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집회에서 표면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비정규직 및 영세중소기업 노동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대와 민중생존권과 관련된 사회보장 확장 투쟁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으로 이전과 비교해도 별로 새롭지 않은 선언들이다.
그러나 이 선언이 내포하고 있는 현실인식과 추진방식은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이 강조해 온 노동자계급의 ‘연대’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운동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사실 사회연대노총의 내용은 06년 말 민주노동당 내에서 처음 제기된 ‘사회연대전략’에 기반 한다. 당시 권영길 의원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연대’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는데, 국민연금과 관련하여 대공장 노동자들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내어 저소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금을 확보한다는 것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후 진보신당, 전진 등에 의해 주장되어 오다가, 임성규 위원장 선출과 함께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왜곡된 현실인식
임성규 위원장이 최근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보면, 사회연대노총을 주장하는 기본인식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임성규 위원장은 민주노조운동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들의 운동’인데 지금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우리 밥 몇 술 덜어야 민주노총에 희망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임성규 위원장은 더 나아가 ‘민주노총이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도 사회적 압력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사회연대전략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직접임금 요구를 줄이거나 적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직접임금의 일부를 사회적 간접임금으로 전환하여 기업의 직접 지불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도무지 이러한 현실인식이 과연 민주노총 위원장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의심스럽다. 정권과 보수언론들이 주구장창 민주노총을 공격하던 귀족노조 이데올로기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근거와 정당성이 자본에 대한 자주성과 계급적 요구를 위한 투쟁 여부가 아니라, ‘임금수준’에 따른 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에 의해 판단되었는가!
왜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의 착취에 맞서는, 정당한 노동력의 대가를 얻어내기 위한 임금인상 투쟁이 사회적 임금확대라는 것과 상충되어야 하는가!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비정규직 착취구조가 정규직 노동자 밥 몇 술 덜어주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문제의 핵심을 요리조리 피해나가다 보니,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자조직의 조합원들에 대해 어떻게 재조직화할 것인가 고민하기보다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기를 노골적으로 기원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연대전략 논리의 핵심인 주체형성 문제
사회연대전략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 대립의 핵심지점이 아니라 변죽만 두드리고 있는 것은 패배주의적인 주체형성 논리에 기인한다. 사회연대전략의 핵심논리인 주체형성과정을 보면, ‘계급 내 응집력을 복원하고 계급 간 전선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조직노동자의 연대와 실천이 필요하고,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은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고 계급대표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계급 내 응집력을 복원하고 민주노조운동이 계급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 고작 조직노동자들이 밥 몇 술 덜어 공감을 얻겠다는 것이니 한심한 수준이다. 계급대표성과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민주노총 사업장 곳곳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반 노동자적 행위와 관료주의, 노사협조주의를 묵인하고 인정해주면서 이러한 경향들이 독버섯처럼 번져 나가면서부터이다.
실례로, 얼마 전, 금속노조 GM대우차지부가 정규직의 고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전환배치에 합의하였고 비정규직 900여명이 일자리를 잃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민주노총은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눈치를 보며 어떠한 비판도 제지도 가하지 않았다.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고용유지를 위해 비정규직을 희생시키는 민주노총 사업장을 보고 있는 어떠한 비정규직, 사회적 약자가 민주노총에게 계급대표성을 부여하겠는가? 밥 몇 술이 아니라 몇 공기를 퍼다 줘도 신뢰가 생기겠는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부터 다시 바로 세우는 것부터
계급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환부를 직접 손봐야 한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총의 상태로는 임금 몇 푼 양보하는 것으로 대정부교섭과 총자본을 상대로, 사회연대노총이 바라는 사회적 임금 확대를 얻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권리를 증진시키기 바란다면 당장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사업부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저임금 상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소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쟁취하고 ‘비정규직 철폐’로까지 나설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훨씬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여 투쟁에 나서면 다 해고되고 수년간 장기투쟁을 이어나가는 현실을 방치하면서,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노조가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희생시키는 현실을 보여주면서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노총의 혁신과 계급대표성 복원은 뭔가 새로운 전략에서 찾아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가지고 있던 계급적 연대와 실천투쟁에서부터 바로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