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단체탐방] 우리와 인연 맺지 않으실래요?

울산인권운동연대

우리는 지역의 시민사회운동단체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가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역 기반의 단체들은 ‘무엇인가’ 지역민과 긴밀한 활동을 하고 있다거나 혹은 해야 한다는 환상이 아닐까. 그러나 모든 사회운동은 무릇 단체가 속한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연계되어 있기 마련이다. 수원의 단체가 수원 시민과 함께하고 울산지역 단체가 울산 시민의 상황과 처지에 맞는 운동을 일궈나가듯 서울에 소재한 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외 지역의 단체들은 누구도 정확히 말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가’, 중앙과는 다른 것을 할 것이라는 기대 아닌 기대 속에 놓인다.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최민식 대표는 단호하게 말한다. “지역이라고 서울과 다르지 않아요.”


지역과 서울은 다르지 않다


지역 특산물이라도 찾듯 지역만의 특별한 활동을 기대하는 심리가 답답할 따름이다. 박영철 사무국장은 이런 오해에 익숙한 듯한 표정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정보 접근의 문제가 있겠죠. 서울엔 다양한 정보가 모이니까… 그거 말고는 동일한 문제의식이죠.” 박 사무국장이 오히려 차이점을 찾고 있다. 서울에는 활동가가 많지 않나하며 새로운 차이를 짚어보지만 억지스럽다. 활동가 재생산의 문제는 지역에 국한된 문제라기보다는 전체 운동사회 내 문제일 것이다. 사실 울산인권운동연대의 활동을 슬쩍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한미FTA 저지투쟁,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저지투쟁, 그리고 노사관계로드맵 저지까지.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노동자 농민의 삶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서울지역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동일한 인권운동이다.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권리


울산인권운동연대의 2006년 사업계획은 사단법인 등록 추진, 인권교육센터 설립, 인권상담센터 운영, 울산인권마라톤 개최였다. 사단법인 등록은 안정적 재정확보와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추진했다. 올해는 새로이 인권교육센터도 열었다. 울산인권운동연대는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권리라고 말한다. 교육센터 이전에는 다양한 주제를 다룬 강좌를 통한 인권교육을 진행해 왔다. 2000년 ‘대학생을 위한 인권 강좌’를 시작했고, 2002년부터는 ‘인권학교’를 열었다. 인권학교는 시민을 위한 열린 인권강좌다. 일주일에 두 강좌씩 한 달간 진행하는데 입학식과 수료식도 있다.

시계방향으로 맨 왼쪽부터 필자와 김석한 활동가, 박영철 사무국장, 최민식 대표


그런데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교육에 힘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지역별 인권교육 강사단을 구성, 배치하는 내용을 인권교육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자격이 의심되는 강사가 무작위로 양성될게 뻔하더라구요. 사람들이 인권교육을 인성교육으로 오해하는 마당에… 그래서 우리가 먼저 인권교육을 고민하고 담당할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기로 했죠.” 박 사무국장이 인권교육센터의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센터를 염두에 두고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회단체 활동가와 교사를 대상으로 지난 7월과 10월 2회에 걸쳐 인권교육 워크샵을 진행했다. 인권교육을 하나의 사업으로 배치한 것이 아니라 ‘인권교육센터’로 구성한 것은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서다. 이제 첫 발을 내딛은 인권교육센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안고 있는 큰 고민거리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의 과제는 인권상담센터다. 인권교육센터에 비해 인권상담센터는 갈 길이 멀다. 지난해에도 인권상담센터를 활성화 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선 상담인력이 없다. 현 활동가들이 전화상담을 통해 조금씩 사례들을 축적하고는 있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래서는 센터로서의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 내년을 기약해보지만 충원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대중 속에서 인권을 외치다


인권교육센터와 인권상담센터가 길을 만들어가야 할 입장이라면 울산인권마라톤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할 수 있다. 인권마라톤대회의 시작은 술자리에서 오고 간 가벼운 제안에서 시작됐다. 각종 마라톤대회가 많은 이유. 바로 그로인한 수익이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고 간편한 일이 아니었다. 장소 섭외 및 참가자 확인 등 대회준비는 최소 4~5개월 전부터 이뤄져야 했다. 당일 필요인력만도 4~500명. 어렵사회 첫 회를 치러내면서 재정사업이라는 처음 목표와는 달리 ‘인권’의 전달, 인권의식의 확산이라는 측면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이게 크지 않은 마라톤 대회지만 최소 2,000여 명이 참가한단 말이예요.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인권을 이야기 하겠냐구.” 최 대표는 울산인권마라톤대회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행해 갈 예정이라고 한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고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자기화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마라톤 대회가 이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본 것일까. “마라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주일 전부터 팜플렛을 꼼꼼히 살펴요.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를 돌고, 여기에는 뭐가 있고 알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팜플렛을 잘 활용해 보자 한 거죠.” 마라톤 참가자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최 대표였다. 대회 코스와 배치도 및 각종 안내사항에 이어 팔플렛 끝부분에 세계인권선언문과 단체소개를 실었다. 행사 당일의 장소에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소수자 단체들이 자신의 인권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부스를 설치, 함께 참여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인권을 접하고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다. 작년에는 수상자들이 팜플렛에 실린 세계인권선언문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울산인권마라톤 ‘다르지만 차별없는 세상을 향해’는 명실공히 인권을 주제로 한 대중적인 행사였다. 아직 누구도 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쉽게 만나고 접할 수 있는 대중행사를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이 날 하루만이라도 인권의 가치와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중요해요?” 최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울산인권마라톤을 인권축제 한마당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연대의 마음이 중요


울산인권운동연대는 올 한 해 연대사업 참여수위를 좀 낮췄다. 지역에서 요청하는 연대사업에 모두 참여하다보니 부담이 만만찮다. 다른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형식적 연명에 대한 염증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최 대표는 “실무를 열심히 못하니까 빠지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봐요. 어떤 사안에 대해 동감하고 연대의 마음이 있다면 연명도 중요하죠. 왜 안 중요해?”라고 하면서 “그 활동을 자기중심의 역할로서 담당할 수 있는 중심단체를 되도록 많이 모으고 그 외 단체들은 필요한 순간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 연대의 기본”이라고 한다. 이것이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연대방식이다. 인권단체의 집합체인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에 울산인권운동연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상설연대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상설연대체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다. 지역 간 네트워크 구성과 인권이슈 발굴에는 효율적이나 소속단체의 입장차에 따른 갈등해결 구조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많은 연대의 경험이 있지만 상설연대체, 이슈에 따른 연대체가 갖는 각각의 장단점으로 인해 ‘연대의 정석’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동의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내는 것은 중요하다는 원칙이 있을 뿐….


울산지역의 인권소식을 전하는 ‘주간울산인권소식’은 1999년 11월 12일 창간, 인쇄물과 인터넷을 통해 제공된다. 소식지 발행은 교육센터와 더불어 김석한 활동가 담당이다. “지난해에 이 지역에 인터넷 신문 ‘울산노동뉴스’가 생겼어요. 상대적으로 속보성이 떨어지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지면의 한계도 있고….” 김석한 활동가는 내심 고민이다. 그러나 TV가 나왔을 때 사라질 거라고 한 라디오도 정보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급속히 감소될 거라 예상된 인쇄매체도 사라지거나 그 가치가 상실된 것은 없지 않은가. 인쇄매체는 나름대로의 차별성과 유용성이 있다는 생각에 계속 발행하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주간울산인권소식’을 의미 있는 매체로 만들어가기 위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회원사업 이야기를 꺼내자 박 사무국장이 핀잔을 준다. “우리가 오늘 송년회 관련해서 회원들한테 전화 돌려야 했다고. 그런데 <사람>에서 취재 오는 통에 못했잖아요.”라고. -_-’; 회원소식지 ‘인연’과 현재는 조금 부진하지만 한 달에 한 번 회원들과 산행하는 것 정도가 회원사업의 전부다. 후원회원들과 송년회를 같이 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회원들에게 울산인권운동연대의 활동내용, 사업계획을 소개한다. “사람들과 교감을 갖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예요.” 최 대표는 앞으로 회원사업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천천히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억지로 회원가입을 권유하기 보다는 만남을 통해 인연을 엮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인권강좌 같은 사업진행 후 회원가입이 많기도 하다. 울산인권운동연대를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사람들 속에서 인권으로 희망세상을 그린다. 먼 길을 왔는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지인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련해 주신다. 울산을 방문한 누구 하나 휑하니 보내지 않으신다고 한다.


울산인권운동연대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훈훈함이 황무지 같은 환경 속에서도 인권운동을 일구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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