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작하느냐면, 내가 생각하는 인권이라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싶어도 밑천도 없고, 그냥 일상에서 느낀 화딱지 나는 일들을 소개하고 싶을 뿐이다. 얼마나 화가 나는 일이냐 묻는다면, 내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상대방에게 순간적으로 살의를 느낄 정도라 대답하겠다. 그런 일이 무엇이냐고? 예를 들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다리 벌리고 앉는 남자들 옆자리에 앉는 일 따위 같은 것.
사진출처 |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
그 얘기 지겹지도 않냐?
너무 익숙한 문제제기라 이 글을 읽는 남성분들은 ‘또 그 얘기?’하며 글을 덮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정말 절실한 문제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를 때, 어떤 사람들은 빈자리가 있는지, 좋은 위치의 자리인지를 고민하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나는 버스에 타는 순간 좋은 위치의 자리뿐만 아니라 그 옆에 앉은 승객의 인상까지도 살피게 된다. 남성이면 일단 제외, 여성이 없다면 젊은 남성 옆에, 젊은 남성도 없다면 가능한 마르고 선해 보이는(!) 아저씨 옆에, 그런 사람도 없다면 가능한 약주를 안 하신 분들을 찾는다. 그마저 없다면? 어쩔 수 없다. 아무데나 앉아 가야지. 피곤하지 않으면 서서 가기도 할 것이고.
남성의 신체구조상 어깨가 넓고 체격이 크고… 이런 변명은 솔직히 이해되지가 않는다. 나도 어디 나가면 남자인 줄 착각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한 편이고 또 체격이 크신 여성분들도 많다. 하지만 마른 남성 옆에 앉는 것보다 체격이 큰 여성 옆에 앉는 것이 훨씬 편하다. 대개 남성들은 옆 자리를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해서 앉는 반면, 여성들은 옆 자리와 자신이 앉는 자리를 고려하여 자신과 상대방이 모두 편한 자세로 앉는다. 짐이 많은 분들을 제외하고, 나는 여성이랑 앉아서 갈 때 신체가 맞닿거나 소지품에 허리를 찔려본 적이 별로 없다. 남성들 옆에서는? 다리가 맞닿아서 그를 피하려고 몸을 돌리다 보면 나는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창틀에 찰싹 달라붙는 자세를 취하거나 통로에 몸을 걸치듯 내밀고 있어야 한다. 몸이 닿지 않는다면 가방이나 팔꿈치, 팔짱을 낀 손끝에 옆구리를 찔리기도 하고 가끔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옆 사람이 반지를 꼈는지 아닌지도 알아내는 경우도 있다.
혼자만 예민한 척 굴지 말라고?
나도 그렇게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다. 예민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쓰고 사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건지 모른다. 그럼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라고 할 수도 있다. 예전에 한 번 어떤 아저씨께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가 버스 안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아저씨한테 타박을 들은 경험 이후로는 말도 꺼내기가 싫어졌다. 물론 나한테 타박한 그 아저씨가 유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유난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똑같이 숨 쉬고 밥 먹고 일을 한다고 해서 똑같이 생각하고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여성들이 겪는 성희롱/폭력의 수위는 예상외로 상당하다. 위에서 말한 버스에서의 상황이 아침이라고 반복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만원인 지하철 안에서는 허리와 가슴에 닿는 어떠한 느낌에도 무방비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다. 가방에 허리가 스쳐도 고개를 돌려 보게 되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갑자기 뒤로 물러설 때 가슴과 부딪히지 않을까 한 걸음 같이 물러나게 된다.
길을 걸을 때도 좁은 길을 만나면 무의식적으로 스쳐가는 타인과 최대한 거리를 확보하려고 하며(길을 지나가면서도 엉덩이를 쓰다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직장에서는 유난히 친절한(!) 상사의 스킨십에 몸을 바짝 긴장해야 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친하게 느낀다는 이유로 무릎이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참아내야 하며, 밤 귀가길 골목에서 취객이라도 마주쳤을 때는 취객이 조용히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다. 계용묵의 「구두」에서 나온 상황처럼 뒤에서 따라오는 구둣발 소리에도 전력을 다해 도망가고 싶은 맘을 갖는 게 현실이다. 그냥 악수를 청하는 것이나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성추행 범으로 모는 것이 너무 예민한 반응이라고? 길거리를 지나면서 여성들끼리 팔짱기고 다니는 것은 많이 봤어도 남자들이 그러는 건 별로 못 봤다. 그만큼 친밀도를 몸으로 표현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왜 유난히 여성한테만 온 몸을 다해 친밀도를 표시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알고 보면 소박한 소망인데…
사실 여성들이 얼마나 피곤하게 사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간단하고도 쉬운 것 한 가지를 바랄 뿐이다.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해 달라는 것. 개별 문화권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물리적 거리(예를 들면, 내가 상대방과 이야기 할 때 편하게 느껴지는 거리)가 다 다르다고 한다. 유럽 쪽은 대화할 때 한 팔 길이만큼 떨어진 거리가 편하고, 아시아 쪽은 팔을 반쯤 편 상태만큼의 거리를 편하게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 거리가 상당히 가까운 편이라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 예기치 않게 동석한 생판 모르는 사람과 신체를 맞댈 정도로 가까운 편은 아닐 것이다. 무지하게 더운 한 여름에 뜨끈뜨끈한 허벅지를 맞대고 앉아야 하는 것도 싫지만,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모르는 타인의 체온에 기대 따뜻함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너무나 빤한 얘기처럼 들리고, 어쩌면 정말 짜증나는 얘기처럼 들리거나 히스테릭한 한 여자가 짖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다시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 자리 사람 때문에 살의를 느끼는 일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 하나쯤은 들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망 하나쯤은.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