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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문화 바이러스=예술가도 노동자!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한창 뜨거운 모양이다. 평상시에 쉽게 접하기 힘든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엘리트 예술지상주의자이자 괴팍한 성품의 소유자인 지휘자와, 조금씩은 모자란 오케스트라단원들이 만들어가는 앙상블을 코믹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말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클래식과 교향악을 접해서 즐겁다. 저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신기하다. 이런 저런 감흥들을 전하는 그들의 말 속에는 공통적인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클래식이라는 예술이 우리에게 그리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예술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예술가’ 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라는 이름을 넘어서 예술노동자라고 주장한다.



예술가도 노동자라는 언명은 사실 이제 그리 낯선 선언은 아니다. 그들도 다른 모든 노동자들처럼 탄압받고 노조를 만들고 비정규직의 굴레를 안고 살아간다. 집회현장에서 보이는 세종문화회관과 국립예술단체들의 깃발을 보면서, 또 그들의 연대 공연을 보면서 우리는 어렴풋이 그들도 우리와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깨달아왔다. 그들의 존재가 이제는 별 신기할 것도 없어졌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예술가도 노동자라는 말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명박 정권 초기 여러 가지 이름을 달리하고 있지만 민중의 생존권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 전제들이 계속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의료, 연기금, 가스, 발전, 등등 수많은 공공재들이 자본의 더 많은 이윤축적을 위해 팔려나갈 위기에 처해있다.

문화와 예술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정부는 ‘국가브랜드창출과 예술단체별 기능특화’라는 이름으로 이른바 문화예술계의 사유화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그 실내용을 보면 돈 되는 장르의 예술은 더 팔아먹기 좋게 바꾸고 돈 못 버는 예술은 단체 자체를 없애는 내용이다. 문화와 예술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하지만 정부 정책은 문화를 돈으로만 사고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문화와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드라마에 나오는 악기연주가 신기할 만큼 문화예술이 우리와 먼 곳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그 예술을 만들어가는 당사자인 예술노동자들은 어떠한가? 잘못된 평가제도 아래 단체장의 눈 밖에 나면 바로 재계약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예술 발전에 대한 기여는커녕 생존권을 지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조건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의 불안과 가진자들만을 위한 예술을 해야 하는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예술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예술 생산의 주체인 예술노동자들의 노동권은 그자체로 예술의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예술노동자들에게서 아름다운 예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받는 대우가 나아지고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술정책이 쓰일 때 항상 예술노동자들이 주장해온 문화예술공공성 강화와 민중의 문화향유권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인종, 계급,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누구나 균등한 기회와 조건 속에서 이를 향유할 권리를 지녀야 한다. 이는 문화예술의 공공성 역시 이러한 인간의 평등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뜻이며 의료, 교육, 주거와 같이 예술도 누구나 공평하게 누려야할 기본권이다.

문화와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의 정신적 고양을 이루어내는 매개라고 한다면 문화와 예술은 당연하게도 노동자 민중의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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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노동자 , 문화예술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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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흠 (공공노조 문화예술분과 조직차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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