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 신청을 받은 것도 모자라, 일부러 때라도 맞춰 농성장에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듯 위험한 공사가 바로 앞에서 진행되고 있었고, 농성천막 근처에 가는 것만으로도 병원이 악랄한 감시를 해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힘내라며 한 통씩 보내던 문자도 끊긴 상태였다.
발언대에 선 노동자는 지금도 사측이 감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며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미안함이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얼마나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려야 하는지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는 것, 정규직 노동자가 사측의 교묘한 통제와 감시를 무릅쓰고 나와 발언대에 설 정도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한 현실 자체가 절박하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표현된 자리였다.
2002년 파업이 패배한 이후, 강남성모병원은 정규직이었던 간호조무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였다. 2006년 10월부터는 그나마 직접고용이던 것이 간접고용으로 바뀌어 간호조무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파견노동자가 되었다.
그리고 2년 뒤, 비정규법에 따라 28명의 간호조무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2008년 10월 1일은 그/녀들이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첫 날이 되지 못했다. 이 날은 9월 30일부로 해고노동자가 된 이들이 병원 로비로 들어와 농성을 시작하는 첫 날이 되었다.
뻔한 이야기이다. 뻔하다고 느낄 정도로 자주 반복되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자주 반복되는 일이라면 으레 상식이라고 여겨질 법도 한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런 식으로 쫓겨나는 일은 반복이 될수록 오히려 점점 더 이 사회가 상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어차피 인간이 인간으로 취급받기조차 어려운 자본주의 사회는 제정신 차리고 살기 힘든 거라고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헌신짝처럼 내다버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겨나는 이런 때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앓아눕지 않고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물론 앓아누워선 안 된다.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을 며칠 다녀보니 알겠다. 매일 투쟁문화제 후 조합원들과 모여 간담회를 하다보면 다른 병원에서 온 병원노동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서울대병원은 단 한 사람이 고용된 업무 부분이라도 비정규직화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정규직 노동자들이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서 비정규직을 늘리려하는 사측의 순진한 속셈을 보고, 이를 단호하게 막아내고 있다고 한다.
이름이 21세기병원으로 바뀐 안산한도병원도 512일의 길고 긴 투쟁 끝에 결국 정규직화를 쟁취해냈다고 전하며,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에게 꼭 투쟁에 승리해야 한다는 의지를 주었다.
투쟁 승리도 투쟁 승리지만, 어느 병원이고 가릴 것 없이 이렇게 비정규직 부분 혹은 비정규직화를 앞두고 있는 부분이 많다니, 아픈 사람들이 어디 무서워서 병원 한 번 제대로 갈 수 있을까?
강남성모병원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했던 업무는 실제로 환자의 치료나 간호에 필요한 물품, 병실 등을 준비하고 진료 보조를 하는 간호조무업무였다. 파견업체와 계약할 때 ‘간병인’이라고 적긴 했지만, 현재 파견법 상 간호조무는 파견이 불가능하고 간병인은 상시 파견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뿐이다.
간병인 업무도 마찬가지겠지만 간호조무업무에서의 실수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17일 간담회에서 고려대병원의 한 정규직 간호사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숙련도 및 팀워크가 환자의 생명과 일의 능률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했다.
그런데 강남성모병원은 비용 절감을 한답시고 이번에 해고된 28명의 간호조무사 자리를 병원 식당에서 일하며 정년을 앞두고 있던 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웠고 식당 업무는 외주화했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간호조무 일을 했던 사람들을 비용절감이라는 이유 하나에 매달려 겨우 몇 주 훈련받은 사람들로 갈아치우는 건,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병원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가?
안 그래도 강남성모병원을 비롯한 다른 병원들에서는 새 병원을 지으면서 추가고용이나 고용보장에 대해 정확한 언질을 주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근무를 강요하면서 진을 빼내는 게 일상다반사이다.
심한 경우 간호조무사 1명이 침대 100개를 맡아 관절이 무너지도록 일한다고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마음 편히 업무를 볼 수 있나? 병원은 안정된 자리를 가진 숙련된 노동자들로부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이윤 때문에 제 본래 역할보다 노동자들 피 말리는데 관심 있는 인간들이 쥐락펴락하는 정글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쳐나는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생활 영역 전반이 게토화되고 있다는 건 눈을 뜨기만 해도 알 수 있다. 현재 투쟁하고 있는 강남성모병원 노동자들은 다른 병원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걸 두 달이 되어가는 투쟁 속에서 알려내고 있다.
이들을 지지하는 병원 내 환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정규직은 이미 이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증오하는 악질 질병이기 때문이다. 이 병에 당해 앓아 누워버리면 안 된다.
병원 자본은 우리의 삶을 치료하는데 관심 한 뼘 없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당연한 요구를 외치며 강남성모병원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