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사진 찍기 어렵게 만드는 책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타인의 고통』(이재원 옮김. 도서출판 이후)

명색이 기자인지라 시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이댈 일이 많지만 썩 내키지 않는다. 예전부터 불의를 보면 잘 참았던 내가 요즘 들어서는 부당한 일만 보면 만사가 귀찮아지니, 이 내키지 않음이 저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는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 아니지 싶다.


불의가 저질러지는 현장에서 카메라 렌즈는 열 사람의 눈, 백 사람의 입보다 강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진 한 장이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은 한낱 기대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2004년 타개한 예술평론가이자 소설가, 반전운동가로 알려진 수전 손택의 에세이 『타인의 고통』은 ‘고통’과 ‘사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이 왜 쓰였는지는 명쾌하다. 기술(특히 사진과 동영상)의 발달로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참사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음에도 그러한 불행과 고통은 왜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가? 잔혹한 이미지들은 TV와 컴퓨터 모니터를 통과하며 오히려 그 참상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란 점을 상기시켜 우리를 안심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대체 나와 상관없는-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이미지를 통해-타인의 고통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은 그러나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다만 사진은 탄생시기부터 전쟁의 부당함이 아니라 전쟁의 정당함을 찍어왔다는 사실을 일깨울 뿐이다. 또한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이제는 당당히 저널리즘의 반열에 올라 뉴스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된 ‘포토’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사진을 찍는다는 ‘shot’은 발포, 발사란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나 피사체를 대상화 시키는지(결국 말하는 것은 사진이며 피사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를 낱낱이 들추고 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조작만 하지 않고 다수에게 불쾌감을 주지만 않는다면 다 팔릴 수 있고, 스펙터클하거나 잔혹할수록 더 많이 팔린다는 포터저널리즘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그래서 디카 잘 찍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허다한 서점에서 재수 없게 이 책을 집어 든다면 믿음이 의심으로 의심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사진 찍기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부디 조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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