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집과 자립은 평등한 관계의 출발점

[특집] 장애인 자립생활에서 주거권의 의미

사람들은 보통 장애인이라고 하면 그저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장애를 육체적 제약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데,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제약을 받고 그 속에서 차별과 억압적인 생활을 강요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자립생활 패러다임은 장애인 삶에 커다란 변화이다.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활동보조 서비스, 소득보장, 주거, 지역사회 기반조성, 이동권, 인식개선, 사회 참여 등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들이 필요하다. 그 중 중요한 것이 독립생활을 하기 위한 주거공간의 마련이다. 사진 | 강곤


자립생활은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


이제까지 장애인의 삶의 목표는 재활치료를 통해서 비장애인처럼 정상적인 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립생활은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선택권과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데 있으며, 이것은 재활서비스의 수혜자에서 복지서비스의 당당한 주체이자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가치있는 존재이며 소중한 인격체로서 바로 서는 것이다. 이렇듯 자립생활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원칙은 바로 장애인 당사자가 사회적 지원을 받는 수혜자가 아니라 스스로 자원을 활용해 만들어 나가고 자신에게 맞는 지원을 결정하고 관리하는 당사자라는 것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장애가 심할수록 혼자 자립해서 산다는 것은 꿈 꿀 수조차 없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혼자서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자매들에게 짐으로 여겨지고 심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자원봉사자 또한 짧은 시간과 일시적인 도움만 제공하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은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살아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한다면 중증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외출도 하고 친구도 만나 극장에도 갈 수 있다. 더 이상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하고자 하는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원들이 필요하다. 즉 활동보조 서비스, 소득보장, 주거, 지역사회 기반조성, 이동권, 인식개선, 사회 참여 등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들이 필요하다. 그 중 중요한 것이 독립생활을 하기 위한 주거공간의 마련이다. 가족으로부터 자유롭게 떨어져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집을 구하는 것이 소득보장과 활동보조 못지않게 장애인에게는 중요한 문제이다.


주거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여려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준비해야할 것이 있지만 가장 처음에 필요한 것은 가족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적 풍토는 가족 내에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경제적인 능력과 결혼을 하지 않으면 독립적인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는 탓이다. 즉 결혼이 독립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특히 장애여성의 경우 더 심한 것 같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와 결혼을 하지 않고 집을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처럼 인식되어져서 출가가 아닌 가출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독립생활, 그 험난한 역경


부모로서는 절대 허락할 수 없는 고정관념으로 되어 부모와 가족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서른, 마흔이 넘어도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으로 장애인의 독립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전세 제도와 보증금 제도이다. 주거를 마련하려면 목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외국의 경우 월세 정도만 마련할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집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최소 2~3천만 원 이상의 목돈이 있어야만 집을 구할 수 있고, 도시에서 아파트를 구하려고 할 경우 일억 가까운 거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경우 이렇게 큰돈을 구한다는 것은 가족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무리 돈이 있어도 장애인에게 목돈을 들여 집을 구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그래서 장애인은 아무리 독립하고 싶어도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인이 구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은 영구임대 아파트 정도인데, 이것 또한 수급자이어도 가족 수가 1인이거나 나이가 많지 않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입주권을 얻을 수 없다. 정책적으로 국가나 행정부가 장애인에게 무상으로 주거를 제공하거나 소액의 금액으로 집을 제공해주는 정책들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서 가족의 도움으로든 개인의 능력으로든 집을 구했다고 하더라도 주거공간의 환경을 장애인이 생활하기 편리하도록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건물의 구조가 장애인에게 맞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에 계단, 턱, 화장실 및 욕실 주방 등의 개보수가 필수적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장애에 맞게 필요한 것들을 바꿔야만 일상생활에 어려움 없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집주인이나 건물주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집을 개조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도 어렵고, 보수비용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그래서 장애인이 사용 가능한 집을 구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또한 자립생활에 있어서 집을 구할 때 고려되어야 할 것은 주변지역의 환경이다. 장애인이 혼자서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활동보조서비스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혼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지역사회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병원, 약국, 마트, 식당 등 주변건물에 접근 가능한 편의시설과 지하철 등의 교통편의 시설 등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어떤 장애인은 장을 볼 때 주로 백화점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 장애인이 절대 돈이 많거나 사치스러워서 백화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훨체어를 타고 재래시장엘 가거나 집근처에 이용할 수 있는 슈퍼마켓이 없기 때문이다.


자립생활을 원하는 장애여성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안전 문제이다. 여성이 혼자 생활하다 보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애여성들은 위협으로부터 도피하거나 대항할 힘이 부족하다. 강도나 도둑, 변태, 화재나 재해로부터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재정지원과 인력지원이 필요하다.



집과 자립은 관계의 변화를 가져 온다


나 또한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미 어른이 된 형제들과 결혼한 자매들 사이에서 부모와 같이 사는 것이 나에게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 또한 4~5년 정도의 시간과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직장근처에 집을 얻으려고 여러 달 동안 부동산 소개소와 인터넷 등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 적은 자금으로 집을 구하려다보니 마땅한 주거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다세대 주택이 계단으로 되어 있거나 반지하이기 때문에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직장에서 지하철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지금의 집을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반지하이지만 그렇게 낮지 않아서 계단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턱을 깍아서 경사로를 만들기만 하면 휠체어를 타고 드나들 수 있고 화장실도 대부분의 지하방의 경우 정화조의 높이 때문에 화장실이 상당히 높은데 전체적으로 같은 높이의 구조로 되어 있다. 전동으로 10분 미만의 거리에 지하철역이 있고 엘리베이터 시설도 잘 되어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활동보조인이 와서 가사를 도와주고 있어 혼자살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그리고 가족관계 또한 훨씬 이전보다 편안해지고 평등해진 느낌을 받는다. 대화를 할 때도 동등한 입장에서 내 의견을 말할 수 있고 가족들도 이제는 나에게 덜 부담스러운 것 같다. 이처럼 자립생활은 가족관계도 변화시킬 수 있다.


끝으로 자립생활은 장애인 스스로가 주체적이고 역량 있는 당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의 권리와 존엄성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자립생활을 원하고 있고, 지금까지 사회에서 소외되어 새로운 삶을 원하는 장애인들이 자립생활 안에서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고자 한다. 이것은 인식이 변화되고 주체성과 역량을 강화하는 기회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에게도 장애인들이 왜 자립생활을 그렇게 원하는지 보여주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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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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