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브레이크 없는 용역경비들의 폭력

투쟁하는 노동현장은 살벌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벌어지는 용역폭력을 중심으로 글을 썼으며, 금속노조 기륭분회 박행란 씨, 금속노조 이젠텍지회 이원진 씨, 금속노조 대양금속분회의 김두영, 설창복 씨가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노동자, 철거민, 노점상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면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구호가 있다. “죽을 수는 있어도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 거친 이 구호는 노동자, 민중의 싸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동자에게는 해고, 철거민에게는 주거권 박탈, 노점상에게는 생존권 박탈 등 삶의 절대적 위기상황에서 나온 마지막 목소리이기 때문에 절박하면서도 거칠다.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은 노동자, 민중에게 사회적 죽음을, 추락을 의미한다. 물러설 곳 없는 투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치열하고 끈질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은 자본과 정부에게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정부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폭력을 들이민다. 언제나 그렇듯 당사자인 자본과 정부가 은근슬쩍 빠지고 용역경비라고 불리는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대리한다. 용역경비가 폭력을 대리하면, 공권력인 경찰은 이를 방조, 묵인한다.


폭력 쓰는 용역깡패, 묵인하는 경찰
용역폭력에 경찰도 한몫 하고 있다. 증거자료와 함께 고소를 해도 제대로 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 | 참세상


올 8월로 투쟁 1년을 넘긴 금속노조 기륭분회에서는 처음에는 회사 경비들이 조합원들을 감시하다가 작년 9월부터는 용역경비들로 대체되었다. 회사에서 현장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위에 용역경비들은 현장 입구마다 출입을 통제했다. 현장을 지키며 농성을 진행하는 기륭분회 조합원들에게 용역경비들은 밤에 자고 있으면 손전등을 비추어 놀라게 하고, 녹음기 틀어서 잠을 깨게 하고, 에어컨을 틀어서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대다수가 여성조합원인 기륭분회의 경우 욕설과 성추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졌으며, 화장실을 갈 때도 위협적이었다. 항의해도 소용없었으며, 불안함에 조합원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을 섰다.


용역경비들이 발을 밟아서 발톱이 빠지기도 했으며 물대포가 동원되기도 했다. 밖에서 두 겹으로 서서 감시해서 항상 두려운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들에 대한 감시와 미행은 일상이 되었고, 이를 빌미로 조합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스트레스를 주었다. 용역경비들의 일상적 폭력 앞에서도 노동자들은 당당하게 행동해야 하고, 두려움을 숨겨야 한다는 것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박행란 씨는 지금도 용역경비들을 만나면 겉으로는 웃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용역경비의 폭력으로 노조가 경찰에 신고한 사건은 다 무혐의 처리되었다. 조합원 머리를 밟아서 실신했는데, 경찰이 와서 법적으로 처리하라는 말만 하고는 자리를 떴고, 법적 절차를 밟자 무혐의 처리했다. 증인이 있었지만, 증거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되기도 했다.


2005년 10월 노동조합을 설립한 금속노조 이젠텍 지회의 경우 노동조합을 만들고 1차로 용역경비가 들어왔을 때는 10명 정도로 특별히 심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올 6월 사장실 점거농성 이후 2차로 들어온 용역경비들은 30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폭력이 심해졌다. 팔이 빠져 6주 진단을 받은 산업안전부장은 아직 병원에 있다.


이진텍 지회 이원진 씨의 경우 ‘저 새끼 데려가’ 라고 용역경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사진이 안 찍히는 곳으로 끌고가 집단구타를 했다. 병원에 처음 갔을 때는 똑바로 누울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비조합원이 보는 상황에서 폭행을 당했으며, 이원진 씨가 맞는 폭력장면에서 현장의 비조합원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단폭행을 당한 이원진 씨는 ‘깡패들이 작정을 하고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측과 용역경비들은 노동자들이 폭행을 당하면 투쟁에서 물러서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죽음까지 낳는 용역경비들의 폭력


금속노조 대양금속분회의 설창복 씨는 노조를 만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인권침해와 폭력이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올 1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노조에 교섭 불참과 조합원 해고를 일삼던 사측은 6월 25일 새벽 3시, 4명이 자고 있는 농성장에 용역경비 150여 명을 투입했다. 이후에는 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대양금속분회의 전체 조합원 수는 56명이다. 노동자들은 갈비뼈가 나가고, 이가 깨졌다. 대양금속의 경우 대표이사가 직접 용역경비 400여 명에게 ‘쓸어버려!, 밀어버려!’ 라며 원색적인 표현으로 폭력사용을 지시했다. 물론, 경찰들은 그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대양금속분회에서도 용역경비의 폭력을 고소했다. 그렇지만 참고인 자격으로 진술하면 증거가 모자란다, 사진은 되어도 동영상은 증거가 안 된다는 등 경찰은 어이없는 대답으로 일관하며 조합원들을 복장 터지게 했다. 동영상 증거를 주면 경비업체를 찾아내기는커녕, 조합원 사진을 가려내 오히려 사측에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경비업체에서 대학교 체육학과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대양금속에 들어온 용역경비 중에는 ‘내일이 시험인데 우리 가야 되는데…’ 라며 걱정하며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고 한다. 용역업체가 대부분 팀장 체계로 팀장이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고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라고 여기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용역경비들의 눈에는 생존권 투쟁에 내몰려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벌이의 상대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욕설을 퍼붓고, 더 많은 폭력행사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용역경비들의 업무(?)가 되는 것이다.


지난 7월 서비스연맹 레이크사이드CC 노동조합에서는 집회를 마치고 사업장으로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구사대와 용역경비들이 초산으로 의심되는 물질을 던져 집회 참가자의 각막이 손상되는 일이 발생했다. 6월에는 부평에서 지체 장애 2급인 주수길 씨가 행정대집행법에 의한 용역경비들의 부평공원 야시장 내 장애인 노점상 철거과정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교섭에 성실히 임하라는 것이 모든 투쟁사업장의 요구다. 요구는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하다. 하지만 투쟁이 시작되면 용역경비들은 당연하게도 들어오고, 투쟁의 수위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폭력은 더욱 심해진다. 용역경비들은 현장 근처에 기숙사를 정해서 생활하며 투쟁사업장에 상주한다. 폭력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노동자들의 신체에 대한 물리적 폭력, 감시에서 그치지 않는다. 연대집회가 있으면 정문을 봉쇄하고, 아침선전전을 준비하면 선전전을 못하게 마이크를 뺏어가고, 앰프시설을 망가뜨리는 등 일상적인 노동조합 활동 자체를 가로막는다. 경비업법에 걸리면 업체 폐업하고 다른 업체 차리면 된다. 경찰 또한 한 몫 한다. 노동자들이 증거자료와 함께 고소를 해도 제대로 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다수가 여성인 기륭분회의 경우 욕설과 성추행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용역경비들의 폭력 앞에서도 노동자들은 당당해야 하고, 두려움을 숨겨야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사진 | 참세상


무혐의 처리하기에 바쁜 경찰


용역깡패의 폭력은 극심한 욕설을 동원하는 언어폭력, 미행과 감시, 농성장 파괴 등 물리적 폭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민중의 피해는 단지 신체적인 상처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심리적 위축감, 폭력에 대한 일상적인 공포와 두려움, 피해를 입은 조합원의 치료비와 노동조합의 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물품들에 대한 손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 등 용역경비의 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다양하게 드러난다.


용역깡패의 폭력 앞에서는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용역경비들의 폭력 앞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멈추지 않는다. 폭력이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용역경비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측과 돈이면 사람도 죽일 수 있고 이것도 직업이라며 당당하게 말하며 덤벼드는 용역경비들 앞에서 오히려 악이 바쳐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싸운다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폭력장면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동원가능한 모든 폭력을 행사하는 사측과 용역깡패의 폭력에 노동자, 민중의 저항은 그들의 절박한 요구만큼이나 질길 수밖에 없다.


용역경비의 폭력에 노동자들이 대응하면 언론은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않는다. 왜 노동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노동조합의 요구가 무엇인지 왜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라지고 용역경비와 싸우는 폭도(?)로 둔갑시킨다. 노동자, 민중이 절박하게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통로와 선전 방법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것이 용역폭력에 대한 대응에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비업법이 폭력 부추겨


인터뷰에 응해준 세 명의 노동자들은 용역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경비업법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비업체를 고소하면서 경비업법을 처음 보게 됐다는 이원진 씨는 처벌이라는 게 행정처분 정도라서 업체대표만 바꿔서 다시 업체를 차리면 되는 느슨한 경비업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농성장 주변에 용역경비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심리적 위축감을 느끼기 때문에, 지역투쟁사업장의 공동대응이 절실하다고 했다.


용역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당면한 현안투쟁의 문제도 있어 용역폭력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활동은 아직 미흡하다. 경비업법을 교묘히 비껴가며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가로막는 용역폭력에 대한 공동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인권단체연석회의의 제안으로 ‘(가칭)용역폭력에 대한 대응회의’가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대응회의에서는 사측, 용역회사, 경찰, 노동조합에 대한 진상조사와 용역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감시활동과 경비업법에 대한 법적대응 및 기간 진행된 용역폭력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증언대회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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