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 보장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헌재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범한 헌법재판소가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분석해보면 묘한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소유권 및 기타 재산권 관련 결정에서는 권리 있는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소수자의 인권이나 정치사상의 자유와 관련된 기본권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본권을 침해하는 자들의 손을 들어주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예를 보더라도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이나 보안관찰법,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시각장애인 안마사 자격논란 등의 사건에서 보듯이 헌법의 이념에 따른 기본권 보장의 측면이 아닌 반공이데올로기 또는 시장주의에 충실한 반인권적 판단을 계속해왔다.
더 나가서 일부 결정에 있어서는 헌법재판소가 적확한 법리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헌법재판소 본연의 임무와는 달리 전혀 법리와 관련 없는 이론을 동원해 그것을 헌법의 이념인양 강변하는 경향까지도 나타남을 목도할 수 있었다. 예컨대, 행정수도 이전과 관계된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성문헌법주의의 국가에서는 이론적인 검토수준에서 그쳐야할 “관습헌법”을 마치 결정적 가치판단의 기준처럼 적용하면서 위헌판결을 내렸다. 반대로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에 대해선 문제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논리를 근거로 기본권침해현상을 합헌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차라리 집단소설창작단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을 받기에 이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례는 다분히 “법의 정의”라는 가치보다는 “법적 안정성”이라는 가치에 매몰된 것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결국 헌법재판관들이 지나치게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변화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헌법재판관들의 보수안정취향의 결정이 대세를 이루는 것은 그들의 임명과정에서부터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법적 안정성이 그들의 최고 가치
현행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의 자격으로는 현직 법조인으로서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40세 이상의 사람이어야 한다(헌법재판소법 제5조 제1항). 적어도 15년 이상 재조(在曹) 경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률 전문가로서 장구한 세월을 종사한 분들이라면 적어도 “집단소설창작단”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을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분들이 아니어야 한다. 최소한 실무측면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이라는 것이 과연 실무적 차원에서 절차적인 수순을 밟는 것만으로 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오게 된 사람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이유는 단지 법률의 적용이 절차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만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외피를 넘어서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의 이념을 실현하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요청인 것이다.
이처럼 중대한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의 결정적 자격기준이 법조실무경력 15년 이상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부적절하다. 적어도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본권의 이념에 어느 정도 충실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헌법현실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개념의 정립은 되어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방법은 법률상 전무하다. 헌법재판소법이 재판관의 임명과정에서 반드시 청문회를 거칠 것을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이 규정이 실효를 발휘하는지는 극히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어차피 9인 헌법재판관은 정부, 국회, 법원이 각 3인씩을 나눠서 추천하게 되어 있고, 다분히 정치적 판단에 의해 갈라먹기 식으로 자기사람 심기에 여념이 없는 이 3부의 행태로 보아 서로 피 보는 일 없는 적절한 수준(?)에서 요식적인 청문회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절치부심한 헌법재판관들이 자신들을 뽑아준 권력집단을 위해 “법적 정의”보다는 “법적 안정성”에 더욱 집요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헌재의 소설을 읽고 싶지 않다
실제 재조(在曹) 경력이 헌법재판관 임명의 절대적 조건이 될 이유가 없다. 차라리 현직 법조인의 경력이 없더라도 헌법이념을 충실히 지켜나갈 수 있는 전문성과 기본권 수호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헌법재판관이 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기준은 역시 헌법에 대한 전문성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15년 이상 현직을 전전한 법조인들이 가진 헌법에 대한 전문성이 다른 어떤 집단, 예컨대 헌법학자들보다 높다고 보긴 어렵다. 헌법관련 송무업무를 전담한 법조인이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판검사, 변호사들은 사실 헌법을 하나의 장식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더불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수호의지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검증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헌법에 전문성을 가진 헌법학자라고 해서 기본권 수호의 의지가 다른 어떤 이보다 월등하다는 보장은 없다.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에 대해 그 내용에 대한 고찰은 외면한 채 “좌파”들의 “과격폭력시위”로 치부하는 헌법학자, 국가권력남용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논의에 대해 “위헌” 운운하는 헌법학자, 국가에 의한 국민개인정보통합체제 운영을 기본권 침해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헌법학자 등 “헌법”에 대해서는 전문가일지 모르나 그 헌법이 가지고 있는 이념과 가치를 부정하는 헌법학자들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검증은 단지 한 차례 요식적인 청문회 정도로는 부족하고 그들의 삶 자체가 조망되어야할 것이다.
지난 6월 말, 한 헌법재판연구관이 앞으로 재판관이 되지 말아야 할 7가지 유형의 인물을 밝힌 적이 있다. 이 연구관은 “출세 지향적 경력을 가진 후보자,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후보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후보자, 특정 학연 우월주의자,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가진 후보자, 권력자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후보자, 법조 중심주의에 빠져 다른 전문 직역을 무시하는 후보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어찌 이 7가지 유형뿐이겠나?
헌법재판소 무용론까지 대두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헌법재판소가 처음 출범했을 때 가졌던 그 기대를 그대로 접어버리기가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이념 수호의 최후 보루로서 역할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고 헌법재판소가 또다시 “집단소설창작단”으로 전락해버린다면 이건 단지 하나의 국가기관이 제 역할을 못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권위주의시대를 극복한 민중의 의지와 실천이 좌초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한 최악의 사태가 오기 전에 헌법재판관들을 선임하는 과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될까?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