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관 - 역사의 범죄자 혹은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민주의자들의 역사
2) 학살의 역사 - 독일에서 벌어진 사민주의자들에 의한 노동자 도살
3) 이중대의 역사
4) 식민지 민중의 고혈을 짜는데 빨대를 들이댄 사민주의자들
5) 여성문제
6)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7) 사회적 분업과 직접 민주주의
8) 산별노조
초기 사회주의자,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사민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맑스주의자들은 20세기에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고, 각국이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사실상 유럽 식민주의자들과 정치적으로 대립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오히려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든 식민지 본국의 노동자들의 경제적 번영에 힘을 쏟으면서, 식민지에서 신음하고 있는 제 3세계 민중의 고통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었다.
형식뿐이었던 식민지 반대
1900년 제 2인터내셔널 파리대회는 영국 제국주의가 백인 정착민들이 세운 공화국을 공격한 보어전쟁(지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중에 개최됐는데, 대회에서 보어전쟁을 대회의제에서는 물론이고, 어느 하나 입에 올린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선구자들이 유럽인들의 식민정책을 고발하는 출판물을 쏟아내고 있었고, 맑스주의가 사회주의 정당에서 점점 더 보급되면서, 맑스주의가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해방의 정신이 사회주의자들에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자각은 사회주의정당 내부에서 식민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임과 동시에 식민지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 정당들의 기준을 만들 것을 압박했다. 이런 노력의 성과로 1907년 슈투트가르트대회에서 "그 본성상 예속과 강제노동과 원주민의 절멸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식민정책"을 비난하는 결의문 채택까지 이어졌다.
슈트트가르트 대회에서 채택된 이 결의문은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지만, 이미 각국 정당에서 힘을 얻어가고 있던 개혁주의 세력은 이 결의문에 공공연히 반대했다. 이 결의문을 찬성했던 사회주의자들도 그다지 진지한 자들은 몇 명이 되지 않았다.
제국주의의 떡고물에 손을 대다
1차대전을 불과 십년도 남겨놓지 않은 이 대회를 전후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제국주의 정책의 수혜자들이 되어갔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먹이며 제국주의를 용인했다.
제국주의는 특히 조선소, 항만, 군수산업 등과 식민지무역에 의존하는 여러 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했고, 이는 보기 드문 특수를 조성해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의 유리한 환경을 보장해 주었다. 제국주의자들의 군비경쟁이 결국 인간을 삼킬 것이고, 그 인간은 바로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은 잊혀졌다.
특히 식민지에 상품을 팔고, 값싼 1차 상품이 들어오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중의 착취였지만,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일자리의 창출과 생활비의 절약이라는 일거양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치 대한민국에서 중국과의 교역확대가 일자리의 창출과 값싼 중국제 소비재의 향유를 보장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문제는 식민지의 노동자들이 가혹한 착취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었고, 농민들은 식민지의 지주들과 제국주의자들의 이중수탈에 항거하고 있었지만 이런 사실은 활자에서나 확인되는 것이었고, 구체적인 연대와 행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식민지의 사회주의자와 제국주의 본국의 사회주의자 간에 정치적 연대는 레닌이 주도한 제 3인터내셔날, 코민테른에서나 실현되었다.
이러한 제국주의정책, 식민지의 확대와 수호,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제국주의간의 경쟁격화에 대한 용인은 당연히 제국주의자들의 애국주의 호소가 사민당 지지자들에게까지 확산되는 가교역할을 했다. 전쟁에 임박해 제국주의 전쟁에 찬성표를 던지는 행위가 각국 사회주의 정당에서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레닌을 위시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사이비 사회주의자들과 결정적으로 결별한 것이 바로 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반대여부였다. 식민지수탈의 떡고물을 받아먹는데 익숙했던 이들은 스스로를 목을 치는 칼날의 제조에도 즐거운 맘으로 임했던 것이다.
식민체제 유지의 첨병이 된 사민주의자들
2차대전이 끝나고, 아프리카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서 민족해방투쟁이 전개되어, 식민지 독립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때 영국 노동당의 개혁의 상징이었던 네이베번은 영국제국주의 방어의 선두에 섰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세계최초로 무상의료를 실행했던 네이베번이고, 롤스로이드가 만든 제트엔진을 소련에 선물로 주어 Mig-15기를 만들게 했던 영국노동당이었지만 식민지 문제에서만큼은 대영제국의 충직한 후예였다.
그러나 영국의 바램과 달리 한국전쟁에서 Mig 15기가 파리 잡듯 B-29 폭격기를 격추시킨 것처럼 영국의 식민지는 세계지도에서 차례차례 사라져 갔다. 전후 가장 큰 식민지 문제중의 하나였던 인도의 독립은 관대한 노동당의 작품이 아니라, 단호한 사회주의자였던 네루의 투쟁과 당시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의 용인 하에 이루어졌다. 영국노동당은 유감스럽게도 대영제국의 식민지문제 해결에 공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프랑스 사회당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잇따라 벌어진 후기 식민전쟁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제 2인터내셔날(국제사민주의자조직)의 지도자중의 하나였던 기 몰레(Guy Mollet)는 1956년에서 57년 동안 정부를 이끌며 낫세르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한다고 했을 때 영국군과 함께 이집트를 침공했고, 알제리 반식민지 투쟁에서도 가혹한 대응을 일삼았다.
알랑 드롱과 안소니 퀸이 주연을 했던 "라스페기"라는 영화에서 디엔비에푸(월남전쟁)에서부터 서로를 신뢰하는 전우였던 알랑 들롱과 안소니 퀸이 결정적으로 틀어지는 것이 알제리전쟁에서 프랑스 군대가 벌인 민간인 학살이었다.
사실 영화의 압권은 프랑스 외인부대가 헬기에 적십자 마크를 달고, 신사적인 알제리 반군이 의료헬기인 줄 알고 사격을 안 하자, 하강해 기관총으로 알제리 반군을 전멸시키는 장면이지만...
그 학살에서 살아남아 프랑스로 이민을 온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이었던 지네딘 지단이 프랑스를 월드컵에서 우승시키자, 지단의 사진이 개선문 기둥에 프로젝트로 비추어졌다. 아마 21세기 최고의 기만적인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베트남에 발목이 잡힌 사민당
신좌파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있어, 68혁명 당시 구좌파가 상징하는 무능과 무원칙은 베트남 간섭전쟁에 미국에 동조한 사민주의자들에게서 가장 추악하게 드러났다. 신좌파가 드러내는 방종과 무질서는 스탈린주의적 위계에 의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공산당보다는 널널한 양복쟁이들이 다수였던 사민당에 훨씬 친화력이 있었지만, 신좌파는 월남전에 협조적이었던 사민당에 훨씬 큰 적개심을 드러냈다.
사민주의 집권정당 중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영국 등이 직접 군대를 보냈고, 이름이라도 걸어놓은 나라는 그보다 더 많았다. 미친좌파는 전후의 질서에 대해 회의를 보냈지만, 그 회의는 바로 미국의 냉전전략의 하위파트너였던 각국의 사민당 정부에 바로 화살이 되었다.
아! 팔메
그러나 모든 사민주의자가 미제국주의의 푸들견이 된 것은 아니다. 스웨덴 사민당의 울로프 팔메는 69년부터 86년까지 스웨덴 총리를 지냈지만, 그는 이미 교육부 장관 시절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에 항의하는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 사람으로서, 79년에는 니카라구아의 산디니스타 반군에게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던 200만불의 군비를 제 2인터내셔날 이름으로 지원하게끔 한 사람이었다.
베트남이 통일되자 가장 먼저 국교수립을 한 나라도 스웨덴이었다. 그는 영화관에서 아마데우스를 보고 나오다가 괴한의 총탄에 쓰러졌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기에 경호원들을 가족과 쉬게 하고자 대동하지 않고 일반인과 똑같이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던 수상이 암살당한 것이다.
배후는 여러 설이 있지만 뻔할 뻔자로 CIA의 소행일 것이다. 운명은 사민주의 정당에 몸담기에는 너무 큰 이상과 고매한 인격을 가진 팔메 수상을 지상에 더 이상 머물게 할 수 없었나 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나듯
아제국주의로 발전하고 있는 남한에서도 사민주의자들의 태도는 제국주의자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시아의 호혜협력 지역블럭 경제체제를 거론했던 심상정 민주노동당 대선후보의 주장은 사실상 제국주의자들의 시장블럭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발상이다. 중국의 저임금 시장에 대한 배타적 이해권을 주장하는 이런 주장이야말로 식민지 문제에 무관심하고 무능했던 역사속의 사민주의를 그대로 한국에 판박이로 가져오는 주장이다.
국제연대에 더욱 역량을 쏟고 아제국주의 노동자로서 책임감을 더욱 높여내는 활동이야말로 천박한 사민주의자들의 대오에 노동자계급을 헌납하지 않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본국에서 벌어지는 투쟁과 연대하는 것이다. 자명한 사실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사회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