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개된 검찰의 보고문건은 “대외적으로 공개될 경우 검찰의 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자백할 정도로 참담한 우리 검찰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지난 해 포항건설노조의 파업 당시, 검찰은 과거 독재의 시절에 그러하였듯 스스로 공안정국의 조성자 내지는 공안관리의 지휘사령부로서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의하면, 검찰은 파업의 적법성을 인정하면서도 노동부가 일용노동자인 조합원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가로막고 나섰고, 시위 중 사망한 고 하중근 씨의 시신부검에 대해서 또한 시위선동이나 노조원의 결집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부검장소 변경, 동영상촬영 거부 등 과거의 구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반복하였다. 문중과 지역향우회를 동원하여 유족들이 부검에 협조하게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유족 및 노조 측과 협의가 안 되어 부검을 늦추자는 경찰의 의견조차도 무시한 채 곧장 부검을 강제집행하려 시도하였다. 또 수사과정에서는 피의자가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라는 방침을 세워 70명 구속이라는 그해 단일사건으로는 최대의 구속자를 양산해 내기도 하였다.
그뿐이랴. 검찰은 파업이 진행되는 전 과정에 개입하여 사건 자체를 기획하고 통제하는 등 실체적 진실의 규명자로서의 역할을 과감히 내팽개쳤다. 이 사건의 원인행위인 포스코의 불법대체근로는 도외시하면서도 노동자들의 항의행위는 애당초부터 불법으로 단정하며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등은 불법과 폭력을 선동, 원조하는 집단이자 항시적인 정보사찰대상으로 규정해 버린다. 그리고 이런 도식 하에 어떻게 하면 이 파업을 통제하고 그 역선전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것인가에만 전념한다. 파업불참자에 대하여 파업참가자가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해 형사처벌 하겠다고 협박하는 공문을 건설업체나 언론기관에 송부하는 등의 선전전을 펼치는 것은 물론, 억압적 법 이론의 대표 격인 공모공동정범의 이론으로 적용하여 파업참가자들을 무차별 구속함으로써 사건의 파장을 확대재생산하기에 여념이 없다. 과거 공안정국을 조성하기 위해 공작수사를 행하던 시절의 악습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적 정의는 관심영역 밖에 방기되며 수사와 공소유지라는 검찰 본연의 임무는 과감히 무시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요컨대 검찰은 지난 날 권위주의적 통치의 핵심에 자리 잡고 공안정국을 창출하는 데 앞장섰던 그 모습 그대로를 반복재생산하고 있다. 참여민주주의를 외치는 민주화의 시대를 맞이하였음에도 범국민적인 검찰개혁의 요청이 주효하지 못하고 그 참담하였던 과거사 또한 규명되지 못한 우리 검찰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장면들인 것이다. 혹은 정치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 그 주군을 바꾸어나간 우리 검찰의 계급성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테제가 최우선적으로 갈구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