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전 총리였던 고이즈미가 시행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이후 일본인들의 삶의 질은 후퇴했고 격차는 확대되었으며, 작년에 몰아친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실업난은 일본사회를 공포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여당은 무능했고 부패했으며 경기는 후퇴일로에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야당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동안 자민당 정권은 일본사회에서 철옹성이었다. 그런 철옹성이 무너졌다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고 세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드러난 일본 진보진영의 약점
지난 몇 년간 일본사회를 지칭하는 말은 격차사회였다. 그동안 나라는 잘살아도 국민들은 적당히 골고루 헐벗었던 일본에서 소위 노동유연성 확대(비정규직 확대)라는 세계화 바람으로 빈부격차가 확대되었다. 비정규직으로 몰린 수많은 젊은이들은 절망감과 박탈감을 ‘묻지마 살인’으로 표출했고, 비슷한 사건들의 연발로 일본인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작년 금융공황 이후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자, 일본사회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우리와 달리 이미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던 좌파정당들, 특히 공산당의 당세와 인기도 같이 올라갔다.
▲ 일본 격차사회를 상징하는 노숙자촌 |
동경 한복판에는 노숙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파견 노동자들이 서로 모여 사는 ‘파견마을’을 만들었고, 도쿄시에 파견마을을 지원하라는 청원까지 올리며 기세를 올렸던 공산당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공산당뿐만 아니라 다른 좌파정당들의 당원도 늘었고, 기관지 구독층도 수직 상승했다.
그러나 좌파정당들의 진출은 거기까지였다. 일본 진보진영의 약점이 또 다시 드러났다. 각론에서 대단히 성실하고 집요하지만 거대 담론을 만드는데 무능한 그들은 또 다시 주도권을 소부르주아 정당에게 빼앗겼다.
비정규직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는 선점했지만, 이를 반자본주의 투쟁 혹은 새로운 사회운영원리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좌파는 프랑스에서 보여준 좌파들의 박력, 즉 반자본주의를 주창하고 파업을 이끌어내는 단호함과 무모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일본 민주당의 성공비결
반면에 일본 민주당은 보수우파에서 사회당 이탈파까지 포괄한 정당이었지만 신자유주의가 유린한 일본사회의 정서를 반영해 정치적 중심을 조금은 왼쪽으로 옮겼고, 총선을 맞이해서는 일본사회의 문제에 대해 비록 자유주의적 언어이지만 대단히 정직하게 답변했다.
특히 성공적이었던 것은 이번 총선으로 수상이 된 하토야마가 격차사회를 초래하는 시장지상주의에 대당하는 개념으로 내놓은 ‘우애정치’라는 슬로건이었다. 하토야마는 ‘우애’라는 단어를 일본사회의 운영원리 및 세계질서의 한 원리로 격상시켰다. 즉 미국의 단일패권에 대항하는 새로운 동북아질서의 원칙으로 우애외교라는 말도 내놓았다.
▲ 총선에서 승리한 하토야마 |
더욱이 우애정치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맞게 구체적인 정책에서 진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파견근로 금지법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동안 정책입안과정에서부터 대기업의 집요한 견제를 뚫고 이루어낸 성과이다. 토건족의 주머니였던 건설관련 예산도 아울러 축소시켰다.
하토야마는 우애가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에서 박애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함께 평등을 유독 강조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폐해를 극복하는 개념으로 우애가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칠레의 네루다와 사이가 참 안 좋았던 멕시코 시인 옥타비아 빠스의 그것과 흡사하다. 스탈린주의와 파시즘에 대항해 싸웠던 빠스는 자신의 사상적 대안으로 프랑스 혁명의 구호였던 박애, 혹은 형제애라는 말에 매달렸다.
이제 지구 반바퀴를 돌아 거의 40년이 지난 후에 일본에서 빠스의 후계자가 등장한 것이다. 사상은 조야하지만 진정성만큼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토야마 정권의 미래에 대해 진보진영의 관찰자들은 한결같이 비관적이다. 하토야마 스스로가 세습의원으로서 일본 정치의 관행을 넘어 설 수 없으며, 민주당의 실제 대주주인 오자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등 비관일색이다. 자유주의 정권이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에서 성공적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당 승리에서 얻는 교훈이 축소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세계화의 광풍에 고급노예라고 빈정거림을 받던 일본 유권자가 움직였다는 것이고, 그 움직임의 뿌리에는 작동 자체가 악몽이었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이념인 ‘우애’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반자본주의를 천명한 정치지도자가 4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조차 반자본주의 이후에 대해 명확하고 선명하게 이야기하는 좌파는 없다. 반면 일본에서는 비록 자유주의자들의 한 분파이기는 하나, 민주당이 "우애"라는 새로운 운영원리를 들고 나왔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기회주의, 뻔뻔, 소심...
국내에서 일본총선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약삭빠른 족속들은 자신들이 주창했던 신자유주의에 대해 배신을 때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정동영이 대표적이다. 정동영은 2007년 대선후보 출마의 변에서 “저 정동영은 경제운용에 있어 제3, 제4의 길을 애써 찾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의 실험과 시행착오는 국민에게 고통을 줄 뿐입니다. 세계화, 시장경제, 자본주의는 거부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주도적으로 대처할 우리의 냉엄한 현실입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증명한 정통적, 보편적 경제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정도이며 정통경제에 이르는 길입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수용을 소리 높여 외치더니, 일본 민주당 승리를 평가하면서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낡은 가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장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이 목적이다. 물질이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가 목적이다. 전도된 가치관을 바로잡는 일이 한국에서는 눈앞에 닥친 과제가 되고 있다.”
- 일본민주당의 승리를 환영한다, 정동영, 2009. 8. 30
반면 자기가 쌓은 업에 짓눌려 반성조차 못하는 족속들도 있다. 요즘 노무현 정당이라고 해서 국민참여당 창당 흐름이 있는데 그 중 핵심이라고 하는 천호선 같은 이는 노무현 정권 시절의 비정규직법 문제, 파병 등을 잘한 짓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 국민참여당 천호선 |
그런가하면 작년부터 몰아친 금융위기 속에서 자본주의가 되풀이해서 이런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만도 한 상황임에도, 노동운동 진영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에 머물러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나 복수노조 허용과 같은 해묵은 문제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미국에서 최근에도 상업은행 하나가 파산하고 벌써 경제 거품 때문에 새로운 위기가 언급되는 순간에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운영원리, 사회주의에 대한 언급을 모두 회피하고 있다. 공식적인 지도부는 물론이고 구력이 있는 현장활동가들도 사회주의를 언급하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아닌 사회가 개인의 삶을 전폭적으로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정과 주장이, 날이면 날마다 올라오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넘치는 기사들 속에서 힘을 얻지 못한다면 노동해방은 도대체 언제 올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