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대한 이번 <아시아> 겨울호 특집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였는지 잡지 안에 있는 책 광고를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덥석 『팔레스타인의 눈물』(오수연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이란 책을 사버렸다는 것이다. 이게 애초의 내 기대를 저버리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도 않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로 채워져 3분의 2가 넘도록 심드렁하게 책장만 넘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책장을 다 덮을 무렵, 인터뷰 때문에 오랜만에 평택 대추리를 다녀올 일이 생겼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 들어갔다가 자정을 약간 넘겨서 나오는 아주 잠깐의 방문이었는데 돌아와 잠자리에 누우니 자꾸만 대추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 떠올랐다. 그런데 책을 펴니 책은 그대로되 책장 한 장 한 장마다 대추리가 들어있고, 인혁당이 나와 있고, 김산과 윤이상이 등장하는 게 아닌가.
이스라엘 지역 동물병원에서 받은 애완견 예방접종 등록증을 검문소에서 내보이며 “나는 이 개의 운전수”라고 농담하는 작가, 1967년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조직의 일원으로 종신형을 받았던 이의 체험기, 어느 날 갑자기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와서 건물 몇 채를 폭파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물러난 이스라엘을 향해 담담하게 저항을 조직하는 일지…. 이 책을 엮은 소설가 오수연은 이 책이 저들이 아닌 ‘우리의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디기만 한 내게 희망 역시 쉽게 오지 않는 법인지, 이 겨울 나는 대추리에 가서야 팔레스타인을 만나고 책 한 권의 희망을 선물 받았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