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1인시위를 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세차게 부는 겨울바람 앞에 함께 온기 나눌 사람 없이 홀로 서있는 모습이 고되고 외로워 보인다.
김석진 동지는 지금도 상복을 입고 정몽준 의원이 나서서 1.23합의를 지키고 현대중공업 경비대 심야테러에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미포조선 굴뚝투쟁이 끝난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사이 여러 일들이 있었다. 현대미포조선은 1.23합의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임원이 작성한 협약서를 어기고 부당하게도 현장활동가들을 중징계했다. 그에게는 2개월 정직처분이 내려졌다. 징계기간 동안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협약서 이행과 심야테러 해결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시작했다.
현장에 복귀하자 회사의 비열한 보복이 시작됐다. 회사는 ‘우리 삶의 일터를 망하게 하는 자와는 함께 근무할 수 없다’, ‘우리는 당신을 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느냐’, ‘기만과 거짓, 너의 욕심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일터 말아먹으려는 자, 당신을 규탄한다’는 세 현수막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이름으로 일터에 걸어 놓았다. 회사에 의해 자택에서부터 사내까지 어디서나 미행, 감시를 당했고 여기에 항의하다 폭행당하기도 했다.
가장 힘든 것은 동료들의 따돌림이었다. 한 동료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반장에게 불려갔다. 김석진과 이야기하면 왕따 당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디서나 감시의 눈이 번뜩였고 동료들은 내심이 어떻든 김석진 동지를 피하고 무시했다. 출퇴근길에도, 일하면서도, 식당에서도 그는 혼자였다. 그리고 오늘도 홀로 1인시위를 한다.
“아파서 못 살겠다.” 김석진 동지 1인시위판에 쓰여 있는 말이다. 실제 동지는 수개월째 병원치료와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다. 정신과치료는 회사에 의한 미행, 감시, 폭언, 폭행, 집단따돌림에 시달리고부터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원치료는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심야테러로 의식을 잃고 나서 깨어난 다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받고 있는 것이다.
심야테러는 미포 굴뚝투쟁 중인 1월 17일 자정 경에 일어났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오토바이헬멧으로 복면하고 각목과 쇠파이프, 소화기로 무장한 현중 경비대 60여명이 노숙농성장으로 갑자기 난입해 만행을 저질렀다. 차를 부수고 농성장을 불태웠다.
그리고 먹이를 찾은 짐승처럼 김석진 동지에게 달려들었다. 소화기를 눈에 분사하고, 뒤에서 각목과 소화기로 내리찍었다. 동지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정신을 잃었다. 쓰러진 동지의 몸은 각목과 소화기, 발길질에 사방에서 난타 당했다.
간신히 노숙농성장에 있었던 동지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야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후유증과 공포스러운 기억은 쉬이 몸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피해자가 일반 시민이었다면, 회사 관계자였다면 난리법석이 났을 일인데, 처벌도 사과도 보상도 없었고 누구하나 나서는 이도 없었다. 다시 혼자였다. 그렇지만 김석진 동지는 여기에 굴복하면 또 누가 언제 새로운 테러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추슬러 투쟁에 나섰다.
김석진 동지는 미포조선 등을 거느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실질적 지배자인 정몽준 의원이 산하 기업의 악덕행위에 책임을 지고 나서서 문제 해결과 경비대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외로운 투쟁을 보며 그 심정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함께 일하는 그 많은 동료들 중에 동지 편은 어디에 있는지... 동료들이 원망스럽지 않을는지...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 편할 텐데, 왜 가시밭길을 찾아 걷는지... 스며오는 원망과 회의, 자기연민 같은 것들을 어떻게 참아낼까?
아마 이것저것 계속 마음에 두면 싸우지 못할 것이다. 매번 털어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에 오늘이고 내일이고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만 쳐다보면 싸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를 지켜보고 있을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기에, 우리의 정의감이 살아 있음을 믿기에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동지가 언젠가 말했다. “자본이 노동자의 진실을 아무리 숨기고 짓밟아도 결코 가려지지 않으며, 진실을 전하는 노동자의 투쟁도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우리가 사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