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화론을 확고한 유물론의 입장에서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가 출간되어 유물론의 입장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전투적 유물론자로서 스티븐 제이 굴드
레닌은 1922년 3월 12일에 쓴 「전투적 유물론의 중요성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소위 교육받은 사회의 철학적 반동과 철학적 편견들과 싸운다는 공동행동을 위해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일관된 전투적인 유물론의 지지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성직자주의에 대한 교양 있는 아첨꾼들을 굽힘없이 폭로하고 고발하는 “전투적” 유물론과 전투적 무신론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대중적 과학자로, 진화론과 유물론의 전투적 옹호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1973년부터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하버드 대학의 지질학과 정교수로 있었다. 미국 명문대 중의 명문대인 하버드의 생물학 분야에 스티븐 제이 굴드나 리처드 레빈스, 리처드 르윈틴 등의 좌파 학자들이 터를 잡고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굴드는 다작을 한 대중적 과학저술가로서 미국의 유명한 애니매이션 ‘심슨가족’에도 등장할 정도의 대중성을 누렸으며, 1980년대 초 공립학교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등하게 가르칠 것인지를 둘러싸고 아칸소 주에서 진행된 재판에서 창조론을 공격하는 증인으로 당당하게 나섰던 사회참여적 과학자였다.
그렇다고 굴드가 과학적 업적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굴드는 1970년대 이후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단속평행설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단속평행설은 변이가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종이 변화한다는 진화이론에 이견을 제시하고, 생물종이 오랜 시간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갑자기 짧은 시간에 획기적 변화가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 대중성을 실감하게 할 정도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글을 쓰지만, 이 글들은 번득이는 재치와 아이디어로 넘치고 있다. 다행히 그의 책들이 많이 번역, 소개되고 있는데, 굴드의 재치있고 탁월한 해설은 진화론에 대해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에 대한 굴드의 새로운 해석
그러나 굴드는 다윈이 스스로가 생각해낸 “변이를 수반한 유전”, “자연선택”의 이론들이 기반을 두고 있는 철학적 토대가 당시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단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다윈은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필연적으로 유물론의 입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다윈의 개인 노트 중 M노트, N노트는 1838년, 1839년 작성된 것인데, 여기에는 다윈의 유물론적 입장이 게재되어 있다.
“아! 너, 유물론자여, 신에 대한 사랑은 생물조직에서 비롯하나니! … 두뇌의 분비물인 사상이 물질의 성질인 중력보다 더 경이로워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우리의 오만, 우리의 자기 찬양에 지나지 않는다.”
다윈의 진화론이 기반을 두고 있는 유물론적 철학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생물들은 서로 다르고(vary), 이러한 변이(variation)는 (적어도 그 일부는) 자손들에게로 유전된다.
2) 생물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는다.
3) 평균적으로 환경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가장 강하게 변화한 자손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릴 수 있다. 따라서 환경이 선호하는 변이가 자연 선택을 통해서 각 개체군(population)에 축적된다.”
굴드는 다윈의 진화론이 많이 확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다윈의 핵심이론인 자연선택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굴드에 따르면 다윈의 이론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은 과학적인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윈의 메시지가 품은 철학이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다윈이 말하는 이 철학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다윈은 진화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둘째로 다윈은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고 했다. 셋째, 다윈은 유물론 철학을 자연 해석에 일관되게 적용했다. 물질은 모든 존재의 기초이며 정신과 영혼, 그리고 신까지도 복잡한 신경 회로의 경이로운 성과를 표현하는 낱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혁명적 성격을 재빨리 이해했던 맑스와 엥겔스
굴드의 『다윈 이후』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반응에 대해서도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다윈 이후』의 내용에 따르면, 맑스와 엥겔스는 다윈의 업적의 중요성을 재빨리 인식하였으며 『종의 기원』에 대해 맑스는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남겼다.
“비록 조잡한 영국식 문체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이 책은 우리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박물학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맑스는 그의 자본론 제 2권을 다윈에게 헌정하겠다는 제의를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맑스는 라살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처음으로 ‘우주목적론’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고 그 합리적인 의미가 경험론적으로 밝혀진 곳은 바로 이 책에서입니다”라고 하였다.
맑스의 다윈에 대한 비판은 멜서스주의의 교의로부터 이론의 영감을 받아 멜서스의 사회적 위신을 높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진화론은 유물론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맑스주의자들 사이에는 유물론에 대해서 잘못된 사고가 있다. 특히 20세기 이후 서구 맑스주의의 경우, 맑스주의 이론을 사회과학에만 적용되는 이론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게 존재하였다. 이는 자연변증법을 쓴 엥겔스를 맑스에 대한 왜곡, 이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는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에서 패리 앤더슨이 적절하게 지적한 바 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가장 놀랄 만한 한 가지 특징은 유럽 관념론의 여러 가지 유형이 잇달아 그 전통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끊임없이 그 속에 스며들어 갔다는 점이다. …… 자연과학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이런 태도는 이전의 모든 마르크스주의 문헌에서는 전연 찾아볼 수 없었던 매우 생소한 것이었다) 대체로 독일의 물활론(생의 철학)과 딜타이에 의해 고취된 것이었다.”
“사실상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엥겔스의 철학적 유산에 대한 단호한 이중적 부정 즉 코르쉬의 『마르크스주의와 철학』, 그리고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나타난 비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후에 엥겔스의 후기 저작에 대한 혐오감은 싸르트르에서 꼴레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알뛰세에서 마르쿠제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마르크스주의 내의 모든 사조에 걸쳐 공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엥겔스의 업적이 논의에서 배제되어 버리자 마르크스 자신이 남긴 저작의 한계가 이전보다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할 필요성이 매우 절실해졌다. 이 목적을 위해 유럽사상권 내에 있는 마르크스 이전의 철학적 권위를 등에 업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이론이 마르크스 이전으로 후퇴한 것이었다.”
유물론에 대한 잘못된 사고는 유물론 자체가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나온 자연철학이었다는 점, 데모크리투스, 에피쿠로스 등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유물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다. 실제로 맑스의 박사학위 논문은 그리스 자연철학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맑스는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의 책을 즐겨 읽었다. 맑스나 엥겔스는 자신의 이론적 공로는 유물론적 “역사파악”에 있다고 하였다. 즉 유물론을 자연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인간사회에까지 적용하였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방법론이자 세계관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연, 생명의 역사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유물론이 일면적으로만 이해되고 적용되는 경향에서 벗어나, 유물론을 보다 다면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는 이러한 이해를 위한 디딤돌로써 충분히 역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