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시대의 유일한 희망이 노동조합이라는데,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는 GM대우에서 우리는 무척 과묵한 노동조합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GM대우 정규직 노조는 말씀이 없으시다. 올해 파업까지 했다는 현 집행부는 회사가 망하기 직전인데도 꿀먹은 벙어리다.
오죽하면 GM대우 사태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논평 한마디조차 회피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을 들쑤시다가 결국 비정규직 지회에 와서 취재를 해갈 정도이겠는가?
지금 노동자들은 해고의 공포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말이 휴업이지, 정리해고와 라인폐쇄가 눈앞에 닥친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의 희망이 되어야하고 투쟁의 구심이 되어야 할 노동조합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임시휴업이 다음 사태를 예고하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전선을 치고 내부단결과 투쟁력을 높여가야 하는데, 노동조합은 말 그대로 무저항,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휴업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책을 설명하는 간담회도, 그리고 조합원 교육도 전무하다. 내년 1월 5일 조업이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뿔뿔이 흩어진 조합원에 대한 최소한의 끈도 확보하려는 노력이 없다.
만약 휴업이 장기화되고, 정리해고가 현실화되었을 때, 조합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조직하고, 무엇을 요구할 지에 대한 어떤 방책이 있는 지 아무도 알 수도 없고, 논의조차 일어나고 있지 못하다.
지금은 2001년 사태와는 본질이 다르다
세계화가 개도국으로 펴져 들고 이 나라들이 주제넘게 국제금융에 손을 대고, 시장을 개방했다가 97,98년 개도국들의 위기가 왔다면 지금의 위기는 미국을 포함한 전면적인 위기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물건을 사줄 곳이 없어 이 위기가 단기에 극복될 가능성은 없다.
고용유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대책은 단결과 사고의 전환이다
지금 일부에서 진행되는 GM경영진에 대한 질타와 경영개선요구로 거덜 난 회사가 살아날 수도 없을뿐더러, GM의 판매망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업구조로는 GM본사의 위기와 함께 GM대우도 공멸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출구가 없다.
그러면 남는 방법은 전공장의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를 내서 고용유지를 누군가에게 요구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였던 미국조차 시장의 위기를 맞아 등장한 거인은 연방정부가 유일하다.
GM대우 노동자를 비롯해 하청노동자, 부품계열사 노동자들의 생존을 유지하는 길은 노동자들의 고용을, 혹은 임금을 고용보험기금이나, 연금이나, 정부재정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대책도 없는 주가 유지를 위해 수십조를 퍼부은 연금공단이나, 노동부가 돈을 제대로 쓰도록 압박해야 한다.
GM대우는 이럭저럭 인천경제의 25%를 차지한다.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키는 길이 위기에 빠진 지역경제를 안정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이라도 노동조합은 전공장의 노동자와 함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투쟁의 주체를 전공장으로 확대해야 한다. 공장의 계급대표성을 온전히 갖추는 전공장의 대표기구를 구성하고, 그 대표기구가 위기에 빠진 GM대우의 경영주체로 나서, 정부와 맞대응하는 길만이 현재의 고용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이다.
능력 없는 경영진을 몰아내고 고용보장의 주체로 노동조합이 나서는 길은 단결과 사고의 전환이다. 만약 이 길을 외면한다면 새로운 노동자들의 주체가 나설 수밖에 없다. GM대우의 생존도 위기이지만 노동조합도 생존의 위기에 놓여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