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인권 안의 법, 인권 밖의 법] 빈곤층 주거권의 실질적 보장을 위하여

장기 거주 무허가시설물 주민의 실거주지 주민등록 전입 거부처분의 시정을 기대하며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8월 9일자로 비록 무허가시설물이라 할지라도 장기간 실제 거주하여 왔다면 해당 주거지를 주소지로 하여 주민등록 전입이 허용되도록 조치할 것을 서울시 강남구청장에게 권고했다.


통계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지하방, 옥탑방, 판잣집 등에서 사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통계청이 2005년 연말 인구주택총조사 과정에서 실시한 ‘거주층별 가구조사’의 결과에 의하면 무허가시설물에 해당하는 판잣집, 비닐집, 움막, 동굴 등에 거주하는 사람도 109,512명 45,237가구에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통계는 실제의 숫자보다 매우 적다는 지적이 있지만 전국 단위의 공식적인 최초의 실태조사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연말 기준 주택보급율은 105.9%로 국민 전체가 가구당 집을 한 채씩 소유해도 73만2,000호가 남아야 하지만 자기 집을 보유한 비율은 55.6%에 불과한 형편이다. 주택 소유의 편중 현상이 더욱 악화되면서 빈곤층의 주거 빈곤 실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개선되지 않는 주거 빈곤의 현실에서


인권위의 위 사건에서 진정인은 1985년 3월부터 현재까지 21년여 간 서울 강남구 포이동 소재 목조비닐하우스에 거주해오면서, 그동안 수차례 실거주지로 주민등록을 이전하려고 전입신청을 했으나 서울 강남구에서 계속 반려하자 인권위에 이를 진정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피진정인 강남구 측은 통상적으로 주소지로 정할 수 있는 시설은 적법한 절차에 의한 주거시설로 인정한 건축물을 말하고, 무허가건물에 주민등록 등재 시 법제정 취지에 반하는 것임은 물론, 사회 통념상 주소 또는 거소에 대한 개념 무시, 나아가 불법행위를 사실상 용인하게 되어 반사회적 영향 파급이 우려되어 불허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분쟁 사례는 법원의 행정 판결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례(1991.7.26. 선고 90구3067호)에서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꽃동네 무허가 비닐하우스 거주자가 제기한 주민등록전입신고거부처분무효확인 사건에서 2년 6개월간 타인의 토지 위에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당초 식물재배를 목적으로 한 비닐하우스를 지은 것을 개조한 부엌과 방을 합쳐서 3평 정도의 난방 설비가 된 주거시설로 가족들과 함께 실 거주를 하여 왔던 원고에 대하여 주민등록전입신고 반려처분을 한 것이 위법하다고 하여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또한, 서울행정법원 2001.1.18. 선고 2000구24654호 주민등록전입신고거부처분취소 사건에서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재 개미마을과 화훼마을에서 각기 무허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한 주민 2명에 대하여도 이들이 주거용 시설을 갖춘 상태에서 10여 년 간 실 거주를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면서 주민등록전입신고거부처분을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해당 관청은 주민등록법 입법취지를 존중해야


인권위는 현행 주민등록법 제6조(대상자)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진 자를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등록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17조의7(주민등록자의 지위 등)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이 법에 의한 주민등록지를 공법관계에 있어서의 주소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법 제1조(목적)의 “주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상시로 명확히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법 취지에도 부합되지 아니하여 헌법 제12조의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한, 현행 주민등록법은 주민의 거주지가 적법한 건축물 및 시설물이거나 적법한 지역을 요건으로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으며, 주민등록을 한다고 하여 무허가건축물 및 시설물 등이 불법이 해소되어 적법한 것으로 되는 법률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도 아닌 점, 신규로 설치되는 불법시설물이 아닌 점, 개발지역 투기 및 보상지역이 아닌 점 및 주민등록법 제17조의2(사실조사와 직권조치)의 규정에 의거 허위 거주 또는 투기 등 불순한 목적으로 주민등록을 한 자에 대하여는 관할관청이 사실 조사를 하여 직권으로 주민등록을 말소 조치할 수 있다면서, 특히, 주민등록법 제14조의2(다른 법령에 의한 신고와의 관계)는 “주민등록 전입신고가 있는 때에는 병역법.민방위기본법.인감증명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국민건강보험법 및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거주지 이동의 전출신고와 전입신고를 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초.중등교육법에 의한 읍.면.동장의 취학아동 명부 작성 및 취학 통지 등 실제 거주지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상이한 경우 행정상 및 주민생활의 여러 가지 불편이 가중됨을 살펴볼 때, 피진정인의 주소이전 불허 행위는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진정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한 후 개발지역 투기 및 보상지역이 아닌 한 주거로서의 실질을 갖고 30일 이상 실거주를 하여 왔다면 주민등록전입신고를 수리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관할 구청장에 시정권고를 하였다.


기초자치단체는 주거권 보장에 대한 헌법상의 의무가 있다


이러한 인권위의 결정은 앞서 본 고등법원 및 행정법원의 판결 선례들에서 적시한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 기준에 관한 주민등록법 해석론과 유사한 것이다.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관할하는 시.군.구에서는 심지어 이와 같은 비전형 주거시설에 관한 주민등록전입신고를 수리할 경우 공공임대주택 분양신청권을 갖게 된다면서 이렇게 될 경우 투기목적의 불법거주를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등의 우려를 하고 있으나 주거 빈곤층에 대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와 같은 빈곤층이 법령상의 최저주거기준에 맞는 주거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거나 주거보조정책을 실시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본연의 헌법상의 의무이다. 비전형 주거시설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은 하루살이가 버거운 우리 사회의 극 빈곤층에 속한 사람들로서 이들의 생존권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관할 관청들이 최저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비전형주거시설에 거주하는 극빈곤층 주민들에게 투기 목적에 의한 불법거주자니 하는 ‘화려한 수식어’까지 붙여 투기꾼으로 모는 것은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으로서 너무나도 반인도적인 것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서 확인되고 있는 무허가시설물에 해당하는 판잣집, 비닐집, 움막, 동굴 등에 거주하는 109,512명 45,237가구의 국민들과 나아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옥탑방, 지하방에 거주하는 주거 빈곤층을 포함한 160만 여명의 국민들이 최우선적으로 존중되고, 이들의 주거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공공주택정책을 실천하여야 한다. 그러나 민간이 주도하는 분양전환 임대주택 공급정책은 주거 빈곤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에서 확인되고 있다. 2003년 5월 발표된 정부의 공공임대주택정책 추진 계획에서는 향후 10년간 공공임대주택 150만호 공급 및 전체 주택 재고의 15% 공급을 목표로 하고 2006년까지 서울에서만 10만호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그러나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계층이 장기간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10년 이상 장기임대주택의 재고량은 2004년 말 기준으로 공공기관이 공급한 33만호로 전체주택 재고의 2.5%에 불과한 실정이며 재고율이 7~36%에 달하는 선진국과 비교 시 절대량 자체가 부족한 형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기존 정책을 수정하여 주거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임대주택 재고를 확대하기 위하여 정부는 2005년 4월말 기존의 로드맵을 일부 수정하여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와 같이 국가·자치단체를 포함한 공공기관이 공급하는 시중 가격의 23%(영구임대)에서 60%(50년 공공임대)에 이르는 저렴한 수준으로 빈곤층의 능력에 맞고 생활권에 적합한 건설임대/매입임대 등 다양한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정책을 추진함과 아울러 주거보조를 실시함으로써 비전형주거시설거주자를 비롯한 주거 빈곤층의 주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이를 통하여 비전형주거시설의 설치로 인하여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수 있는 도시계획법이나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 기타 공법상의 위반 사항들을 시정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하여 본다.


기초자치단체는 바로 주거 빈곤층에 대하여 주거권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형주거시설이 있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주거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비전형주거시설 장기 거주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전입신고마저 거부한다는 것은 이들의 주민등록을 중심으로 한 공법상의 권리를 침해하고 이들을 주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상으로서 관할 관청 스스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용인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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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진 | 변호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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