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는 2004년 상하이자동차로 매각됐고, 2009년 상하이차는 먹고 튀었다. 먹튀란 말이 새삼 등장하고, 한국경제는 주요한 기술경쟁력을 유출당했고, 사람들은 분개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시장원리다.
시장원리란 간단하다. 상품생산의 목표는 이윤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은 이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려고 한다. 그리고 후발국은 선진국이 포기하는 산업을 치고 들어가 어쨌든 순위를 바꾸려 기를 쓴다. 이를 흔히 시장의 역동성이라 부른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는 바로 이 시장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예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력을 가진 국가의 유휴, 혹은 과잉 생산설비를 차지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은 욕심에 투자를 하는 것이 경쟁이 조장하는 현상 중의 하나이다.
한국도 반도체, LCD시장을 그렇게 넘보았고, 한때 대우는 프랑스의 알스톰을 넘보았고, 소니, 미쓰비시는 미국의 영화사들을 꿀꺽했던 것이다. 그러니 시장원리란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시장의 원리란 인간이 가진 이성에 입각한 합리적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에 충실해져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이윤을 낳을 수 있다면 성도 매매가 되고, 난자도 정자도 매매가 되는 것이다.
5,000억이면 모두가 행복해지는데
쌍용차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하면 이번 쌍용차 사태로 영향을 받는 식구가 5만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5만명이 1년 동안 먹고 사는데, 연간 2,000만원씩을 제공한다면 들어가는 돈이 고작 1조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고용보험을 들어왔으니, 이를 활용한다면 5천억 정도로 줄어든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회생을 위해 마련했다는 중소기업 지원자금 15조에다가 복지예산 74조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이렇게 지원을 해서 50만명이 혜택을 입는다면 5조가 되고, 500만명이 혜택을 입으면 50조가 된다. 올 총예산이 280조가 넘으니, 이 정도는 감당할 정도의 돈이다.
그런데 왜 이런 간단한 계산이 통하질 않을까? 그놈의 시장원리 때문이다. 시장원리를 거스르지 않고는 노동자에게 미래는 없다. 그리고 실제 역사도 그것을 증명한다. 1948년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처음으로 무상의료를 일군 영국의 노동자들은 의사들의 시장원리를 무찌르고, 의료서비스는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복지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임금을 보전하는(지원하는)제도가 정착되면서, 그래도 몇몇 나라에서는 살기가 팍팍해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도 크게 보면 시장원리를 유지하려는 몸부림의 결과였지만.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길 말고 살길이 없다
채권단이 자기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상하이차에 매각하고, 상하이차가 공황에 이르러 경영권을 포기한 것도 모두가 시장원리에 충실한 행위다. 그 결과 중간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언제나 노동자다.
노동자의 선택은 이 시장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당장 절박한 내 삶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들도 이 시장원리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들이 전부다.
노동자의 임금은 물건을 팔아서 그 돈으로 주는 것이라는 시장원리를 적용하면, 쌍용차 노동자들은 월급을 받으면 안 된다. 협력업체도 마찬가지다. 자동차가 안 팔리니까 줄 돈이 없다고 사업주가 버티면 노동부에 찾아가도 받는 돈이 푼돈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그리고 상식은, 노동자는, 국민은 어쨌든 생존해야 한다. 나라가 책임지고 먹여살려야 한다. 지금까지 세금은 누가 내주었고, 징집영장에 훈련통지서까지 부름이 있으면 나가준 사람이 누구였으며, 앞으로 누가 될 것인데, 나라가 국민의 삶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복지예산이 70조가 넘는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요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너희들이 책임지고 먹여 살려라! 쌍용차는 국유화가 되고, 노동자는 나라가 먹여 살리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또다시 그 참혹한 시절을 보낼 수 없다
법정관리에 이른 쌍용차 노동자들은 비상한 상황에 맞서 비상한 사고와 비상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의 위기에 자본에게 역으로 난타당하고, 짓밟힐 수 있다. 당장 나오는 이야기가 구제를 받으려면 구조조정을 받아들어야 한다는 언론들의 책임전가다. 2,000명 자르면 회사가 구제될 수 있고 회생될 수 있다고 떠든다.
그러면 중국처럼 입질을 슬슬하고 있는 러시아 정도가 인수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잘 나갔던 때 인수한 상하이차 시절에도 1,000명이 넘는 사람이 나갔다.
노동자는 해고될 수 없다. 세상을 망친 자본의 소유권, 경영권,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를 기회로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꾼의 이해를 위해서 노동자가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의 자동차 노동자들도 공장을 점거하고 위력시위를 벌이지 않았는가? 더한 일을 해서라도 내 직장을, 내 가족의 삶을 지켜야 한다. 일자리가 마구 줄어들고 있는 이 때 나가면 먹고 살 방법이 사실상 막혀 있다.
쌍용차와 노동자들의 운명의 주체가 될 공장위원회 건설운동에 즉각 착수하자
비정규직노동자, 정규직노동자, 사무직 할 것 없이 한 공장, 직장에 일하는 노동자가 단 한명도 해고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조직은 한 공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존을 전적으로 책임지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내야 하고, 공장의 주인으로서 스스로를 드러낼 그런 조직이어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공장위원회를 건설하자. 이 공장위원회는 우리의 일자리를 지킴과 더불어 이를 확고히 보장받기 위해 사람 잡는 기존의 생산방식, 기존의 유통방식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고, 노동자가 공장, 직장의 경영과 민주적 통제의 주체로 나서게 할 것이다.
시장의 원리를 거스르고, 새로운 사회의 운영원리, 사회가 노동자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주의를 향한 첫걸음이 될 공장위원회 건설을 다시금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