 행보 즉 올해 2월 천영세 비대위의 비대위원으로의 발탁, 혁신재창당준비 위원장 취임, 5월 새진보연대 해산, 현 최고위원회 선거 출마를 살펴보면, 여기까지의 과정들이 허구적인 정치지분을 만들어 팔아먹은 것, 그리고 이수호 개인의 민주노동당 지도부 진입을 위한 수단과 절차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노조관료에서 정치모리배로의 성공적인 변신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자가 대표로 거론되는 민주노동당은 뭐하는 당인가? 더욱이 이수호 혁신재창당준비 위원장이 주도해서 만들어낸 이른바 ‘이수호 혁신안’을 당대회에서 버젓이 통과시키기까지 하고 말이다.
“계급정당을 탈피하여 진보적인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
지난 6월22일 민주노동당은 당대회를 열어 자신의 앞날을 좌우할 4.9총선 평가서와 혁신-재창당안(이하 ‘혁신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총선평가서와 혁신안을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우경화, 자유주의정당화’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자유주의정당으로의 우경화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따라서 혁신안은 관성적인 우경화 경향을 더 강화시킨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총선평가서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다음의 오류가 눈에 띤다. 자신들이 대선에서 왜 참패했고, 이어서 총선에서는 의석수가 왜 반토막 났는지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평가서는 “누적된 당 활동 전반에 대한 대중적 심판”을 말하지만, 지난 당 활동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2005년 재보선 이래로 선거에서 계속 패배해 온 것은 여러 차례 주장했듯이 노동자정치세력화에 실패하여 계급투표를 조직하지 못하고, 민생파탄을 야기한 노무현-열우당 자유주의세력과의 차별화에 실패하여 동반몰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발전과 자유주의세력과의 차별화는 오직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었는데, 민주노동당은 반자본주의 정치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경화하여 스스로 몰락을 재촉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아직까지도 이를 정식화조차 못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패배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당내 주류인 민족주의자들의 시대착오적인 민족민주노선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종파적 이해가 현실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총선평가서의 오류는 혁신안에서도 반복된다. 혁신안을 살펴보면 혁신의 내용, 특히 뚜렷한 이념과 정신이 없다. 정당이란 강령을 핵심으로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정당의 혁신과 재창당 역시 강령적 내용을 핵심으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반성할 지점이 정확하지 않으니까 혁신방향도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그리고 혁신방향의 불분명성은 그대로 혁신안의 진부화로 이어지고 있다. 즉 혁신안은 새롭고 구체적인 내용은 없이 “당원과의 결합 강화”, “전략적 지지층 강화”, “진보적 가치의 확장”, “진보세력의 대단결” 등의 원론적인 목표들을 나열하고 있고, “웹2.0의 정치활동방식”을 개발하겠다는 등의 활동방식을 바꾸겠다는 형식적인 논의에 치우쳐있다. 원론적인 목표를 어떠한 내용을 통해 달성할 것인가와 새로운 형식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은 전혀 없다.
혁신안은 이처럼 뚜렷함과 진지함을 결여하고 있는 대신에, 기존의 우경화 경향을 더욱 노골화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혁신 재창당 3대 방향’ 중 하나로 아예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당이 된다”고 적시하고 있고, 사랑받기 위한 방법으로는 “투쟁정당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책정당, 민생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를 말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 민중을 위해 제대로 투쟁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게다가 작년에는 그렇게 열을 올리던 한미FTA 반대투쟁조차도 촛불정국에서는 대중정서에 영합하느라고 기회주의적으로 방기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정책정당 운운하는 것은 아예 부르주아정당처럼 의원놀음하는 원내정당화 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당”이라는 말이 단지 수사로만 보이지 않고 수상쩍기 짝이 없는 것은, 당대회 자료집에 혁신안과 함께 실린 혁신재창당준비위원회 산하의 국민평가위원회 보고서에 다음의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계급정당을 탈피하여 진보적인 국민정당으로서의 이념지표를 재정립할 것.” 혁신안이 어떤 기조 아래에서 작성된 것임을 짐작케 해준다. 노동자정당적 정체성을 일소하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것, 이것이 혁신안이 웅변하고 있는 바이다.
이수호를 받들고 자유주의정당화에 동참할 것인가?
해방연대(준)의 회원들은 지난 3월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긍정적 역할이 주체적 한계와 오류로 인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탈당이후에도 민주노동당은 더욱 우경화하여, 마침내는 이수호 전 위원장이 당 대표로 거론되고, 계급정당을 탈피하겠다는 혁신안이 통과되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변혁적 활동가를 자처하면서 민주노동당에 남아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는 강령과 당명을 바꿀 일만 남아 있는 사실상의 비-노동자정당인 민주노동당에게 노동자계급이 바랄 수 있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