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은 몇 해 동안 논의돼왔던 ‘4대 사회보험의 징수업무를 통합해 국세청 산하에 신설하는 통합징수공단으로 이관하는 안’을 폐기하고, 대신 ‘통합징수업무를 건강보험공단에게 위탁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 23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법안소위에서 징수통합의 내용을 담고 있는 국민연금법·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4월 임시국회에서의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3개 공단노조가 노사정 합의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이명박 정권의 징수통합안의 핵심을 그대로 수용한 합의안에 대해서 찬반투표를 하는 것이다. 한편 사회연대연금지부는 이미 2월 25일에 법안 통과를 반대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4개 공단노조 중 연금지부가 먼저 징수통합 반대의사를 확고히 밝힌 셈이다.
연금지부는 투쟁 결의문에서 징수통합은 “공적연금 제도와 조직의 근간을 흔들” 것이며, “졸속에 졸속을 금치 못 해 한나라당 내에서도 반대했던 법안을 아무 생각 없이 멋대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징수통합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노리는 것은?
4대 사회보험의 징수업무 통합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징수통합이 사회보험 일원화를 위한 정지작업으로서 고려되면서, 2005년에 국무회의에서 ‘사회보험 적용·징수 일원화 방안’이 의결되고 난 이후부터이다. 사회보험 통합은 일찍이 김대중 정부에 의해 1998년부터 추진돼왔었는데, 진행이 지지부진하다가 징수통합이 먼저 고려된 것이다.
현재 건강, 연금, 고용, 산재 등 4대 사회보험은 모두 사회안전망 확충에 있어 필수적이지만, 그 가입률은 저마다 달라 어떤 이는 건강보험만 가입했거나 하는 등의 필수적인 사회적 보호로부터의 사각지대가 넓게 존재하고 있다. (어느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절대적 사각지대는 물론 더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보험을 통합함으로써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필수적인 사회보험들을 일괄적으로 제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보험 통합은 원칙적으로 옳은 것이다.
그런데 사회보험 통합이 정말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한다는 의미를 가지려면 실제로 적용대상이 광범해져야 한다. 그리고 사회보험 적용 확대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지원의 대폭적인 확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복지예산 확충을 담보하지 않은 사회보험 통합은, 보험료 통합으로 사업자 및 개인의 부담을 늘림으로써 오히려 사각지대를 더 키우게 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사회안전망을 확충한다는 개념을 아예 상실한 정권이다. 사회보험 통합을 복지확대의 계기로써 추진할 리 없다. 따라서 현재의 징수통합 시도는 원칙적인 통합과정이 아닌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징수통합을 시도하는 이유로 두 가지가 짐작된다. 첫째는 3개 공단의 중복업무를 통합시킴으로써 인력을 감축한다는 의도이다. 징수통합이 아니더라도 3개 공단은 ‘공기업선진화 방안’에 의해 구조조정에 이미 노출된 상황인데 엎친데 덮친격이 됐다.
그리고 둘째는 징수창구를 일원화함으로써 앞으로 자연스럽게 보험기금 관리도 일원화한다는 의도이다. 기금관리 일원화는 국민 혈세로 하는 펀드조성과 투기적 운용을 애호하는 이명박 정권에게 무척 매력적일 것이다. 거대한 자금을 집중시켜 대규모 투기자본으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에 상임위에서 통과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연기금운용에 가입자대표를 배제하고 소위 전문가에게 맡겨 완전히 투기자본으로 전락시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는데, 징수통합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의도가 짐작되는 부분이다.
지금 싸우지 않는다면 언제 싸울 것인가?
징수통합은 공단 구조조정과 사회보험기금의 전면적인 투기자본화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도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4대보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반대투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부결은 그 첫걸음이다. 뻔히 예상되는 구조조정에 맞서 지금 싸우지 않는다면 언제 싸울 것인가? 4개 노조가 단결하여 투쟁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징수통합 반대투쟁은 구조조정 반대라는 수세적 요구에 머물 것이 아니라 공세적이고 보편적인 요구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벌써 상당히 진행된 사회보험기금의 투기적 운용에 반대하는 민주적 통제를 내걸어야 할 것이고, 나아가 4대 보험의 적용 확대 및 일괄 적용과 이를 위한 정부지원확대, 복지재원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보편성을 잃은 노동운동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경제위기 때라서 요구의 수준을 낮출 것이 아니라 자본과 국가가 노동자 민중에게 위기를 전가하는 것에 맞서는 보편적 요구를 통해 스스로 대중투쟁의 구심이 돼야 한다. 이것이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동력을 일깨워 투쟁의 크기와 강도를 늘릴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