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데는 인권운동의 방향전환이라는 면이 크게 작용했을 터이지만, 이른바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이 앞장서서 인권을 국정의 지표로 제시하고부터이다. 대통령이 인권을 말하니 관료들이 인권을 입에 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경찰을 비롯해 공무원들에 대한 인권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만큼 이제는 인권침해자라는 어두운 이미지의 국가기관들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인권옹호자로 변신해가는 과정에서 인권이란 말은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이렇게 국가기관들이 앞 다투어 인권이란 말을 수식어로 끌어 붙이는 것은 실상에서는 인권의 가치와 지향을 그 기관들이 수용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이는 적극적인 이미지의 변신을 통해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일 따름이다. 하기야 독재정권 때도 정부에서 세계인권선언일을 기념하였고, 박정희가 정권 초기에 법무부에 인권과를 신설한 것도 모두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국가기관의 인권화는 매우 세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경찰청은 악명 높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권보호센터로 개명하고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 20주기 박종철 열사 추모제를 아예 남영동에서 치러내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권운동의 설 자리를 잠식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물론 국가기구들의 인권행위자화의 행렬 선두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치한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약속한 뒤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을 위해서 3년 동안 운동을 전개했다. 그 뒤 5년여 동안의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은 한국사회의 인권지형에 많은 변화를 끌어냈다. 폐쇄적인 감옥을 개방시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권침해를 제어하는 역할을 해냈고, 몇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입장에 반해서 적극적인 권고도 제시했고, 인권교육이나 홍보도 진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없을 때와 비교하여 볼 때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으로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이제는 부정할 수 없는 가치로 분명히 뿌리를 내리는 것 같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활동한 이후 인권운동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앞에 예시한 감옥에 대해서는 접근성 면에서나 실효성 면에서 민간단체들의 수년 동안의 노력을 하루아침에 뛰어넘었다. 수시로 교도소를 방문하여 진정인과 직접 대면하여 조사를 진행한다는 것부터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군대도 열고, 사회복지시설도 열어가는 중이다. 그러므로 접근하기 불가능했던 인권사각지대는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민간운동단체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럽지만 인권침해와 차별침해에 대한 진정을 받아서 국가기관들에 권고를 내리고, 정책방향에 대한 권고를 채택하는 것만으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사회에 인권적 목소리를 일반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렇게 되다보니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단체들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고, 그런 결과로 인권단체들의 상담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인권 의제 설정 능력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단체들의 수준을 넘어선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는 언론들이 보도해준다. 그러므로 인권단체들도 인권침해나 차별침해 사건이 발생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것을 당연히 고려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모하는 사업에도 응모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각종 정책자문에도 응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활용하는 이런 방법들로 인해서 국가인권위원회는 보다 편하게 자신들의 업무를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국가인권위원회의 활동으로 인해서 인권운동은 당연히 위축된다. 인권 의제도 선점당하고, 수년 간 인권활동가들이 매달려서 확보해놓은 인권영역들도 곧바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잠식당한다. 이렇게 떠밀려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인권운동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이미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당시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들, 그리고 그의 감시와 견인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잠식한 영역을 넘어서 인권운동의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운동을 하면서 항상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수가 되었다.
촘촘히 짜이는 각종 인권 관련 국가기구들
국가인권위원회 다음으로 인권운동에서 고려해야 할 기구는 지난해부터 활동에 들어간 법무부 인권국일 것이다. 법무부 인권국은 자체에 인권정책과, 구조지원과, 인권옹호과 등 3개의 과를 두고 운영되고 있다. 이중 인권정책과의 업무내용을 보면 법무부 자체 인권관련 정책 수립에 관한 조정.총괄만이 아니라, 인권업무와 관련하여 정부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고, 종합적인 정책 수립,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정부의 창구 역할도 하게 된다. 유엔과 국제기구들에 대한 업무도 이곳에 집중되며, 인권옹호단체와의 협력도 이곳을 통해서 이뤄지게 된다. 우리가 법무부 인권국에 주목하는 이유는 아직은 인원이나 예산, 위상에서 취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 기구가 정부 전체의 인권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방향으로, 그것도 민간인권운동과 협력을 하면서 진행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제동을 걸고 견제하는 역할도 이 기구의 몫이 될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만큼은 위력적이지는 않으나,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최근 경찰과 군에 대한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업무와 중복되는 면이 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인권침해를 진정하여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당연 좋은 일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도 없다.
그리고 임시적인 위원회이기는 하지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과거청산기구들이 있다. 그리고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자체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들이 있다. 이들 기구들은 한시적으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범죄들을 다루게 되며, 그 결과로 법과 제도, 시스템의 변화를 권고하게 될 것이다. 개별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우선적인 과제로 등장하지만, 과거청산의 다음 단계인 책임자의 처벌에 대해서는 이들 기구들이 담보하지 못한다.
그리고 경찰청 산하의 인권수호위원회, 인권보호센터, 인권수호위원회, 시민감시단 등 각종 위원회, 국방부의 인권팀, 교도소마다 설치되고 있는 옴부즈맨, 그리고 각 부처마다 언제 생기는지도 모르게 출현하는, ‘인권’이란 이름을 달고 운영되는 각종 위원회, 옴부즈맨 제도 등은 앞으로 더 늘면 늘지 축소될 상황은 아니다.
이런 기구들에서는 민간 인권활동가들의 참여를 요청하거나, 자문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에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만들었던 ‘평화적집회.시위문화정착을위한민관공동위원회’는 민간위원들을 끌어들여 정부만의 입장이 아닌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역할을 해냈다. 이들이 마치 균형 잡힌 대안을 제시할 것처럼 외양은 갖추었지만, 이 위원회의 경우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경찰과 정부의 의도를 추인해주는 꼴이 되었다. 이런 한시적인 위원회는 바로 민간도 참여하는 위원회의 모습으로 언론에 비쳐지기 때문에 오히려 인권의 악화에 기여한다.
무시와 개입의 사이에서
이런 국가기관들의 인권 관련 기구들에 대한 인권운동진영의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무시하자는 태도다. 이들 위원회에 들어가 봤자 들러리만 서기 때문에 아예 분명한 선을 긋고 비판의 태도를 견지하자는 전통적인 태도다. 이 태도가 갖는 문제는 이들 국가기구들이 실질적인 인권개선을 위해 작동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작동할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인권운동의 책임을 방기한다는데 있다.
둘째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우리의 목소리를 반영하자는 태도다. 이들 기구에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민간대표 자격으로 들어가서 내놓는 정책들이 국가의 인권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되므로 그럴 바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가자는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이럴 경우에 난감한 것은 그만한 일을 감당할 자신이나 역량이 있냐는 의문이다. 인권운동의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권운동을 포기하고 그들 위원회나 기관들을 챙길 수는 없잖냐는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비롯된다.
셋째는 절충적인 태도다. 한편으로는 견제하고, 한편으로는 견인한다는 태도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고민의 과정에서 굳어지고 있는 이 태도는 인권운동 내의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민간 인권운동이 올바로 서야 국가기구들을 제대로 비판도 하고, 견인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적극적인 개입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인권운동에서 성장하여 인권감수성과 전문성을 갖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이들 기구들에 개입하면 확실히 달라질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도 있지만, 그럴 경우 인권운동은 누가 책임지냐는 물음에는 답이 없다.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점도 고려할 지점이다.
위의 세 가지 태도 중에서 무시하자는 태도는 인권운동 내에서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국가기구들의 인권행위자화가 진전되고 있고, 이들 기구들의 활동에 따른 영향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태도는 앞서도 지적한 것처럼 인권운동이 자신의 직분을 잃고 거기에만 매달릴 수는 없고, 특히나 위기의 인권운동부터 챙겨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지 못하다. 결국 지금의 현실적인 방안은 인권운동의 대의를 잃지 않으면서 부분적으로 개입하면서 견제와 견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운동 내에서 이들 기구들에 대한 감시역할을 해낼 단위를 분명하게 설정해야 하는 과제를 인권운동은 안고 있다. 국가기관의 속성상 감시가 없으면 자기 부처의 면죄부를 발행하는 기관이 되거나 인권발전에 적대적인 태도로 돌변하거나 하여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많은 인권관련 기구들을 감시, 견제, 견인한단 말인가. 지금부터라도 영역별로 단체들이 자신들의 활동과 관련된 감시대상을 정하여 역할을 나누고, 그에 따른 지속적인 모니터와 활동의 공유를 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지속적인 모니터를 위해서는 모니터를 담당할 자원활동가들을 대거 모아서 교육시키고, 그들을 모니터에 투입할 계획부터 세워야 하지 않을까. 이런 감시활동에 대해서는 시민운동의 다양한 경험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법부, 국회에 대한 감시도
이런 행정부의 인권관련 기구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권운동은 국회를 감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만 입법과제가 있을 때 로비의 대상, 또는 압박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의회에서 제정되는 법률들에 의해서 인권이 제약받을 수도 있고, 증진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진보적인 인권운동이라고 해도 이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특히나 국회의 인권관련 사안이 많은 법사위, 행자위, 보사위, 국방위와 같은 상임위원회에 올라오는 안건들을 살피는 것에서 그 내용들을 파악하고, 문제가 되는 법안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 운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사법부의 감시활동은 더욱 어렵다. 지금의 사법부가 예전의 사법부처럼 정치권력의 시녀 노릇만 하는 곳이 아니고, 수동적으로 법의 적용만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헌재의 결정, 법원의 판결은 정부의 정책을 변경시키고, 국회의 입법행위를 제한하는 상황까지 낳는다. 이런 사법부의 역할과 영향을 고려할 때 단순히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모니터로 끝낼 수도 없다.
이처럼 우리 인권운동은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역할도 충실히 해내지 못한다. 거기에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해야 하지만 거기까지는 엄두도 못내는 것이 아닌가. 외국 단체들 중에는 정보기관만 감시하는 단체들도 있듯이 우리가 국가기관들의 인권행위들을 적극적으로 감시할 태세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한 우리의 전략은 무엇인가?
다음 호에서는 인권운동은 다른 진영의 운동, 민중운동, 시민운동과 어떻게 연대할까를 주제로 생각해 보기로 하자.(계속)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