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검찰 기소와는 달리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오산 수청동 사건에 대한 판결의 의미

2005년 4월 16일 오산 수청동에서는 철거민들의 망루 건설을 저지하던 경비용역업체 직원 한 사람(망인)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편집자 주. 자세한 내용은 월간 <사람> 1호(2005년 7월)에 게재된 ‘철거된 인권 경기 오산시 수청동 철거현장’ 참조].


위 사건으로 인해 당시 농성에 참여하였던 철거민들이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받았다. 사망한 경비용역업체 직원의 부모(원고)는 2005년 7월 경 주공(대한주택공사),경비용역업체,철거민들을 공동피고로 하여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수원지방법원에 제기(수원지방법원 2005가합12349 사건)하였으며, 2006년 5월 25일 1심 판결이 선고(현재 항소심 진행중)되었다. 이 글은 위 수청동 민사 판결이 갖는 의미에 관한 것이다.


오산시 수청동 일원에 대한 오산세교 택지개발사업의 시행자인 주공은 사업지구 내 토지 건물 등에 대한 보상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일부 주민들은 수청동 철대위(철거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이주자택지 제공 등 실질적인 주거대책 마련을 요구하였다. 수청동 철대위(8세대)는 강제철거에 맞서기 위해 다른 철거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 전날 밤부터 수청동의 한 연립주택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기 시작하였다.


사건 당일 새벽부터 오전까지 주공 오산신도시사업단 소속 임직원들, 용역경비업체 직원들, 대규모 경찰병력, 소방차 및 구급차, 오산시 공무원들 등이 건물 주변으로 신속하게 운집했다. 사건 당일 오후 한 시 반경부터 세 시경까지 용역경비직원들은 3차례 정도 망루 설치를 저지(철거민들을 제압 내지 해산하고 망루 철거)하고자 건물진입을 시도하였고, 건물 옥상 등에 있던 철거민들은 시위용품(돌, 골프공 등)을 던지며 저항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비업체 직원들 여러 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2차례 정도 화염병이 투척되어 용역경비직원들이 후퇴하기도 하였다. 철거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용역경비직원들은 오후 3시 30분을 전후하여 합판에 매트리스를 얹은 대형방패를 만들어 여럿이 들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시위용품을 막으며 재차 진입을 시도하였고, 그 과정에서 화염병이 투척되어 불이 크게 났고 망인이 사망하였다.


사망자가 발생하고만 오산 수청동 철거작업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주공, 경비업체, 철거민들 등 피고들 모두의 연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법원이 각 피고의 책임을 인정한 근거는 아래와 같다. 철거민들은 시위용품을 던지고 화염병 등을 던져 화재를 발생케 하여 용역경비직원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책임이 있다. 또한 용역경비업체는 이미 3차례에 걸쳐 격렬한 대치 상황이 있었고, 용역경비직원들이 다치기까지 하여 재차 진입을 시도할 경우 망인의 생명 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었고, 망루 설치 저지 작업은 경비업법상 경비업체의 업무범위에 속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망인 등에게 망루 설치 저지를 지시하였으므로 책임이 있다.


그리고 주공(및 사업단장)은 철거민들이 강력히 저항하는 상황에서 망루 설치 저지 작업을 진행할 경우 작업자의 생명 내지 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지시하였고, 민사집행법상의 집행권원 내지 행정대집행법 소정의 대집행영장을 구비하지도 않는 등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작업을 지시하였으므로 책임이 있다.


우리 사회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는 소외된 철거민들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철거민 문제 해결을 위해 사업주체가 경비업체와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경비업체 직원들(용역경비직원)을 투입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경비업법은 경비업체가 할 수 있는 업무를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경비업무로 제한하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위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경비업법 제2조, 제15조의2 등)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비업체 직원들은 철거 현장에서 철거민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철거 작업에도 직접 투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는 경비업법에 반하는 불법적인 관행인 것이다.


수청동 사건에서 경비업체 직원들은 철거민들이 지키고 있는 건물로 진입하여 철거민들을 해산시키고 망루를 철거하고자 했고 해머 등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철거장비들을 휴대했으며 일부는 철거민들을 향해 돌을 던지기까지 하였다. 이는 명백히 경비업법을 위반한 불법인 것이며, 수청동 민사 판결은 그와 같은 경비업체의 불법적 관행이 위법함을 명백히 하고 경비업체의 책임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경비업체의 불법적 관행과 주공의 잘못을 밝힌 의미 있는 판결


주공은 법률(대한주택공사법)에 의해 설립된 공법인이며 대한주택공사법 제1조가 ‘이 법은 대한주택공사를 설립하여 주택을 건설·공급 및 관리하고 불량주택을 개량하여 국민생활의 안정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듯 주택 건설 공급 및 관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공공복리를 증진해야 할 공적인 기관이다. 이처럼 공적인 기관이므로 주공은 철거민 문제에 관해 개발현장에서 좀 더 성실히 철거민들과 협의하고 실질적인 주거대책을 마련하는데 노력해야 하고 철거민들이나 용역경비직원들 등 관계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수청동 사건에서 주공은 철거민들이 망루를 짓자 사업지연을 걱정하며 대대적인 망루 설치 저지 작업을 강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철거민들(만일 경비업체 직원들이 건물 진입에 성공하였다면 철거민들 또한 큰 위해를 입었을 것임은 자명하다.)이나 경비업체 직원들의 안전을 배려하지 않았다. 또한 주공은 민사집행법이 정하는 집행절차나 행정대집행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무리하게 경비업법을 위반해 가며 경비업체 직원들을 현장에 투입시켰다. 그러한 모습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건설업체)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수청동 민사 판결은 이러한 주공의 잘못을 명백히 하고 책임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나아가 수청동 사건을 계기로 공법인인 주공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자성하도록 하였다는데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경찰과 오산시는 책임질 것이 없나?


사건 당일 새벽부터 오후 망인이 사망한 이후까지 화성경찰서장 이하 대규모 경찰병력, 오산시장 직무대행자를 비롯한 상당수의 오산시 공무원들은 건물 주변에서 주공과 경비업체의 망루 저지 작업을 내내 지켜보면서도 경비업체 직원들이나 철거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어떤 조지도 취하지 않았고 그 결과 망인이 사망하였다. 심지어 빨리 진입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면서 경찰이 오히려 진입을 독려하였던 사실이 용역경비직원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기까지 하였다.


수청동 민사 사건에서 경찰과 오산시는 피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의 책임 유무는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판결에서 주공과 용역업체의 책임을 인정한 근거를 곱씹어 볼 때 경찰과 오산시 또한 피고가 되었다면 책임이 인정되었을 것이다. 현장에 대거 출동한 경찰이나 오산시 공무원들에게는 관계인들의 생명과 신체를 지키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음이 당연한 것임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고,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경비업법을 위반하며 위험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망루 설치 작업을 그저 지켜보면서 철거민들을 연행하고 처벌할 근거 마련(현장 출입 통제 및 채증작업)에만 급급 하느라 망인의 사망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잘못된 강제철거관행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물론 망인의 사망에 대해 철거민들에게 책임이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망인의 사망에 대하여 수사기관은 오로지 철거민들의 책임만을 물었고 주공이나 경비용역업체의 책임을 묻지 않았으며 철거민들만이 기소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망인의 부모는 아들의 사망에 대한 책임은 주공과 용역경비업체도 져야 한다고 보아 철거민들, 주공, 용역경비업체 모두를 공동피고로 하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던 것이며 법원은 모든 피고의 책임을 인정하였다. 철거민들만을 기소한 검찰보다 오히려 망인의 부모가 사건의 책임 소재를 올바르게 판단하였던 것이다.


수청동 민사 판결이 잘못된 강제철거 관행을 바꾸어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나아가 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철거민들과 사업의 빠른 진행에 밀려 언제나 뒷전이었던 인권의 문제를 해결해가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경찰의 묵인과 방조 속에 자행된 철거전쟁
2005년 4월16일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택지개발지구 철거현장에서 용역업체 직원 이 아무개(23)씨가 불에 타 숨졌다. 경찰은 농성을 벌이던 철거민들이 불법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이를 철거하기 위해 용역업체 직원들이 농성장 진입을 시도하자 건물 3, 4층과 옥상에서 화염병과 시너를 뿌려 이씨를 불에 타 숨지게 했다고 발표했다.


곧 언론사들은 철거민들의 폭력성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들을 물밀 듯이 쏟아냈다. 당초 상해치사로 수사를 진행했던 화성경찰서는 자수한 전국철거민연합회 소속 성 아무개(39)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고 나머지 농성자를 대상으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농성장 주변에 경찰 병력을 배치했다. 엄중한 공권력 행사를 요구하는 여론몰이에 범죄자, 살인자로 낙인찍힌 철거민들의 인권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경찰은 물을 비롯한 생필품 보급을 차단했고 농성장 접근을 금지했다. 인권단체와 시민단체의 생필품 보급 요구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생필품 보급 권고도 묵살되었다.


2005년 5월18일. 경찰 발표와는 전혀 다른 주장이 인권시민단체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에 의해 발표되었다. 오산자치시민연대와 다산인권센터 등 진상조사단은 “사건 당일 농성자들이 용역직원들을 향해 일방적인 폭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며, “불과 4~5m 떨어진 맞은 편 건물에 용역직원들이 올라가 농성장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 발표와는 달리 “숨진 이씨의 시체 위치는 101동 건물 앞이 아니라 101동 건물과 102동 건물 사이”라며 이씨가 102동에서 용역이 던진 소화기에 맞아 숨졌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같은 진상조사단의 주장은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의 진술과는 달랐지만 사건 당일 시체를 수습한 한 소방대원의 진술과는 일치했다. 이 소방대원은 “101동과 102동 건물 사이에서 숨진 이씨를 수습했는데 다른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타 숨진 시체와는 달리 이씨는 가지런히 구부러져 있던 상태였다.”며 “무언가에 먼저 맞고 숨진 뒤 불에 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진상조사단의 주장을 일축했다.


2005년 5월 26일. 한 장의 사진이 시민단체와 <인천일보>를 통해 공개되었다. 경찰이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위반한 채 새총을 만들어 골프공과 자갈로 농성장을 공격한 장면이 담긴 사진이었다. 진상조사를 맡아왔던 오산자치시민연대는 경찰이 철거민에 대해 편견을 갖고 공권력을 남용했다며 실태를 고발했다. 이틀 뒤인 5월 27일 열린우리당 인권특위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현장을 방문했다. 농성자들은 새총 공격과 골프채로 골프공을 날린 경찰 간부들의 반인권적인 실태를 거침없이 토로했으며 이와 함께 숨진 이씨의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부검을 요구했다. 이에 경기지방경찰청은 화성경찰서장과 경비교통과장, 방순대장에게 각각 책임을 물어 직위해제했으며 새로 취임한 화성경찰서장은 여론에 밀려 부검과 갖가지 의혹이 일고 있는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 방침을 밝혔다.


곧 사건 당시 공정하지 못한 경찰 현장지휘와 편파적인 수사가 드러났다. 직접 시체를 수습한 소방대원의 진술은 묵살하면서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받은 진술만으로 농성자들을 고의적 살인자로 내몬 것이다. 또한 경찰은 처음부터 쌍방이 물리적으로 충돌한 사실을 은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국 이 사건은 위법하게 강제철거를 지시한 주공의 책임론이나 안전사고 발생에 따른 경찰의 책임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2005년 6월 9일 경찰 특공대에 의해 농성자들이 강제해산 되고 24명이 살인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면서 끝을 맺었다.


강곤 | 기자

이글은 월간 <사람> 1호(2005년 7월) “철거된 인권”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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